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사람의 마음이면 충분해

by 앵두나무


중학교 1학년때부터 친했던 친구는 2학년때도 같은 반이 되었고 영혼의 반쪽인 듯 나에게는 단짝 친구(A)가 생겼다. 나보다 키는 한 뼘 이상이 크고 피부는 하얗다 못해 허연 나에 비해 A는 까무잡잡해서 건강해 보이는 구릿빛이었다. 나는 어깨에 닿을 듯 말듯한 생단발머리였고 A는 숏커트에 가까운 짧은 헤어스타일에 곱슬머리였다. 운동신경 제로인 나에 비해 A는 날쌘돌이 마냥 체육시간이면 날아다녔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학교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A의 집으로 가서 일주일에 두어 번은 라면을 먹고 놀곤 했다. 그때 나는 엄마가 라면을 못 먹게 해서 A의 집에서 먹는 라면은 그저 꿀맛이었다. 국물 한 방울도 소중했다. A와 하루 종일 붙어 있다 집에 오는 길은 늘 아쉬웠고 아침에 학교 가서 만나면 그저 반갑고 즐거웠다. 변함없이 하교 후 A집엘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고 다음 날 아침에 늘 그렇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학교를 갔다. 그런데 전날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A가 나를 모르는 척하는 것이다. 처음에 나는 너무 당황해서 동공에 지진이 났다. 내가 옆에 가서 말을 하는데 나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마치 내가 투명인간인 것처럼...


뭐지.... 뭘까.... A가 갑자기 왜 저러지.. 어제까지 우리는 둘도 없는 친구였는데... 내가 뭘 잘못했나? 그런 생각들로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옆에서 다른 친구가 무슨 말을 해도 정신이 나간 아이처럼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듣질 못했다. 그날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며 A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대해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런데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 담날 학교에 가서 다시 A에게 다가갔다. A는 나를 피해 다른 자리로 가버렸다. 그리곤 다른 친구가 나에게 와서 말을 걸면 A가 와서는 다른 친구를 데리고 가버렸다. 그때의 나는 당당하게 A에게 가서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묻지 못했고 하루하루 작아져 가는 나와 마주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얼마나 그 시간을 혼자 견뎠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마음이 너무 힘들어 학교가 가기 싫어졌을 때쯤이었다. 하교하는 길에 길가에 있는 공중전화기 앞에 섰다. 책가방을 뒤적거려 동전을 찾아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누구세요?"

"엄마... 나 영아.. "

"영아? 너 왜 집에 안 오고 전화하노?"

".............................. 엄마.. 있잖아... 나랑 친한 친구(A) 있잖아.. 걔가 나를 따돌려. 내가 마음이 너무 힘들어가지고........ 근데 내가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 엉엉 엉엉엉엉엉"

"..............영아.. 일단 집으로 온나..울지 말고.. 지금 바로 집으로 온나. 알았지."

"......어......."


나는 집에서 엄마 얼굴을 똑바로 보고 그 말을 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왜 그랬을까.. 학교 다닐 때 엄마는 나에게 엄하고 무서운 사람이었는데 그런 말을 선뜻 꺼내기가 어려웠다. 몇 번을 말을 할까 망설였지만 말하지 못했고 결국엔 마주 보고 못한 말을 수화기 너머 흐느끼는 목소리로만 전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엄마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게 엄마에게 실망감을 안겨드린다고 생각했었다. 나 혼자서 끌어안고 힘들어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가슴이 답답해서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엄마에게 손을 내밀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엄마 얼굴을 보자마자 현관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그동안 혼자 힘들었던 만큼 혼자 참아왔던 시간만큼을 울음으로 토해냈다. 꼭 나라 잃은 사람처럼... 엄마는 그런 나를 말없이 안아주었다. 한참을 울었을까...

엄마는 내게 물었다.. 언제부터였냐고.. 무슨 일이 있었냐고.. 왜 엄마에게 진작 말을 하지 않았냐고.. 그리곤 말을 이어갔다.


"영아..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이유도 없이... 혹시 네가 모르는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아무런 말도 한마디 없이 그렇게 돌아서버렸다면 그건 진짜 친구가 아닌 거야.. 그 친구한테 너무 연연해하지 말고 너랑 잘 맞는 다른 친구를 찾아봐.. 좋은 친구들이 분명히 있을 거야. 그리고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나의 쏟아낸 눈물과 엄마의 토닥임으로 나만의 속앓이는 끝이 났지만 너무 믿었던 친구에게 받은 상처와 배신감은 쉽게 회복되질 않았다. 그 이후로 나의 중학교에서 교우관계는 내 자리 근처 친구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밥을 같이 먹는 정도였고, 예전처럼 나의 마음을 쉽게 나누거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후 고등학교에 가서는 좀 나아졌지만 나는 여전히 어둡고 긴 터널 안에서 혼자만의 시간에 익숙해졌다.


중학교 때의 그 사건 이후 엄마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2~3달에 한 번씩 A4지 2~3장을 빼곡히 쓴 편지를 내게 건네주었다. 그 편지의 내용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도 한 가지 기억하는 건 편지의 제일 마지막 부분에는 항상 '엄마는 널 믿는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언제든 힘이 들면 엄마한테 얘기해. 엄마는 항상 네 편이야'였다. 나는 그 편지들의 마지막 구절을 읽을 때마다 숨죽여 울었다. 그때부터였다. 엄마가 내게 엄하고 무서운 사람이지만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 편지는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엄마의 사랑이었고 나는 그 사랑을 눈으로 읽고 가슴으로 느꼈으며 존재 자체만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면서 고등학교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 대학교 4년 내내 친했던 친구로 인해 나는 다시 타인와 마음을 나누고 서로의 온기를 채워주며 사람으로 받은 상처를 사람으로 치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나를 향한 단 한 사람의 믿음, 사랑, 기다림이 있었다.

그것은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씻겨서 키우는 유아 시절만큼이나 어쩌면 그 보다 더 중요하게 아이의 마음이 단단히 자라게 하는 생명수 같은 것이었다.


터널 안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 나에게 빛을 비추고 천천히 그곳에서 스스로 걸어 나올 수 있게 이끌고 기다려준 나의 엄마..

엄마는 슬프고 힘들기만 했던 것으로 기억될 뻔한 나의 학창 시절을 아픔 안에서 오롯이 나로 설 수 있도록 이끌어준 내 인생의 구원자였다.


결국 나를 향한 단 한 사람의 마음은 나를 살게 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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