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Artist Child in Hawaii 11/12
"언니, 대체 하와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나의 옷차림 변화에 친한 동생이 웃으며 물었다. 검은색이라고는 블라우스 하나, 바지 하나, 원피스 하나, 재킷 하나 이렇게 딱 네 벌만 있는 나였다. 십 년 이상 직장생활을 하면서 경조사용이라고나 할까. 그 외에는 검은 티셔츠 하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하와이에 와서 블랙의 시크함에 빠지기 시작했다. 미국인들이 워낙 검은 운동복차림을 하고 다니니까 거기 익숙해진 탓일까. 일단 블랙 캡을 하나 써봤다. 하와이의 작렬하는 태양을 가리기에는 선글라스만으로 부족하다. 선글라스는 기본이고 그 위에 모자를 눌러써줘야 위에서 내리쬐는 빛으로 인한 눈부심이 가린다. 다음은 검은 탱크톱을 하나 입어봤는데 퍽 잘 어울렸다. 괜찮은데? 그다음은 검은 티셔츠. 음... 나쁘지 않아.
그러고서 한국에 돌아와 내 옷장을 보니 도무지 정신이 사나워 견딜 수 없었다. 이전에는 그렇게도 기쁨을 주던 옷장이 골칫덩이가 되는 순간이었다. 어떤 옷이 있는지 어느 정도 머리 안에 들어와야 어떻게 입을지 생각이라는 걸 해보는데 이건 변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안 되겠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머뭇거려지는 옷을 죄다 추려 내고 계절별로 상의! 하면 줄줄, 하의! 하면 줄줄, 머릿속에 다 생각나고 한눈에 그려지도록 자주 입을 옷만 남겼다. 소위 말하는 캡슐 옷장을 지향한다고나 할까.
나는 보편화된 브랜드보다는 미술이나 패션 전공자가 자기 브랜드를 구축한 상품을 좋아한다. 특히 내가 즐겨 구입하는 브랜드는 네 가지 정도인데, 셋은 미술 전공자인 듯하고 한 사람은 확실히 패션을 공부했다. 미술을 공부한 듯한 세 사람의 색감 플레이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감탄스럽다. 어떻게 이 색깔과 저 색깔을 매치할 생각을 했지? 어떻게 이 셔츠랑 저 바지를 같이 입지? 대체 저런 옷(신발)은 어디서 난 거지? 이런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을 정도로 색깔을 가지고 놀아버리는 컬러 플레이와 감수성이란! 다른 사람은 소화할 수 없고 어색할 텐데 각자 자기의 모습 그대로, 다른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않기에 자신만의 멋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모양이다.
이토록 추앙하는 그녀들의 옷차림과 컬러 감성을 즐기면서도 내 옷장은 바둑알처럼 흑백으로 채워가는 중이다. 여전히 알록달록한 가방과 신발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물론 그녀들의 발끝에도 미치지는 못하나- 확실히 달라지고 있다.
그러고 보면 집도 그렇다. 이전에 내가 살던 집은 프랑스 옥탑방을 연상케 하는 빈티지 그 자체였다. 아니, 이건 포장이고 누군가는 '빈티'난다고 할지 모른다. 아무튼 그렇게 만족스럽게 살던 집을 두고 다음 집으로 이사할 때는 집을 도화지처럼 만들어버렸다. 벽도 바닥도 하얗게. 아무것도 없이. 벽에 못 하나 박지 않는다. 뭐라도 하나 거는 순간 끝이라는 생각으로. 하나씩 걸어대면 끝없이 갖다 거는 내 안의 맥시멀리스트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다.
집이 이렇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회사 일이 저글링 하듯이 여러 가지가 돌아가니까 집에 와서는 심플하게 쉬자는 것. 거실은 티브이를 켜면 영화관으로, 요가 매트를 깔면 스튜디오로, 음식을 깔면 식당으로 바뀔 수 있도록 빈 공간을 만들자. 나머지 공간에는 오직 하나씩만. 침실에서는 잠만 자고, 서재에서는 공부만 하고, 옷방에서는 옷만 갈아입기.
분명 회사 일이 복잡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옷장까지 바뀌는 걸 보면 이건 심경의 변화인 듯하다. 하와이살이를 통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에서 제안하는 모닝페이지와 아티스트 데이트 등으로 일상의 궤도가 조금씩 바뀐 탓일까? 아주 미세한 각도의 변화가 궤도 상으로는 나중에 엄청난 방향의 차이를 가져오듯 한국에 와보니 달라진 나를 마주한다.
가장 달라진 것은 운동과 요리. 하와이에 있을 때만큼 매일 하지는 못해도 퇴근 후 건강한 식재료로 간단히 만들어 먹고 1시간 정도 몸을 움직이려고 한다. 모델 한혜진의 말처럼 캐머런도 운동은 그에 따르는 보상이 있음을 강조한다. 운동은 우리를 침체에서 영감으로, 문제에서 해결로, 자기 연민에서 자기 존중으로 옮겨주는 과정이자 방법임에 확실하다.
또 내가 받드는 김창옥 강사님이 그랬다. 시작할 때 하기 싫어도 끝날 때 기분 좋은 일이 진짜 좋은 일이라고. 운동이 딱 그렇다. 준비 운동을 할 때는 '아 찌뿌둥하네'하면서 근육이 땅기는 게 싫지만 운동 후에는 날아갈 듯 시원하다. 내 존경하는 은사님은 머리가 안 풀릴 때는 몸을 쓰고 몸이 안 좋을 때는 머리를 쓰라고 하셨다. 사람에게 육체와 정신이 있는 이유는 둘 다 조화롭게 쓰고 서로 도우라는 모양이다.
모닝페이지와 아티스트 데이트는 하와이에서처럼 매일 또는 매주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살이에서는 매주 그리고 매월로 주기를 늘여서 적용해야 할 모양이다. 머릿속의 엉킨 실타래를 풀어내는 모닝페이지가 쓰고 싶고 나만의 놀이 시간이 기다려지기는 하니까. 토요일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일주일 동안 머리와 가슴에 쌓인 응어리를 털어내기. 그중 어느 토요일은 사람 없는 아침 일찍 영화관 나들이를 갔다가 맛있는 점심을 해 먹고 영화 리뷰를 써야지. 느리지만 작은 변화가 일 년 후 십 년 후를 다르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블랙의 시크함이 나에게 의미하는 바가 뭔지는 좀 더 생각해 볼 일이지만, 변화의 신호임에는 분명하다. 부캐를 본격 가동하기 위해서 골치 아픈 일을 하나 더 줄이려는 준비일까. 아니면 단순히 나이 한 살 더 먹으면서 한결 차분해진 취향에 불과할까. 이러다 스티브잡스처럼 블랙 티셔츠와 청바지만 남는 건 아닐까.
이 글은 줄리아 캐머런의 '아티스트 웨이'를 읽으면서 12개 챕터마다 와닿은 문구에 하와이의 일상과 나 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을 엮은 시리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