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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zard Writer Oct 25. 2024

#10. 부캐를 만드는 시간

창조, Artist Child in Hawaii 10/12

호놀룰루미술관의 자화상 그리기 수업에 등록했다. 평소에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소묘, 인물이나 신체 그리기를 배워야 하나 고민도 했다. 하지만 이번 1년 하와이살이 여정의 테마를 생각한다면 역시 나를 그리는 게 맞았다. 대체 나는 어떤 사람이며 내 얼굴은 어떠한가. 사실 스스로 그리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이 그려준 모습이 궁금하고 기대되지만, 그려주겠다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먼저 그려보기로 했다.


원래 3시간짜리 수업이 인기를 얻어 10주 과정으로 만들어졌고 나는 1기였다. 선생님은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아닐 수도 있다- 싱글 여성. 실은 미술관에 가끔 올 때 본 아시아계 중년 남자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싶기는 했다. 한국에서는 압구정에서 젊은이들이나 그러고 다닐 법한 반바지에 캐주얼 수트를 깔끔하게 차려입고 학생들과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문답하는 수업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그분 대신 만난 우리 선생님은 본인 입으로 ADHD가 있다고 말했다. 나는 스스로 ADHD라고 말하는 텍사스 출신 친구도 만났는데, 우리 같으면 굳이 드러내지 않을 것을 마치 '나 비염 있어' 정도로 스스럼없이 말하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우리 선생님은 우리 선생님 대로 유능한 예술가이고, 그 텍사스 출신 친구도 NASA 근무 경력이 있고 누구보다 똑똑하고 정신과 체력이 탁월한 친구라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ADHD가 뭐든 간에 우열에 관한 범주가 아니라는 뜻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ADHD라고 하면 집중력 결핍이나 과잉 행동장애라는 정의보다는 자기만의 재능이 유난히 특색 있는 사람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 각자가 하나의 온전한 나라이며 방문할 만한 흥미로운 장소라고 생각하자…
우리는 자신의 예술의 원천이며 고향이다.
... 독창성이란 결국 자신을 변함없이 진실하게 대하는 과정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마틴 스콜세시 감독의 말을 빌려 수상 소감을 밝혔다. 알고 보니 마틴 스콜세시와 아티스트 웨이의 저자인 줄리아 캐머런은 옛날에 일로 만나 부부였다가 이혼한 사이다. 책에서도 스콜세시 감독의 이름이 언급되는데 캐머런이 영화, 시나리오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두 사람은 이렇게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둘은 입을 모아 말한다. "너 자신이 돼라, 그것이 바로 창조적인 것이다."


나의 창조성을 방해하는 것들을 생각해 본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중요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일, 돈, 가족. 나는 내 일을 무지 사랑할 뿐 아니라 가장 행복한 순간이 바로 내가 하는 일의 특정 부분이다. 그런데 그 특정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한 몰입이 과해질 때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시간이 부족하고 건강이 나빠진다. 돈은 또 어떠한가. 과도한 풍족은 불필요한 소비를 조장하고 최악은 신이 내게 돈을 벌 능력 주셨음을 잊는 지경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가족... 이제는 자신을 지키는 법을 어느 정도 터득했지만 이렇게 중심을 잡기 전에는 나를 나 자신의 모습으로 살 수 없게 만드는 것이 가족이었다.


왜 이렇게 되는 것일까? 나는 창조성을 가로막는 독약 테스트 중 다음 세 가지에서 그 답을 찾았다.


첫째, 나는 창조적 작업이나 놀이를 위한 시간을 우선순위에 놓는다. (전혀 그러지 않는다)

둘째, 나는 업무보다 나의 창조적인 꿈을 존중한다. (전혀 그러지 않는다)

셋째,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식 시간을 마련한다. (전혀 그러지 않는다)


캐머런은 단 한 시간 만이라도 창조적인 일이나 놀이를 한다면, 우리의 꿈을 가로막고 있는 일중독에서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며, 자신을 합리화하는 핑계를 없애려면 최저선을 정해두는 것이 좋다고 제안한다. 내 안의 아티스트를 살려 부캐를 만들고자 한다면 창조적 활동 또는 놀이를 우선순위에 놓고, 그 부캐의 꿈을 존중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식도 보장해야 한다. 본캐와 부캐를 오가다 보면 방전될 것이 뻔하므로.


이렇게 해서 장래 영화감독을 꿈꾸는 작가로서 내가 정한 최저선은 이렇다. 창조적 활동을 포기하지 말 것. 어찌 됐든 글을 쓸 것. 매주 안되면 매월이라도 발간할 것. 한 번 흐름을 놓치면 다시 잡기 어려우니까. 특히 영화를 정기적으로 보고 리뷰할 것. 일 때문에 이를 미루지 말 것. 특히 영감을 주는 비올라 레슨이나 중국어 수업도 취소하지 말 것.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누리는 휴식 시간을 보장하며 나만의 노동법을 지킬 것. 예컨대 향기로운 커피, 갓 구운 바삭한 크로와상, 행복한 색감의 그림, 공간 구성이 훌륭한 인테리어, 품위 있는 식견을 담은 책, 신선한 과일, 건강한 스낵, 몽글하게 끓인 따뜻한 토마토 스튜, 단일 색상으로 열 송이 이상 묶인 튤립, 산과 바다, 시골집과 농촌 풍경을 꾸준히 공급해 줄 것.




이 글은 줄리아 캐머런의 '아티스트 웨이'를 읽으면서 12개 챕터마다 와닿은 문구에 하와이의 일상과 나 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을 엮은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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