"어어어~~ 지금 끼어들어야 되나?"
"보자. 뒤에 차오나? 빨리 못 끼어들 것 같으면 지금 말고 다음번에 차 별로 안 올 때 가는 게 낫다."
"아빠! 지금은? 지금 끼어들면 돼요?"
"그래. 깜빡이 미리 켜고 들어가. 옆으로 바로 꺽지 말고 약간 사선으로 들어가고.."
내가 결혼하기 전. 그러니까 서울에서 회사를 그만두고 대구로 내려와 결혼식을 하기까지 3개월의 시간이 있었다. 그때 운전 면허증을 따야겠다 싶어 대구에 내려오자마자 자동차 운전 전문 학원에 가서 등록을 했다. 일주일 만에 필기시험과 실기시험 모두 한방에 붙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 운전면허 이거 별거 아니네? 바로 운전할 수 있겠는데?'라고...
집으로 돌아와 엄마, 아빠한테 필기 실기 모두 합격했다고 얘기하면서 도로 연수만 하면 된다며 거들먹거렸다. 그랬더니 아빠가 하시는 말씀이
"연수가 중요하다. 학원서 매번 똑같은 길 왔다 갔다 하는 거는 그냥 시험용이지 실제로 운전하는 건 많이 다르다. 일반 도로에 나가서 운전해봐야 실력이 는다."
"안 그래도 다음 주부터 연수 신청해 놨어요. 선생님이 옆에 타고 운전한다고 하던데.. 선생님 자리에 브레이크가 있다 하더라고. 신기하게"
"니처럼 말짱 초보가 언제 어디서 말썽을 부릴지 모르니 브레이크가 있어야지. 여차하면 브레이크 밟아야 하니까."
학원 선생님과의 도로 연수가 무사히 끝났고 선생님은 안전 운전하라며 주먹을 불끈 쥔 한 손으로 파이팅을 외치셨다. 연수가 끝났다고 하니 아빠는 연수 한번 해서는 도로에 나가 운전하기 힘들 거라면서 아빠차로 한번 나가보자고 하셨다. 나는 운전석에 아빠는 조수석에. 아빠와의 도로 주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일단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새로 닦은 길 위주로 운전을 했는데 생각보다 떨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운전을 하다 보니 속도도 속도인데 옆차선으로 변경하는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언제 들어가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고 저 뒤에서 오는 차가 한대라도 보이면 깜빡이(방향지시등)를 켰다가도 차선을 변경하지 못하고 그저 "어어어~~~ " 라는 외마디 비명에 가까운 말만 되풀이했다.
조수석에 앉은 아빠는 그런 나를 보며 웃으시면서 "차선 굳이 안 바꿔도 된다. 조금 익숙해질 때까지는 그냥 한 차선으로만 가도 돼. 네 속도가 늦으면 뒷차들이 알아서 비껴갈 거다. 혹시라도 뒤에서 빵빵거리면 당황하지 말고 너는 네 갈길 가면 된다. 빵빵거리다가 추월해서 갈 거다. 답답한 놈이 알아서 가야지. 남한테 피해 안 주는 운전하면 되고 네 속도로 가면 되니까 다른 차 눈치 보지 말고! 쫄지 마라!"
그때도 나는 아빠 얼굴을 쳐다볼 만큼의 여유는 한 스푼도 없었고 오로지 차 앞유리가 뚫어져라 앞만 보고 가고 있었다. 그저 한 차선으로만 묵.묵.히.
아빠와 그렇게 첫 번째 도로 주행을 하고 며칠 있다가 두 번째 주행을 나갔다. 두 번째 때에도 나의 운전 실력에 그다지 진전은 없었다. 여전히 차선 변경을 할 때면 외마디 비명을 질러댔고 차선 변경을 한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차선 변경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집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가자고 하셨는데 이유를 물어보니 주차하는 것도 연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차 안 하고 머리에 이고 있을 거냐면서. 하하하하하!!!
학교 운동장에 가니 얼마나 맘이 편하던지. 거기는 차도 한대 없고 뒤에서 추월하러 오는 차도 없고 차선도 없어서 차선 변경한다고 불안해할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운동장의 가장자리 쪽에 큰 나무들이 줄지어 심어져 있었는데 나무와 나무 사이에 주차를 해보라는 아빠. 나는 후진으로 한 번에 주차를 했다. 아빠는 "니 주차는 와이래 잘하노? 혹시라도 나무에 박을까 봐 불안했는데 주차는 기가 막히게 하네. 됐다! 가자!"
"어? 바로 가자고? 벌써?"
"주차 이렇게 잘하는데 뭐 또 하노.. 더 하고 싶으면 몇 번 더 해보고 가던지."
아빠와의 도로 주행은 그렇게 끝이 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나는 결혼을 했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나서 내가 운전하는 차에 탄 아빠는 "네가 운전을 잘하네. 이렇게 차분하게 하면 된다. 운전을 잘하는 사람은 빨리 가는 사람이 아니고 타고 있는 사람이 빨리 가는지 천천히 가는지 잘 모르게 하는 사람이다. 타고 있는 사람이 편안하게 느끼는 거. 그게 운전을 잘하는 건데 네가 운전하는 차를 타니 편안하네.. 운전 참하게 한다."
"아빠 진짜? 내가 운전 잘한다고? 하도 천천히 가서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고?"
"그거는 천천히 가는 거 하고는 다르다. 앞으로도 이렇게 하면 된다."
누군가에게는 나의 운전 실력이 형편없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아빠한테만큼은 베스트 드라이버였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가 그때 해준 그 말들...
그 말들은 비단 운전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었다.
"너는 네 속도로 네 갈길 가면 된다. 남들 눈치 보지 말고 쫄지 마라!"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 건지.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거나 혼란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누군가 어느 쪽이 맞다고 얘기해 주면 좋을 법도 한데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얘기해 주는 사람이 내 인생을 책임져 줄 수는 없다. 모든 선택과 결정은 내 몫이다.
내가 글을 쓴다고 했을 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해주었고 좋은 선택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중에서는 지금보다 좀 더 빨리 글을 썼으면 좋았을 텐데.. 그쪽으로 공부를 미리 했으면 더 도움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나의 나이(40대 중반)를 의식하는 약간의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도 있었다. 나 또한 내가 지금 이 나이에? 한 번도 생각지 않았던 이 길을? 굳이 지금와서?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도 잠시였다. 글은 더 어린 나이에도 얼마든지 쓸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지금 나이에 쓸 수 있는 글이 있고 또 글의 결 또한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나의 나이가 무엇을 시작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조금 늦게 출발했을지라도 난 내 길을 가기로 했다. 나만의 속도로. 차선 변경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그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니까.
아빠에게 내가 베스트 드라이버였던 것처럼 먼 훗날에 아빠를 만나면 인생 참하게 살다왔다고 하실 수 있게...
오늘도 나는 키보드를 두들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