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동안 찌는 듯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며칠간 불볕더위가 예상된다며 여름철 생활 수칙을 알려준다. 문자로는 외출을 삼가고 실내생활을 할 것을 당부한다. 그러던 중 인스타그램으로 애정하는 작가님의 피드를 보았다. 낮기온이 엄청날 거란 예보에 아침 일찍 눈을 뜬 김에 집 근처 산책을 나갔는데 계곡에도 갔었다며 사진을 올리셨다. 잔잔한 계곡사진에 이어 콸콸 흐르는 계곡 물사진을 보니 눈이 시원해졌다. 사실감 넘치게 찍힌 사진과 동영상을 보고 있으니 당장에라도 계곡에 가고 싶어졌다.
계곡 하면 여름이고 여름 하면 계곡이지. 내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우리 가족은 친척들과 함께 여름이면 바다보다 계곡을 주로 다녔었다.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잡는다 했던가.. 일찍 일어나 출발한 이가 계곡의 명당자리를 잡는다. 이른 아침에 출발해서 물이 빠르게 흐르고 수영하기에도 수심이 적당한 곳 옆에 자리를 잡고 텐트도 친다. 텐트는 옷을 갈아입거나 간간히 낮잠을 자는 곳으로 역할을 다한다. 가져온 짐들을 필요한 자리에 놓고 하나씩 꺼내면서 계곡에서의 놀이는 시작된다.
계곡에서의 물놀이 중심엔 항상 아빠가 있었다. 아빠는 산보다는 물을 좋아하셨고 바다보다는 계곡을 좋아하셨다. 계곡물이 좀 더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이유였다. 모두들 자기가 들고 온 짐을 내려놓고 텐트를 칠 때쯤 어른, 아이들 중에 가장 먼저 계곡 물에 들어가는 건 아빠였다. 계곡물이 부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느새 물안에 계셨다. 아무래도 계곡은 바다와는 달라서 짧은 거리의 수영이 가능한데 내 눈에 수영하는 아빠는 마치 올림픽에 나간 박태환 같았다. 수영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와... 수영 엄청 잘하는 저 사람이 우리 아빤데.. 모르는 사람들도 막 봐줬으면 좋겠고.. 어떻게 저렇게 빠를 수가 있을까 싶어 항상 신기했다.
아주 어릴 적부터 봐온 첫 수영선수(?)가 아빠여서 아빠의 영법이 정석인줄 알았던 나는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야 그것이 일명 개헤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머리는 물안으로 절대 들어가지 않은 채 고개를 오른쪽 왼쪽으로 번갈아가며 돌리고 양팔은 낫모양으로 딱 꺾여서 펴지는 법이 없고 쉴 새 없이 휘두르는 것. 그렇지만 스피드에서는 따라올자가 없이 1등이었던 것. 수영을 하고 나서도 머리카락은 절대 젖지 않는 마법 같은 영법의 소유자였던 울 아빠...
결혼을 하고 몇 해 지나고 나서 아빠 엄마를 모시고 바닷가에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아빠는 별다른 고민 없이 바다로 뛰어들어가셨고 바다의 파도에도 어김없이 머리카락이 젖지 않는 마법 같은 영법을 보여주셨다. 만족스러운 수영을 마치고 물에서 나온 아빠를 보고 내가 말했다.
"아빠.. 아빠 수영 어디서 배웠어요?"
"수영? 배우긴 뭘 배워.. 우리 어릴 때는 개울가에서 노는 게 일상이라 그때 그냥 스스로 터득한 거지. 혼자 터득한 거 치고는 기가 막히재?"
"아... 어쩐지.. 수영하는 폼이 돈 주고 배운 거 같지는 않길래."
"수영은 돈 주고 배운 게 중요한 게 아니고 바다고 계곡이고 어느 물에서든 살아남을 수 있는 게 진짜다. 바다는 파도가 있어서 수영하기가 좀 어려운데 바다에서 수영 잘하는 사람들은 어딜 갖다 놔도 물에 빠져 죽을 일은 없지. "
"아빠 수영하고 나와서 보면 머리카락이 어째 하나도 안 젖어서 너무 신기했는데 오늘 확실하게 알았네. 하하하하하하하하!"
아빠는 여름이면 시원한 물에 들어가 당신의 수영 폼을 의식한다기보다 그저 수영 그 자체를 즐기셨다. 그때의 나는 아빠를 보면서 저렇게까지 수영하는 게 좋을까 싶었는데.. 지금에 와서야 느낀다. 아빠는 순간의 행복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분이셨다.
그것이야말로 내게 주어진 하루. 내게 주어진 그 순간을 오롯이 나 스스로 즐길 줄 아는 현명한 방법이다. 영법이나 품이 뭐가 그리 대수고 뭐가 그리 중요한가. 바다에서 계곡에서 물에 몸을 맞긴 채 물과 한 몸이 되어 즐기면 그만인 것을... 그것이 진짜 나만의 행복인 것을...
올여름휴가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 다만 그곳이 바다이든 호텔 수영장이든 어디든 나도 이번 여름에는 부지런히 물에서 노는 것에 게으름 피우지 말아야지. 여름에는 여름이 주는 즐거움을 촘촘히 즐겨야지.
울 아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