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15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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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목요일,
어젯밤 교훈: 밤커피는 해롭다.
1시쯤에 불을 껐다. 누워있는데도 편하지 않고, 잠이 쉽사리 들지 않는다. 한참을 뒤척이다가 겨우 잠들었는데 다시 눈을 뜬다. 그때가 1시 50분이었나. 다시 잠들었다가 에어컨이 켜지는 소리에 눈을 떴다. 새벽 3시 50분. 그 뒤로도 몇 번을 깨고 시계를 보다가 허우적 꿈나라로 다녀왔다. 으아으아 피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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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을 잘 뻔했지만 잘 일어났다.
오늘 우리가 갈 장소는 남해! 꼭 어디 가려고만 하면 태풍이 온다더라?? 집에 있기는 싫어서 태풍을 뚫고 조심히 다녀오는 걸로 소박한 목표를 정했다. 렛츠고. 샌들을 신고 슬리퍼는 혹시나 해서 챙겨 왔다. 정신없이 짐을 꾸리는 동안 남편은 텀블러에 아이스커피를 담고 카메라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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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구름을 보면서 달려왔다.
태풍 때문에 조용할 줄 알았던 남해, 첫 번째 장소부터 사람들이 차고 넘쳤다. 메뚜기처럼 자리를 옮겨가며 창가 자리로 앉을 수 있었다. 화덕피자가 구워지는 사이에 우리는 가게 앞에 있는 나무 주변을 걷고 바다를 구경했다. 기다랗게 쭈욱 뻗은 나무 사이에서 얼굴 사진도 열 방정도 찍어댔다. 예쁘게 찍히고 싶었는데 잘 나오지 않았던 건 얼굴 때문이었겠지.. 최대한 작게 찍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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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는 앵강마켓.
나무 인테리어에 반해서 갔던 곳이다. 눈치게임에 성공했던 우리는 조용히 차를 마시면서 양갱을 조금씩 먹었다. 따뜻한 차 한 잔에 몸이 따뜻하게 데워진다. 그 순간 교토 여행에서 차를 마신 그날이 떠올랐다. 계절은 달라도, 장소는 달라도 둘이서 그 순간, 차에 집중하던 그 기억이 너무 생생했다. 그제야 우리가 여행에 왔다는 걸 느꼈던 날이기도 했다. ‘좋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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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장소는 초록스토어.
남해에 가면 제일 먼저 가고 싶었던 곳은 ‘아마도 책방’이었다. 책방이 생기기 전부터 sns로 공사 진행과정, 고양이의 등장, 책방 오픈 등을 지켜봐 왔기에 저절로 마음이 갔던 곳이었다. 그리고 오늘 여기서 북토크가 열린다고 했다.(책방에서 초록스토어로 장소가 변경됐다) 내가 좋아하는 ‘김민철 작가님’ 북토크. 두근두근 콩닥콩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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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주변을 배회하고 나는 북토크 장소로 향했다.
오후 4시, 작가님이 입을 떼기만을 기다렸다. 나도 기억력이 좋지 않기 때문에, 돌아서면 금방 까먹어버려서 잊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를 기록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작가님도 나랑 비슷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뭔지 모를 동지애, 무한 응원을 하고 있었다. 책을 읽자마자 그녀의 팬이 됐다. 두 시간 동안 ‘기록’이라는 걸 통해서 자신의 삶, 취향, 여행, 모든 것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타인의 이야기지만 또 나에게 대입해서 생각할 수 있어서 유익했다. 너무 좋았는지 집에 오는 길에도 작가님 얘기만 실컷 하고 온 이숭이였다. 아마도책방, 초록스토어 만세만세. 민철작가님 만세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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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가게에서 저녁을 먹고 나왔다.
저 멀리 보이는 하늘이 온통 붉은색으로 변해있었다. 붉은 노을을 만나는 날. 잠깐이라도 지체하면 떠나버릴까 봐 둘은 근처 항구에서 눈으로 담고 카메라로 담고 저녁노을을 한참을 바라봤다. 태풍을 시작으로 흐린 날씨, 쨍쨍 날씨, 구름 동동, 소나기 촤아, 붉은 노을까지 선물 같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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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다니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대부분 남편이 나를 맞춰주는 편이다. 이를 테면 내가 가고 싶은 장소가 있으면 최대한 함께 가려고 한다. 그 덕분에 우리는 자연을 좋아하고, 느림의 미학을 즐기고(나는 가끔씩 바쁜 도시도 좋아한다), 골목이나 가게 구경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각자의 취향은 너무나 다르지만, 같은 공간에 같이 있으면서 각자가 좋아하는 부분을 찾고 있었다. 내가 아기자기한 소품을 볼 때, 남편은 인테리어나 공구를 보고 있다. 그래서 각자의 취향을 존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소소한 듯 특별한 우리의 남해여행 대성공. 남편 만세만세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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