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순간을 모아 기록한 나의 홍콩 라이프
“나 요즘 중간중간 일상 찍어서 브이로그 만드는데 은근히 재밌어. “
시위와 코로나로 비행기가 끊기기 전 마지막으로 친구들을 만나 나눴던 대화 중 일부다. 근황을 묻던 중, 바쁘기만 한 일상을 조금 특별하게 해주는 방법으로 브이로그를 찍고 있다며 친구가 본인이 찍은 영상을 보여줬다. 점심시간에 동료와 나눈 짧은 잡담, 퇴근 후 어떤 메뉴를 요리하는지를 담은 소소한 하루가 담겨있었다.
휴가가 끝나고 홍콩에 돌아와서도 왠지 브이로그가 마음에 남았다. 사실 홍콩의 환경 자체는 내게 아주 매력적이지 않아서 꽤나 주변을 둘러보는 데 소극적으로 변하고 있던 참이었다. 일과 집만 반복하다 홍콩을 잘 알지도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바로 친구가 추천한 어플을 깔고, 출근하는 길부터 냅다 찍기 시작했다. 평소엔 절대 찍지 않는 점심과 저녁 메뉴, 홍콩의 마켓처럼 매일 겪는 일상부터 시작했다. 처음엔 영상미나 색감 같은 건 고려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잠시 멈춰 카메라를 들고 영상을 찍는 것부터가 왠지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길을 가다 큰 소리가 나도 0.5초의 눈길만 주고 다시 본인의 길을 가는 홍콩의 거리였기에 점점 촬영하는 영상의 길이가 길어지긴 했지만.
편집도 처음에는 컷, 자막과 배경음악 넣기까지만 했다. 처음 만든 영상은 고작 2분 길이였던 것 같은데, 촬영하고 편집하는 시간을 다 합치면 족히 1시간은 걸렸던 것 같다. 매일매일 하루의 조각을 모으니 촬영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고, 누군가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 남기는 일기다 보니 딱히 올리는 것도 부담이 되지 않았다. 하루하루 남기다 보니 일요일에 편집을 해서 올리는 게 일주일의 한 일과로 자리 잡았다.
하다 보니 욕심이 커져 반복되는 일상에서 평일 저녁의 해피아워, 전시회 투어, 맛집 탐방으로 점점 다양한 영상이 채워졌다. 2분으로 시작한 영상도 곧 10분이 되어 일주일을 꽉꽉 담았다. 오그라드는 부분도 있었지만
한두 달 뒤 다시 예전에 올려둔 영상을 보면 느낌이 또 색달랐다. 다행히 큰 악플없이 홍콩이 궁금한 누군가도 잔잔하게 보는 영상이 되었다.
마침 홍콩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커피를 잘 마시지 않는 홍콩에도 카페거리가 생겨났으며 대형 미술관과 문화지구가 조성되고 있었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 덕에 영화, 공연, 전시를 찾아다니는 재미도 쏠쏠했다.
특별한 일상을 담은 건 아니었지만 나의 생활은 참 특별해졌다. 조금 더 예쁘게 영상과 사진을 담고 싶었고 결국 기술보다 마음이 중요하단 걸 깨달았다. 그저 지나치는 일상에도 잠시 멈춰보면 참 괜찮은 모습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홍콩살이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이걸 깨달은 건 정말 행복한 일이었다. 브이로그 덕에 최근 몇 년 간 가장 열정적으로 주변을 다니고 다양한 걸 시도했고, 삶이 다양한 순간으로 풍족해졌다.
마음이 한없이 바빠지는 순간 홍콩 영상을 보면 괜스레 마음이 몽글몽글 해진다. 분명 그 시기 더운 여름, 벌레가 우글거리는 거리로 스트레스받곤 했지만 좋은 순간 덕에 그것들에 지치지 않았고, 지금은 더 좋은 기억으로 가득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