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통창 원룸에서 사는 꿈을 이루다.
홍콩에 도착한 다음날, 첫 집을 보러 갈 예정이었고 동시에 바로 집을 구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다. 이미 일주일 전에 도착한 나의 입사 동기는 도착한 당일 집을 계약하고,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기에 차마 다음 주까지 며칠 더 집을 보고 싶다고 말할 수 없었다.
‘신축’이고 위치도 괜찮아서 알아봤다는 동료의 말과 직접 알아봤을 그 수고로움을 받아들여 그 집을 선택하는 게 거의 유일한 선택지처럼 보였다. 자취를 해 본 적이 없어 집에 대한 선택 기준이 전혀 없었고, 당시엔 딱히 로망도 없었으나 어디서나 살고 싶진 않아서 왠지 불안하기도 했다. 또 그 전날, 고층 신축 집인데 복도에서 바퀴벌레를 봤다는 글을 봤던 터라 고작 15층으로 괜찮을까 싶었다.
다행히 ‘신축’은 역시나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었다. 당연히 깨끗했고, 시스템도 최신이었고, 바닥이나 벽, 기타 포함된 기기가 새것이었다. 회사에서는 조금 멀었고, 추가로 15만 원 정도를 월세로 더 지불해야 했지만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이 당시 홍콩은 한창 새로운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오래되고 낡은 건물 사이에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곳곳에 건물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대체로 원래 살던 집을 새로 리모델링하는 경우가 많았던 홍콩에도 변화가 있던 것이다.
덕분에 침대만 하나 들어가는 좁은 방이지만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었다. 특이하게도 ‘아파트’라 불러도 단일 건물인 형태가 많고, 호텔처럼 리셉션이 1층에 있어 카드키가 있어야만 출입이 가능한 구조였기에 더욱 안심이 되었다.
집이 좋은 컨디션인 게 너무 다행이었다. 입주일, 월세, 계약 기간. 그 모든 것들은 당사자인 내가 아니라 동료들을 통해 협상되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없었기에. 원하는 조건을 요구할 수도 있었으나, 이번은 그냥 믿고 도움받기로 했다. 알고 보니 집주인은 충분히 영어가 가능하신 분이었으나 자연스럽게 광둥어로 협의가 진행되었고, 1년을 계약하고 싶었지만 2년으로 확정되며 홍콩 살이가 시작되었다.
첫 주, 커튼과 침대도 없이 하루를 보냈다. 통창이라 밖이 너무 훤히 보이는 탓에 임시로 비치타월을 붙여 일부를 가렸고, 대충 큰 옷들을 펼쳐 이불처럼 사용했다.
이케아를 들러 한참이나 직원과 실랑이를 벌인 끝에야 커튼을 설치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고, 그때 같이 가준 홍콩 친구가 없었다면 아마 나는 몇 주나 더 커튼 없이 살아야 했을 것이다.
한국처럼 당장 다음 주에 설치하는 옵션 같은 건 홍콩엔 없었기에 난 약 3주를 침대와 커튼 없이 살았고, 현관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고 출입문도 방문처럼 생긴 홍콩에서 나는 매일 밤 바퀴벌레가 틈으로 들어오는 꿈을 꿨다.
침대가 설치되던 날, 정말 꿀 같은 잠을 잤던 것 같다. 그리고 별 거 없는 4평 남짓의 집이지만 왠지 참 맘에 들었다. 달리 꿈꿔보진 않았는데 막상 자취가 시작되니 욕심이 커져갔다. 한 달간은 거의 매주 이케아를 들러 집기나 정리함을 사며 집을 꾸려갔다.
낯선 곳이지만 내 취향으로 채운 공간이 있다는 게 위안이 되었고, 그 공간을 잘 꾸려낸 덕인지 큰 어려움 없이 홍콩을 살아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