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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아버지와 해물칼국수
더 먹기 VS 더 먹이기

칼국수 먹다가 어린 시절 실랑이가 생각난 여자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되오며,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삐~~~"

통화 연결음은 계속 들리지만, 결국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이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아빠 연락이 안 되는데, 오늘 밭에 가셨나?"

"응! 너무 심심하데 밭에서 이랑 만든다고, 아침 일찍 나가셨어~ 만약에 안 보이면, 뒷 밭에 있을 거니까 안쪽으로 들어가 봐"


친정부모님의 취미는 농사이다. 늘 말하지만 취미라고 하기에는 그 크기가 방대하여, 기업적 영농이라고 할 수 있다. 퇴직 후에 아빠는 심심하다는 이유로 더욱 농사일에 열중하셨다. 부모님의 밭은 집에서 30분 정도 차를 타고 가야 하는 거리인데, 그동안은 운전해서 가실 수가 있었지만, 몇 년 전 사고로 차를 폐차시키고 나서는 버스로 이동하신다.  그래서 예전처럼 자주 갈 수  없지만, 틈나는 대로 자주 가서 밭을 일구신다.


주말에는 언니가 부모님 라이딩을 해드리고, 평일에는 내가 종종 그 일을 한다.

오늘은 그 근처 일이 있어서 갔다가, 점심시간이라 아빠와 점심을 먹을 생각으로 전화를 걸었다.


약간은 험한 산길을 달려서, 밭으로 갔다. 봄기운이 완연하여, 낮에는 덥기까지 했다. 아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차를 주차하고 안쪽까지 들어가 봤다. 역시나, 곡괭이로 열심히 밭을 일구는 아빠의 뒤태가 보였다. 생활형 근육으로 다부진 아빠는 뒷모습만 본다면 팔순 노인이라고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아~빠~~! 나 왔어~~~~!"

크게 아빠를 불러본다. 놀란 눈으로 뒤를 돌아보던 아빠는 씩 하고 웃으신다.

"왜 ~ 왔~~ 어~ 다~시 가~~!"

목소리가  메아리처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진다. 그리고는 아빠 특유의 웃음을 씨~익 하고 지어 보이신다.

"지나는 길인데, 아빠랑 밥 먹으러 왔지~~"

"아우~무슨 밥이냐~ 괜히 돈 쓰지 말고 집에 가서 애들 챙겨~~"

"아우 애들 오후 늦게나 와~ 나 아침도 안 먹었어~~ 빨리 밥 먹으러 가자! 이 근처에 맛집 발견했어~"

손사래를 치던 아빠도 아침 안 먹었다는 내 말에, 주섬 주섬 장화를 갈아 신으셨다.


오늘 점심은 해물칼국수다. 최근에 알게 된 곳인데, 해산물이 가득하여 시원한 국물이 에너지를 충전해 주는 맛이다. 들어가자마자, 안내받은 자리에 앉으면서 해물 칼국수를 주문했다. 잠시 후 묵직한 냄비를  두 손에 들고 오신 사장님께서 타다닥 가스레인지를 켜신다. 파란 불꽃이 일었다. 냄비에 가리비를 비롯한 각종 조개와 홍합, 낙지와, 새우 그리고 맨뒤에 전복이 가득하다.


이내, 보글보글 냄비가 끓기 시작하더니, 끓는 압력이  뚜껑을 밀어내어  덜덜덜 달그락 달그락 소리가 난다. 맨 위에 있던 낙지와 전복이 뜨거운지 몸을 비비 꼬기 시작했다. 뽀얗고 투명한 국물에 하얀 국물 거품이 일었다. 냄비에서 국물이 넘치기 시작했다. 나는 잽싸게 가리비에서 살만 발라내기 시작했다.


입을 쫙 벌린 가리비 한쪽을 집게로 집고, 가위로 사이를 비집고 나가 조갯살만 발랐다. 가리비를 바르고, 키조개를 바르고, 이제 통통한 오징어와 낙지를 반으로 갈랐다. 이가 성치 않은 아빠를 위해 최대한 씹기 좋게 잘라 보았다. 전복도 마찬가지고 몸을 비틀어 분리해서 아빠 그릇 위에 살포시 놓아주었다. 점심 먹기 싫다고 집에 가라던 아빠는 내가 접시에 놔주는 족족 깨끗하게 다 드셨다.


빨간 소스 접시에 파아란 고추냉이와 빨갛다 못해 거뭇한 초고장을 섞는다. 고추냉이와 초고장 합쳐져  알싸한 듯하면서도 달콤한 초고추장이 완성이 되었다. 거기에, 잘 입은 낙지를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잘근잘근 씹을 때마다 미끄덩한 낙지 살에서 육즙이 파바바방 튀어나왔다.


이번에는 투명하고 하얀 국물을 후루룩 마셨다. 시원하고, 깔끔하면서도 담백한 조개의 맛이 이미 갯벌에 와 있는 느낌이다. 막힌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한 미네랄의 맛이 라고 해야겠다. 인위적인 감칠맛이라고는 전혀 찾을 수 없는 맛이다.


순식간에 해산물을 다 먹어 치운 우리는 칼국수를 넣어달라고 했다. 칼국수는 도삭면과 같은 비주얼과 식감이다. 보통 칼국수보다는 면이 넓적하고, 수제비보다는 두께가 얇다. 잘 익지 않아 오래 끓였는데, 끓이면 끓일수록 면에 간이 베어, 후루루룩 잘 넘어갔다. 여기에 이 식당 유일한 반찬인 생김치를 얹어서 먹으면 풍미와 식감이 입안 가득 풍성해진다.  칼국수에는 역시 김치가 환상의 짝꿍이다.


아빠는 더 이상 못 먹겠다며, 숟가락을 내려놓으셨다. 나는 마지막으로 칼국수 한 젓가락 더 드시라며 실랑이를 했다. 그만 먹겠다는 아빠는 몸을 돌려 접시를 사수하고, 더 먹으라는 나는 집게를 들고 아빠를 향해 흔들었다. 마치 어릴 적, 밥 안 먹겠다는 나와, 더 먹으라는 아빠의 모습 같아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밥그릇 사수 대회는 그 옛날 그랬던 것처럼, 결국 더 먹이려는 사람의 승리로 끝이 났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데, 전신 거울 앞에서 볼록 나온 배를 문지르며 잘 먹었다는 아빠와 잘 먹었다니 좋다며 웃는 내가 서있었다. 그 옛날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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