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 강남으로 이사가?

by 정돈서재

잘 노는 애들한테 치이고, 공부 잘하는 애들한테 치이다 보니 내 의지와 상관없이 노는 무리가 달라졌다. 함께 다녔던 재영이는 일찌감치 나와 놀지 않았다. 이쁘장한 외모에 날렵한 운동신경으로 장기자랑 때면 무대에서 춤을 추고, 운동장에선 작은 키에도 빠른 달리기를 보여주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가 노는 물은 달라졌다. 정확히 나열하긴 어렵지만, 내가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나약한 일진 친구들과 방황하는 형, 누나들이 재영이 주변에 모여들었다. 재영이 옆에 붙으면 자신도 이 친구처럼 멋있어질 것이라 생각한 것 같다. 그리고 재영이도 점점 변해갔다. 옆에서 환호할수록 점점 더 튀는 행동을 이어갔다. 사회가 규정하는 중학생의 규범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염색, 담배, 성적인 것, 폭력, 옷차림과 같은 것에 대해서는 각자 시선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남을 무시하고, 따돌리고, 집단으로 폭력을 가하는 것으로 재영이 주변의 무리는 자신들과 남들을 구분하고 있었다.



운이 좋게도 친구들이 물갈이되면서 ‘세상 무해한’ 친구들이 내게로 왔다.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친구. 그리고 항상 짝사랑하는 여자가 바뀌어 가슴 설레하던 찬규(가명)와 성연(가명)이와 친해졌다. 이 두 친구는 패션에 대해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그들이 선망하는 브랜드에 대한 설명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다. 지금은 사라진 MF(지누션이 만든 브랜드), 힙합 브랜드 FUBU, 내가 좋아했지만 요즘은 잘 안 보이는 Quick Silver, 고급스럽게 카라가 높은 NAUTICA(비싸서 난 한 번도 구매하지 못했다), 구두의 대명사 Timberland, 아직도 집에 있는 Sports Replay까지… 그때 당시 내 돈으로 사기 힘들던 옷들을 이 친구들은 어딘가에서 공수해 왔다. 그런 브랜드 스토리를 들으며 나도 한 벌 있었으면… 하는 옷들도 조금 있었다. 더 어린 시절엔 장난감이나 게임기에 한이 맺혔던 나의 소비는 지금은 잊혀진 90년대 명품에 쏠리고 말았다.


그중에서도 나는 Polo에 빠져있었다. 사실 그 당시 중학생이 살 수 있는 가장 비싼 브랜드이기도 했고, 폴로 로고가 박음질 된 셔츠와 모자를 쓰기만 해도 내가 고급스럽게 바뀔 것 만 같았다. 하지만 그 큰돈이 내게 있을 리 없었다. 근검절약이 몸에 밴 우리 집 분위기를 이제 막 친해진 성연이와 찬규가 알리 없었다.. 나도 좀 멋진 옷을 입고 싶다는 내적 갈망과 답답함이 커지고 있을 때, 나의 동지를 만났다. 나와 4학년 차이였던 형도… Polo를 원했던 것이다. 몸집이 슬슬 비슷해지던 시기라, 둘은 옷을 공평하게 나눠 입겠다는 조건으로 폴로와 퀵실버를 조금씩 사기 시작했다.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친구들은 오히려 나를 부자로 취급해 줬다. “오~ 뭐야. 이거 폴로 아냐?” 하며 내 셔츠 뒤편의 택을 이리저리 살펴보기도 하고, 어디서 들었는지 가품은 박음질에 표시가 난다며 폴로 직원처럼 말하곤 했다. 알다시피 나는 우리 집의 처지와 씀씀이에 만성 불만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 나의 처지를 비관하고 숨기고 싶었는데, 이때 처음으로 나의 이미지를 포장하고 새롭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가끔씩 비싼 옷을 입어주고, 먼저 나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여기서 애매하게 좋은 옷보다는 확실하게 구하기 어려운 옷이 효과가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샀다고 드러내기보다는 차라리 상대방에게 좋은 옷을 입었다고 인정해 주는 편이 마음도 편하고 효과도 좋았다. 그럴 때면 상대방은 나의 옷을 언급하며 자연스럽게 나에 대한 홍보 효과가 생겼다. 내가 가졌던 IMF와 신축아파트의 트라우마를 조금은 벗어나게 해 준 조력자 친형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아마 형도 내덕분에 이득을 봤으리라)



나를 포장하는데 익숙해진 이유 중에 하나는 그 당시 송파에 분야별로 ‘골목대장’ 같은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뭐 하나 잘난 게 있으면 아주 남을 차별하고 무시하는 표현을 했는데, 재밌게도 그것을 추종하는 친구들도 꽤 있었다. A라는 친구가 고급차에서 내렸다는 소문이 돌았고, 그래서 그 친구가 폴로 옷이 많은 B보다 더 부자일 거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C라는 친구가 다른 학교 사람이랑 싸운 적이 있는데, 덩치를 보나 분위기를 봐서 C 가 싸움은 전교 3짱 안에 들 거라는 소문도 돌았다. 이렇게 보면 서로 싸워보지도 않고 일짱(제일 잘 싸우는 사람)이 된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싸움에서 서로 인정하는 간접 대결 때문인지... 나도 주먹 박치기 같은 걸 하기도 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염소가 머리 박치기를 겨루는 것과 다를 바가 없던 것 같다. 이성에게의 인기도 소문이 무성했다. D라는 여자아이가 사실 제일 예쁘고(?) 인기가 많다고 하는데, 도대체 언제 조사를 했는지, 왜 나는 동의하지 못하는데 그 친구가 제일 예쁘다고 한 건지 몰랐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화장을 떡칠한 그 친구에게 왜 여자 아이들은 환호했고, 그 아이는 연예인처럼 친구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걸었는지 모르겠다. 모든 것이 소문으로 서열을 정리할 때, 그나마 학교 성적은 잘하고 못하는 것이 명확해 보였다. 하지만 이런 명확한 결과에 대해서 친구들은 종종 시기와 질투를 보였고, 그나마도 인기 있는 친구가 성적이 잘 나왔을 때 그 속닥거림이 더 강력히 퍼졌다. 그들이 외모를 비하하는 친구가 공부를 적당히 잘하면, 그건 아주 가끔… 일종의 비하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생겼으니 공부라도 열심히 해야지. 네가 할 수 있는 게 공부라도 있어야지’ 이런 식으로 말이다. 어떻게 생겼으면 또 공부를 안 해도 되는 걸까? 아니면 이 친구의 공부 실력이 부러웠던 것일까? 실력보다는 결국… 보여지는 인기, 아니 그들이 만들고 싶은 소문에 의해 모든 게 정해졌던 것 같다. 내가 다른 아이들처럼 그것을 추종하지 않고 이상하게 여긴 이유는 아마도 어려서부터 해외를 많이 갔기 때문인 것 같다. 세상이 너무 큰데, 이 작은 걸로 서로 비교하며 아웅다웅하는 게 너무 작아 보였던 것을 확실히 기억한다. 그리고 불과 몇 달 뒤 내가 강남에 이사 와서는 이런 골목대장을 별로 보지 못한 것도 신기한 일이다.



이때부터 꽤 잘 나간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을 멀리하게 됐지만, 내가 보던 ‘골목대장’이 아니라 순수하고 착한 친구를 만나게 됐다. 영찬이(가명)는 패셔니스타 찬규와 성연이와 함께 내가 어울렸던 친구 중 하나였다. 항상 비보잉을 연습하고, 여드름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아마도 그 친구가 좋아하던 여자 아이를 위한 행동 같았는데, 내 기억엔 연애를 시작하면서 그 목표는 달성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업을 하시던 영찬이의 부모님으로 인해 그 집은 매일 비어있었고, 우리의 아지트가 됐다. 우린 옛 노래를 듣는다고 서태지와 아이들 음악을 들었고, 지오디 노래와 신화 노래는 영어 단어보다 열심히 외워서 불렀다. 전자 기타가 집에 있었는데, 제대로 연주하는 건 별로 본 적이 없었다. 이 모든 게 이성의 호감을 얻기 위한 활동 중 하나라는 것을 부인하긴 어렵다. 밤새 서로 호감 있는 이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으니, 우린 우리의 욕망에 충실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봤던 폭력적이고, 남을 홀대하는 연약한 방식이 아닌, 굉장히 솔직하고 스스로에게 충실한 시간이었다고 기억한다. 그 밖에도 너무나 착해서 우리를 연결시켜 주던 동섭(가명)이, 스스로 개그맨이길 자처했던 준기(가명)는 내가 중학교에서 새로운 소속감을 느끼게 해 줬다.



이제 내 인생은 이렇게 세팅되는 것 같았다. 이 친구들과 계속 잘 지내고,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대비 높게 올라온 내 성적을 더 발전시키며 사는 것. 운 좋게 내가 숨기고 싶은 우리 집 사정을 잘 숨기기만 한다면, 연애도 한두 번 하며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게 안정이 찾아왔을 즈음. 부모님은 우리 집이 이사 간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가세가 기울었으니, 나는 이제 떠날 때도 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친구들이 준 안정 때문인지, 그 변화를 충분히 받아들일 만큼 강해졌다고 생각도 했다. 엄마는 내가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말해주었다. 내 어릴 적 사진의 주요 배경지. 그 허름한 곳으로 결국 돌아가는 것이다. 사진만 허름한 것이 아니었다. 그곳은 5층짜리 아파트라 엘리베이터도 없고, 굉장히 낡은 아파트였으니 내 예상이 맞은 것이었다. 지금도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엄마의 직장이 송파집에서 가까워서… 강남이 아닌 송파에 살았다고만 알고 있다.



종종 사람들은 우리 집이 대단한걸 미리 알아서 강남에 사는 줄 안다. 너무 큰 오해다. 물론 운이 좋으셨던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부모님은 신혼집을 잠실 2단지에 처음 마련 하셨다고 한다. 엄마의 말로는 거기가 제일 싸서 거기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형이 태어나고, 지금의 강남집에서는 내가 태어났다. 이게 운이 좋았다는 건 30년이 지나서야 밝혀졌으니, 사람의 시각은 짧디 짧은 것 같다. 이걸 알고 했을까? 그럴 리가 없다. 엄마는 예전엔 A 아파트를 사둘걸… 하며 속상해하시고, 그걸 알면서도 최근엔 “돈이 있었는데 작년에 저길 사놨으면..” 하면서 후회를 하신다. 이게 고수의 모습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다.

우리가 강남 학군지로 이사 간 것을 때에 맞는 절묘한 작전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계획이었다면 더 일찍 돌아왔을 것이다. 부모님은 학군 지나 학원에 대한 지식이 없으셨고, 우리를 어떤 코스로 키워서 만들고자 하는 계획도 없었다. 그냥 운 좋게 집을 구한 것처럼 예상치 못한 때를 맞이해 우린 강남으로 이사했다.(그리고 요즘도 종종 더 일찍 이사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시는 걸 보면, 계획과 전략은 전혀 없었던 것 같다)



이사 가는 곳이 어느 곳인지, 내가 어느 학교를 가는지 나는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하지만 주변 친구들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알고 보니 너 부자였구나?” 하는 말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대화에 참여하고 싶던 한 친구는 휘문, 경기, 단대부고와 같이 고등학교 이름을 부르며 그곳이 명문학교이고, 공부도 잘한다고 알려줬다. 나는 이때 남고라는 게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친구들은 어떻게 살아보지도 않은 곳의 정보를 이렇게 잘 아는지… 이는 내가 처음으로 옷 브랜드에 대해서 배웠을 때와 느낌이 같았다. 브랜드의 서열을 구분하 듯이 송파 친구들은 경기고의 역사와 경기고-서울대 코스의 위대함에 대해 설명해 줬다. 그 밖에도 다양한 학교의 이름을 듣다 보니, 내가 전학을 가기 전에 충분한 지식을 얻게 된 느낌으로 뿌듯했다. 속으로는 친구들에게 이 고등학교 이름이 상관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긴 했다. 이때 나에게 질세라 어떤 친구가 “나도 고등학교는 휘문고, 경기고 같은 곳으로 갈 거라고 엄마가 말해줬어.”라고 운을 뗐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그냥 다시 만나는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다수는 아니지만… 일부 친구들은 고등학교 진학 시기 ‘위장전입’을 통해 이곳으로 넘어온 것을 보면 그친구의 말이 빈말은 아니였던 것 같다.



그런 뒤 내 두벌 밖에 없던 Polo 옷을 만지며 “오, 역시”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가끔은 짝퉁 옷이든 브랜드가 없는 옷을 입어도 친구들이 “이건 강남에서 입는 건가 봐.” 하면서 나한테 하나라도 더 물어보려고 했다. ‘거기가 어떤 곳이길래… 눈치 빠른 친구들이 이러는 걸까?’, ‘친구들 말로는 좋은 동네라는데, 나는 나를 잘 포장하고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친구들의 반응이 격해지자 나는 엄마한테 물어봤다.


“엄마, 우리 강남으로 이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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