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12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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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2일 금요일,
아기가 없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방 안엔 우리 밖에 없다. 이내 깊은 잠에 빠진 남편의 숨소리가 들렸고, 나는 어둠속에서 한참동안 폰을 만지다 스르륵 잠이 들고 말았다. 새벽 중에 맘마를 먹거나 우는 소리가 들리면 달려나갈 생각이었는데, 나는 몸이 무겁도록 피곤했었고 바깥에선 소리도 나지 않았다. 아침 8시 전에 눈을 뜨고 거실에 나갔더니 나무는 자고 있다. 5시간을 자고 일어나서 맘마를 먹이고, 다시 자고 있다며 세상 순둥이로 에쁜 짓을 했었더랬다. 그. 새벽에 울지도 않았다고 했다.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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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 돌아온 아기 맘마시간.
다 먹이고 나서 똥파티를 끝내고 함께 기도문을 읊는다. 아기를 안고 명절을 맞이하는 분위기는 처음이라 마냥 신기했다. 세배도 드리고 세뱃돈도 받았다. 큰집에서는 아들들은 놔두고 며느리들에게만 봉투를 주신다. 결론은 나만 봉투를 받았다고. 헤헤헤. 아침메뉴는 떡국이었다. 어머님이 사골 육수로 떡국을 만들어주셨다. 막걸리 한 잔은 활력소였네. 나무는 우리를 배려하듯 그 시간엔 잠을 자고 있었다. 아니면 아기체육관으로 혼자 놀거나. 여러모로 이쁨받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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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시간에는 대부분 잠을 자던 나무.
어머님은 지금까지 만나지 못 했던 시간들을 압축해서 어제 오늘 이틀에 걸쳐 나무를 돌봐주셨다. 아기띠도 하셨다가 안았다가, 맘마를 먹이고 트림, 기저귀도 갈아주시고, 놀아주시기도 하신다. 덕분에 우리는 체력을 비축해놓은 상태. 점심은 어머님표 소고기국. 재료를 다 준비해오신 덕분에 뚝딱뚝딱 음식들이 나왔다. 저녁이 다 되어가도록 할머니 품에 파묻혀 자던 나무. 이제 100일 쯤에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빠빠이를 했다. 분명 잘 자고 잘 놀던 나무는 바로 본모습으로 돌아왔다. 칭얼거리고 맘마 달라고 울고불고. 그래도 좋다고 나무를 얼싸안고 신이 났다. 곁에 있었지만, 그립고 보고싶었어. 오랜만에 보는 영화. ‘삼진그룹 토익반’을 틀었다. 중간에 몇 번씩 멈추기도 했지만 잘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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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낮에 일이 생각났다.
밥을 안치려고 밥솥과 쌀을 꺼냈다. 요즘 부엌살림을 잘 안하고 있었더니 밥 양을 얼마만큼 해야할 지 몰랐다. 백미 3, 현미 1 비율로 하면 된다고 남편이 알려주는데 몇 번을 되물었는지. 그러다 갑자기 촤르르르르르.. 내 팔에 부딪혀 쌀을 쏟았다. 사방팔방 튀어나간 쌀덩어리들. 남편이 한숨을 푹 쉬었다고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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