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KG의 짐과 4만 홍콩달러에 맡긴 해외생활
금요일에 퇴사를 하고, 부랴부랴 마지막 짐을 꾸린 후 토요일에 홍콩으로 떠났다. 교환학생과 여행으로 짐 싸는 데 꽤 숙달이 되었다 싶었는데 하루밖에 시간이 없으니 꼼꼼하게 짐을 꾸릴 여유도 없었다.
누가 해외 여행도 아니고 해외에 살러 가면서 이렇게 간단 말인가. 달리 방법은 없었다. 앞서 면접, 비자, 교육 등으로 중간중간 연차를 다 써버려서 퇴사하는 마지막 날까지 근무를 해야했다. 더군다나 남은 업무가 꽤나 많았던 탓에 인수인계도 간신히 근무 시간 내 끝마치고 올 정도였다.
미국행 때는 이불에 상비약 키트에, 생각난다 싶은 건 다 챙겼던 것 같은데 어차피 4계절이 다 여름에, 모자란 건 택배로 받자 싶어 보이는 것들로만 잔뜩 채웠다. 그 흔한 여행용 고추장 하나 챙길 짬이 없었다. 그렇게 50KG 남짓의 짐에 내 홍콩살이를 맡겼다.
번갯불에 콩 볶듯 홍콩행을 결정하니 퇴사로 마음은 후련했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집 값 세계 1위라는 홍콩에서 집은 잘 구할 수 있을지, 새로운 곳엔 잘 적응할런지, 또 인격에 문제가 있는 상사와 동료로 고통받지 않을지,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도망쳐야할지 걱정이 산더미였다.
다행인 건 2019년의 해외살이는 2013년 교환학생 때와는 너무도 달랐다. 각종 커뮤니티와 블로그의 활성화, 유심만 바꾸면 이용가능한 현지 데이터와 전화, 폰으로 처리 가능한 해외 송금까지. 돈과 폰이 있으면 대부분의 것들을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어 정착에 있어서는 불편함을 많이 덜 수 있었다.
홍콩에 도착하니 모든 건 실전이었다. 이미 여름이 시작된 홍콩은 저녁에도 27-8도의 날씨였고, 내일은 어떻게든 집을 구해야했다. 하필 어떤 행사로 도로가 모두 막혀 땀을 뻘뻘 흘리며 공항철도를 탔던 그 날의 습도와 온도가 아직도 생생하다.
첫 끼를 베트남 쌀국수로 달래고, 회사 부근을 돌아다녔다. 앞서 회사 생활이 너무 고된 덕에 첫 퇴사와 암울한 환경에서의 탈출을 제대로 축하하진 못했지만 어쩐지 익숙한 한국보다 편한 마음으로 첫 날을 보냈다.
아찔한 더위, 회사로 가는 가파른 오르막 길, 하필 도착 날 막힌 도로. 왠지 홍콩 라이프도 쉽진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도 있었지만 어쩐지 새로 만난 동료들과는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압도적인 크기의 스텔라 생맥주 잔을 마주하며 홍콩은 어떤 곳인지, 일은 어떤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고, 그렇게 폭풍같던 홍콩에서의 첫 날이 끝났다.
어쩐지 내가 한국에 있지 않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 밤이었지만 무언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잠들기 바쁜 밤이었다. 집 구하기, 관련 비용 처리하기, 폰 개통하기, ID 발급 받기. 내일부터 정착을 위해 처리할 일들이 산더미였으니.
없는 틈에서도 막연히 빌었다. 이번 직장은 꼭 괜찮은 동료와 함께하게 해달라고. 다시 나를 찾게 해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