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윤희 Sep 18. 2022

1년, 1막 끝.

순수의 세계

   1년, 나를 둘러싼 철갑을 벗겨내고 진실과 마주하겠다는 선언 그리고 그에 따라오는 감정 변화를 글로 풀어낸 지 1년이 넘었다. 나의 불안을 주저리 거창하게 써 놓은 글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읽어 준 예쁘디예쁜 누군가는 ‘너는 글 말미에 잘 이겨낼 거야, 파이팅이라 해 놓고 그다음 글에 또다시 아프다, 아프다 한다.’며 웃어 보였다. 내 진지한 글들이 웃겼다니, 웃프지만 그가 콕 집어낸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혹 그게 좀 모순적이어도 어쩌겠는가, 마음속에 판도라 상자가 생성되어있는지 몰라서 열지 못 했고, 알고도 두려워서 차마 열 수 없었던 그곳에는 한 가지의 문제만이 묵혀있던 것이 아니었던 것을. 온갖 복합적인 인생이 뒤섞여 있는 오래되고도 복잡한 것들 사이사이 뒤엉켜 있는 먼지들을 잘 털어내기에는 한 순간의 파이팅만으로 해결될만한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토록 열기 두려웠던 판도라의 상자, 나는 지난 1년을 후회할까? 1년 전 나를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라고 조언할까?   


        

   사실은 잘 모르겠다. 나는 그로 인해 쾌청하던 마음에 어둠이 내렸다. 슬픔이 생겼고, 스스로에 대한 애처로움이 생겼고, 한 시절 누군가에 대한 원망이 이제 와서 생겨버렸다. 그리고 너는 좀 외로워라는 말을 들을 만큼 혼자여도 꽉 차 있던 감정에 ‘그 어떤 걸로도 채울 수 없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대해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외로움이 생겼다. 밝은 점이라고는 딱 한 가지, 스스로에 대한 허용, 그런 나라도 괜찮다고 아껴줄 정도의 또 다른 모양의 자존감이 생겼다는 점뿐이다. 그래서 때때로 많은 것을 씩씩하게 외면하고 무시한 채 밝음으로 나를 감싸 냈던 때를 그리워했다. 어둠이 주는 감정적 힘듦을 감당하기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또 그럼으로써 그것이 과연 괜찮아졌는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다만, 그 시간이 유용하게 쓰일 때도 있음을 인지하며 살아갈 뿐이다. 주변과 세상의 감정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긍정과 완벽을 갈고닦던 시절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네 말이 이성적으로 다 맞지만 생각처럼 마음이 그렇게 바로 먹히지는 않는다.’


   이런 말을 들었던 그때, 더 이상 주변에 긍정 혹은 이성적으로 내려지는 판단에 대해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비록 그게 왜 안 되는지, 생각해보면 고통에서 벗어나는 법이 분명 맞는데 왜 마음이 흔들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다름과 이해할 수 없음이 있지만 그럼에도 인정받아야 할 무수히 많은 다름들이 존중이란 이름으로 공존해야 할 테니까.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면서 비로소 이성이란 것이 완전히 작동된다는  쉬운 일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참아지지 않는 감정과 감정에 주도권을 뺏겨야만 하는 순간들, 도무지 그칠  모르는 감정이 나를 불안에 떨게 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세상에 도덕과 이성으로는 해석되지 않는 많은 감정과 현상이 있음조금은 이해할  있었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마음처럼 쉽게 제어되지 않는지도 말이다. 이를  맞닥뜨린  시점에서, 이게 과연 덕분이라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이라면 덕분에, 세상을 함께 아파할  있게 되었고,  많은 부분을 공감할 수도, 가슴 깊이 위로할 수도 있게 되었으며, 세상의 이야기를  많이 포용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애써보면 잘할  있을 거라고 너무 많이 아프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왔던 나는, 세상에 배신을 당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나의 순수의 세계는 막을 내렸다.



   세상은 누구도 피할 수 없고 알 수도 없는 슬프고 불행한 운명이 얽히고 얽혀 복잡하게 꼬인 채로 인간의 감정을 농락한다. 그리고 이유 없이 얻은 그 운명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으며 그에 따른 감정과 현실은 오롯이 인간의 몫이다. 잘 받아 내느냐, 잘 해석하느냐, 아니면 짊어지고 가느냐....                     -1막을 마치며.




2021.05

https://brunch.co.kr/@wjd634/54


                                                                                                                


                                      




이전 14화 최악일 때 더 최악인, 최악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