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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희 Sep 02. 2021

운세를 믿습니다.

운세 활용법

   십 대의 끝 무렵이었던가? 이십 대 시작 무렵이었던가? 아무튼 그쯤 언젠가 엄마에게 이런 소리를 했다.

 

   "엄마는 좋겠다. 벌써 자식들이 이만큼 커서. 자식으로부터 자유로워졌잖아. 또 잘난 자식은 없지만 사고 치는 못난 자식도 없잖아. 난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그때 엄마는 이런 대답을 했다.

 

   "몸은 자유로워졌지만, 자식이 커 갈수록 걱정의 무게는 더 무거워진다."



   엄마는 자식이 클수록 자식 키우는 게 더 힘들어진다고, 걱정을 해야 하는 종류의 무게가 더 무거워진다고 했다. 자식 걱정은 평생이다 라는 말이 있듯 걱정거리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 무게에 대한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땐 걱정의 무게 따위는 잘 모르겠고, 단지 잘난 자식도 그렇다고 못난 자식도 없이 무사히 주행 중인 엄마의 인생이 부러웠다.


 

   이쯤에서 혹여나 글쓴이는 자식 계획을 마음속에 품고 있구나 하고 추측했다면, 그 추측은 틀렸다. (결혼과 출산이 필수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독신도 딩크족도 나의 미래가 되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편) 다만, 결혼과 출산을 택한 여성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자식 문제일 테니까. 엄마 인생의 중요한 한 요소가 성인이 될 때까지 심한 경로 이탈을 하지 않고 잘 주행되었음이 곧 엄마 인생의 모습 같아서 그 사실이 부러웠다.


 

   자식이 커가면서 그에 대한 마음의 무게가 점점  무거워지는 것처럼 어릴  그저 천진하게 매일을 살다가 나이가     많아질수록 인생이 얼마만큼 불안한 것인지  얼마만큼 어렵고 무거운 것인지 점점  불투명해지는 인생을 아니, 인생이 얼마나 불투명한 것인지  실체에 대해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는 듯하다. 아마 엄마가 부럽다고 말했던  시기에 덜컥  사실이 크게 다가왔었던  같다.


 

   사주, 점, 타로 등등 미래를 점쳐주는 곳은 대게 불투명한 앞날의 투명색을 알아내기 위해 찾아간다. 즉, 삶이 불투명할수록 찾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어린아이들보다 어른들이 유독 더 그곳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도 삶이 얼마나 불투명한 건지 그게 얼마나 불안하고 갑갑한 일인지 보다 더 많이 체감해서이지 않을까? 불안하고 갑갑하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처럼 의지해 보는 거다.


 

   나 또한 어릴 때는 점 같은 것에 관심이 없다. 보고 싶지도 궁금하지도 않았다. 믿지 않지만 재미로라도 듣고 나면 괜히 신경만 쓰일 것 같았다. 이런 걸 찾아다니는 사람을 배척할 마음은 없었지만, 나는 절대 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인터넷에서 재미로 보는 사주, 운세 같은 걸 슬며시 보는 내가 있다. 원하는 말이 나올 때까지 이쪽저쪽을 돌아다니면서 말이다. 원하는 말을 찾았을 때 그제야 핸드폰을 끄고 잠에 들었다. 한동안 그런 패턴에 중독처럼 빠져있었다. 그런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면서도 헤어 나오지 못하는 스스로를 또 한심하게 여겼다. 이런 걸로 시간을 쓸 시간에 현재를 잘 살아내는 게 더 마땅할 텐데 하고서 말이다.



   중독은 마음이 편안해 지자 자연스럽게 끊겼다. 하지만 잊고 살다 또다시 중독에 빠졌다. 그렇게 빠졌다 나오기를 몇 번 반복하고 나서 또다시 중독에 빠져있었을 땐 이런 생각을 했다.



   '나 지금 불안하구나.'


 

   중독인 줄 알았는데 마음이 편해지면 끊으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찾지 않게 되는 패턴을 이해하고서는 이 행위를 하는 나를 인정해 주게 되었다. 마음이 편안해지면 그만두겠지, 잠시 한동안인데 어때 하고서 말이다.  



   요즘도 모 포털사이트에 나오는 오늘의 운세를 자주 검색한다. 오늘의 운세, 내일의 운세, 이번 주 운세, 이번 달 운세 등등 생일만 입력하면 다양하게 알 수 있다. 이걸 즐기는 나에게 누군가 이제 이런 것들을 믿게 되었냐고 묻는 다면, 유명하다고 찾아가서 돈 주고 보는 것도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마음에 안 드는 건 무시할 마음인데 무료로 숫자 몇 가지만 딸깍 입력하면 다 내려다보는 척 조언 해 대는 이것을 어떻게 믿겠냐고 답할 것 같다. 하지만 정말 즐기면서 운세를 보기 시작한 이후로 오늘의 운세를 삶에 접목시키는 방식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원하는 말이 나올 때까지 찾아다니는 답정너(답이 정해져 있는 너) 였다면, 요즘은 오늘 하루는 공부가 잘 되는 날 이랬어하고 조금 더 공부해 보고, 오늘 하루는 행운이 따른다고 했어하고 지금 벌어진 이 일이 오늘의 행운일까? 하고 하루에 집중한다. 혹시나 오늘 하루는 좋지 않다는 결과가 나오면 생활하면서 작은 불행에 덥석 이게 오늘의 불행인가 하고 가볍게 해치웠다 생각해 버린다. 그렇게 하면 어차피 올 불행이었으니 그 불행을 아프지 않게 잘 받아들이게 된다. 또 공부가 안 되는 날이라고 했는데 정말 안되었다면 그 또한 위로가 된다. 내가 못난 게 아니라 오늘은 그런 날일 뿐이야 하고서 말이다.



   어차피 믿거나 말거나인데 이왕이면, 보지 않을게 아니라면 이왕이면, 불투명한 매일에 오늘의 운세를 붙잡고, 행운이 있다는 말을 믿고 더 앞으로, 불행이 따르는 날이지만 인생을 뒤 흔들 불행이 오지 않았음에 또 앞으로! 이렇게 매일을 불투명 속으로 가다 보면 모르는 사이 투명색을 지나치고 있지 않을까? 잘난것도 그렇다고 못난 것도 없는 그쯤에서 헤매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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