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원형의 책 16화

괴물 예절 배우기

조안나 코울 /시공주니어

by 고양이스웨터

삐뚤빼뚤해서 재미있고 반듯해서 흐뭇한 나라



개미 한 마리까지 곯아떨어진 한밤이나,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시골집에서의 한낮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면, 이이잉, 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떤 날은 배고픈 귀뚜라미 소리 같기도 하고 다른 날은 죽어가는 모기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나는 이걸 정적 소리라고 부른다. 그 소리를 처음 감지했을 때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가 걷거나 뛰거나 날아다닌다고 상상했다. 공기의 움직임을 상상해 내다니,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이건 온전한 나의 세계이고 그 세계를 알아차린 내가 마음에 들었다. 다 커서 알았는데 그건 성인에게 흔하지만 어린이에게는 드물게 일어나는 질환인 '이명' 증상이었다. 신체에 발생하는 모든 자극을 의학적으로 환원하는 문명인의 습성이란 얼마나 맥빠지는 일인지! 공기가 움직일 때 소리가 난다는 사실을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했던 어느 날의 일이다.


햇볕이 데워 놓아 따뜻해진 마룻바닥에는 ‘탐구생활’이 펼쳐져 있었고, 쟁반에 반쯤 먹다 남긴 옥수수가 담겨 있었다. 열린 현관 밖으로 보이는 마당에는 맨드라미가 무질서하게 피어 있었다. 낮잠에서 깨어난 나는 집에 아무도 없다는 걸 알았고 공기의 움직임을 상상하며 귀 기울였다. 더운 공기는 무겁게 내려앉아 이이잉, 지친 숨을 쉬고 있었다. 그때 정적을 깨는 소리가 들렸다. 진원은 파리였다. 파리 한 마리가 옥수수 위에 앉았다가 내 시선을 눈치채고 도주를 시도하고 있었다. 나는 파리채를 집어 들었다. 벽에 앉은 파리를 향해 파리채를 휘두른다. 탁! 파리는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 방에 해 치우다니, 이렇게 짜릿할 수가! 나는 파리의 사체를 ‘탐구생활’에 고이 모셔 놓는다. 살육의 현장을 구경이라도 하려는 듯 또 다른 파리가 기웃거렸다. 또다시 탁! 용케 도망쳐도 소용없다. 나는 파리를 끝끝내 잡고야 만다. 그날 잡은 파리가 다섯 마리쯤 되었던가.


나는 죽은 파리를 ‘탐구생활’에 줄 세워 놓고 감상했다. 방금 전까지 정적을 깨며 신나게 날아다니던 생명체가 숨이 끊어진 모습이 신기했다. 이 모든 걸 내 손으로 해 냈다. 엄마가 동생과 함께 돌아왔을 때 나는 자랑스레 파리의 사체를 보여 주었다. 엄마는 질색을 하며 빨리 버리라고 야단쳤고, 동생은 불쌍하다고 했다. 의외의 반응이었다. 나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조금 전까지 자랑스런 전리품이었던 것이 두 사람의 반응으로 인해 범죄 현장의 잔해가 되어 버렸다. 착한 아이가 되고 싶었던 나는 더 이상 죽은 파리를 줄 세워 감상하는 일을 하지 않았는데, 가만 생각해 보면 외부 요인으로 동물적 본성을 너무 쉽게 포기해 버린 게 아닌가 싶어 좀 안타깝다. 그게 뭐 그리 잘못된 일이라고! 어쩌면 그 순간은, 귀에서 나는 소리를 공기의 움직임으로 느꼈던 것에서 단순한 이명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전환의 과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연에서 문명으로, 동물에서 인간으로, 프루넬라에서 로지로. 프루넬라와 로지는 초등학교 1학년 권장 도서로 분류되는 《괴물 예절 배우기》에 등장하는 두 괴물의 이름이다.


로지는 괴물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었지만 괴물 예절을 잊어버리곤 해서 엄마아빠를 속상하게 만든다. 괴물들은 친구랑 싸우고 장난감을 망가뜨리거나 큰 소리로 으르렁대야 하지만, 로지는 누구하고나 사이좋게 지내고 상냥하게 대하는 것이다. 깔끔하고 친절한 로지가 걱정스러운 엄마아빠와 친구 프루넬라가 괴물 예절을 가르치려고 노력하지만,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착한 로지 때문에 미칠 것 같은 엄마아빠 심정이 어떤 건지 알 것 같다. 너무 착하게 굴 필요 없는데, 타고난 야성을 잃어버리면 안 되는데.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는 내 안에 있는 천사와 악마를 모두 만족시키는 데 있다. 아무 데서나 소리 지르고 더러운 상태로 돌아다니거나 음식을 마구 흘리며 먹는 게 좋은 악마는 그렇게 해도 잘했다고 칭찬받는 괴물 나라에서 살고 싶다. 그러다가도 귀엽고 깜찍한 로지가 로지 나름의 방식을 존중받을 때 기뻐하는 천사가 있다. 악마의 욕망은 책 읽기에서 해소하고 현실 세계에서는 천사의 뜻을 따르고, 아이들이 그렇게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아이들 세계에서 이런 이분법은 아무 의미 없다. 로지도 프루넬라도 같이 놀고 싶은 친구일 뿐이다. 둘은 언제나 함께 한다. 파리를 잡아 전시하는 아이와 죽은 파리를 맨드라미 핀 화단에 묻어 주는 아이가 같은 아이인 것처럼.


이 책에 푹 빠진 한 어린이가 로지와 프루넬라 흉내를 내며 즐거워한다. 로지처럼 말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어느 순간 프루넬라처럼 큰 소리를 치고 있고, 프루넬라처럼 아무렇게나 글씨를 쓰겠다고 다짐했지만 자기도 모르게 로지처럼 멀쩡한 글씨로 쓰고 있다. 로지와 프루넬라가 공존하는 공책을 보는 아이가 “이게 뭐야”하며 깔깔 웃는다. 나는 마음속으로 대꾸한다.


뭐긴 뭐야, 삐뚤빼뚤해서 재미있고, 반듯해서 흐뭇한 너의 나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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