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인 줄 알았는데 도약이었다.
어째 다시 비슷한 시작 같지만, 마침표를 찍지 못해서 다시 시작하는 나의 홍콩살이 회고. 1년을 계획했으나 결국 3년을 살았고, 바퀴벌레만 아니었다면 더 살았을지도 모르는(정말로) 나의 첫 장기 해외 정착지 홍콩. 도피가 필요했던 때 오히려 도약을 남겨준 아주 뜻깊고도 중요한 인생의 한 페이지였다.
2년 남짓 재직 후, 첫 회사에서 퇴사했다. 당시 회사 사람들은 ‘정규직을 두고 왜 사서 고생을 하냐?’라는 분위기였지만(실제로 기존직원 중 퇴사한 이가 손에 꼽는다.) 당시 팀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내 퇴사를 응원했으며 나는 도피처가 필요했다.
그렇지만 그저 도피처가 아니라 동시에 매력적인 기회가 있는 곳이어야 했다. 그때, 나는 가스라이팅과 정치가 만연한 곳에서 도망치는 중이었으니까. 열심히 하고자 했던 나의 마음이 결국 스트레스로 온몸에 퍼져 블랙아웃으로 이어졌을 때, 이곳을 무조건 떠나야겠다고 다짐했다. 보란 듯이 더 좋은 기회를 찾아가고 싶어 단순하게 선택한 것이 해외행이었고, 마치 누군가가 나를 이끌어주듯 이직을 마음먹은 그달에 홍콩살이가 결정되었다.
어떻게든 나를 설득해 보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내 의도대로 더 좋은 기회를 자랑하며 그곳을 걷어차고 떠났다. 한국과 왕래가 가능한 거리에 있는 해외, 현재 내가 하는 일과 연계되고 커리어의 확장성도 있을 것, 주거와 복지가 충분히 제공될 것 등 평소엔 없는 J력을 끌어모아 계획한 이직이었지만 한 달 만에 훌쩍 해외살이가 확정되었다.
딱 1년만 살아보자는 가벼운 마음이었기에 가능했던 것도 같다. 입사가 확정되니 비자를 받고, 이사 준비를 하는 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눈치를 챘던 건지 ‘너 없이 일을 어떻게 하냐’면서도 제대로 된 면담조차 없이 사직서를 결재하는 팀장을 보면서 이직하길 정말 잘했다고 재차 생각했다. 인생에서 잘한 선택 중 하나라 용기를 내고, 꾸준히 공부했던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그 시절은 그저 상처받고, 당연하게 야근하며 다른 이의 일까지 넘겨받았지만 고과는 바닥이었으며, 사수 없이 혼자 성장해 온 시기였기에 이력서상 의미 없는 한 줄로 남았다. 여러 이유로 더 일찍 그만두지 못했던 그 시절의 내가 아쉽지만 또 그 처참한 시절을 잘 탈출한 덕에 회사에서 겪는 웬만한 어려움은 웃어넘기는 직장인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금요일에 퇴사, 토요일에 홍콩으로 간 (그 회사에서는 특히나 드문) 정규직 퇴사자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정의하는 나의 Phase 2와 서른을 맞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