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으로 중학교 전학은 어떨까?(1)

by 정돈서재

어느 뜨거운 여름 우리 가족은 강남에 입성했다.


요즘은 강남 8 학군의 어디든 사는 것이 ‘부모들’에게는 값진 ‘훈장’ 일 수 있다. 흔히들 지하철 하차감이라고 표현하지 않는가? 내가 내리는 역에 대한 그 자부심… 또한, 친구들과 헤어질 때, ‘나는 도곡역 쪽에 살아.’라고 한다든지, 운전을 해주는 친구에게 ‘나는 압구정 로데오 역에 내려줘’라고 말하는 것에서 나 같은 쫄보들은 속으로 ‘우와… 내 친구 성공했구나.’라고 외치곤 한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의 경우 이런 얘길 들으면 머릿속으로 각종 시나리오를 그려낸다. 그곳엔 작은 주택은 없고 역에서 가깝다면… 그분은 A아파트에 사시나? 하며 추측해 보는 것이다.


그 당시 그런 위엄은 몰랐을뿐더러, 내가 중학생일 때는 이곳은 너무 낡은 5층짜리 아파트들로 가득 찬 ‘올드 타운’이었다. 지금이야 이근처가 연이은 재건축으로 새로운 도시처럼 변했지만, 그 당시 내 눈에 우리 동네는 송파에 비해 모든 것이 오래됐고, 그만큼 놀거리가 없었다. PC방이니, 영화관이니 재밌는 놀거리를 나중에 겨우 찾긴 했지만, 그렇다고 길거리에 유흥 주점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동네는 아니었다. (심지어 같은 반 친구네 집에 놀러 갔을 때, 집에 TV가 없는 친구를 보고 충격받은 적도 있다.) 이런 상상 이상의 건전함과 함께 아파트 단지는 자연이 집어삼킨 상태였다. 우리 집 베란다 앞은 거대한 목련 나무가 가로막고 있었고, 뒤편은 이름 모를 울창한 나무가 모여 숲을 이뤘다. 이러다간 그 나무들이 더 자라서 5층짜리 아파트를 덮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상상도 했었다.



견디기 힘든 청정 지대에 홀로 떨어져 살 궁리를 해야 했다. 도대체 이곳이 뭐라고 친구들은 찬양을 하며 날 부러워했을까? 아니 그보다도 ‘남자 중학교’ 라는건 왜 존재할까? 여자 아이들과 친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격리될 필요는 없다는 솔직한 본능을 드러내기도 했다. 공부는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아니 그건 전학을 와서 힘든 게 아니고 항상 힘든 점이었지… 아니 혹시 모르지 여기 와서 더 잘할지도 모르지 않나? 내 마음은 나와 대화하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다가올 2학기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었다. 이런 생각의 끝에는 ‘나는 과연 어느 정도 위치일까?’, 아이들은 나를 어떻게 대할까?’하는 생각이 가득 차있었다. 앞에선 송파 친구들이 굉장히 비교를 많이 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 본질적으로는 내게 샘이 많았다. 눈치도 열심히 살피는데, 내가 내세울 것들이 친구들에 비해 별로 없다고 생각하니… 나는 숨은 관찰자로 중학생 시기를 맞이했다. 숨은 관찰자로서 상대방을 생각하기 전에 내 숨길 것을 먼저 찾기 시작했다. 1순위로 중요했던 건 IMF로 쇄락했다고 여긴 우리 집을 숨기는 것. 거기엔 알코올 중독에 빠지신 아빠를 최대한 노출시키지 않는 것도 있었다. 다행히도 겉모습은 내 전재산을 모아 산 폴로 옷과 모자로 방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남은 중2 여름 방학… 엄마는 전학을 오느라 진도가 맞지 않게 된 수학을 위해 과외를 시켜줬다. 좋은 선생님을 만났고, 진도를 빠르게 따라잡았으나 방학 이후엔 선생님과 이별했다. 과외 중단에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내 마음속엔 과외비도 아껴야 한다는 마음이 가득해서 엄마에게 ‘과외’는 앞으로 받지 않겠노라 집에 선포했기 때문이다. 그런 나의 선포 뒤에 엄마가 안도의 표정을 내심 비추신 걸 보면, 아주 잘못한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 엄마는 모든 면에서 돈 쓰는 게 아깝다고 여기시긴 했다. 심지어.. 내 대학 수시 원서 비용도 아깝다고 했으니… 최근엔 건강검진 후 아무 이상이 없으면 검진비가 아깝다고 하시는 위험하고 대단한 절약 정신을 갖고 계신데, 종종 다툼의 원이기 되긴 한다.



나는 그렇게 과외까지 받고 새로운 중학교로 등교할 준비가 됐다고 여겼다. 등교 첫날은 엄마와 함께 담임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시대가 시대였던지라… 학교 선생님인 엄마도 혹여나 담임 선생님이 ‘촌지’를 요구하면 어쩌나… 걱정하며 학교로 향했다. 다행히 우리의 면담 첫마디에서 그런 건 일절 받지 않는다며 운을 떼셨고 선생님과 학교 자체에 어느 정도 신뢰가 싹텄다.



내가 반을 배정받던 날 나와 함께 온 태현이란 친구도 있었다. 그 날만 해도 반에 두 명이 전학을 온 것이었다. 개학 첫날 모든 반에 전학생이 있던 건 아니겠지만, 중학교에 외부에서 유입되는 인구는 상당히 많았다. 전학생이 많다는 건, 이 지역 친구들은 이미 인식하고 있었고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그 점이 나 같은 전학생들로 하여금 적응을 쉽게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중학생 시기에 강남으로 오는 것이 그다지 어색한 일은 아니다. 이곳에서 태어난 게 아니면… 빨라봐야 초등학교 중반에 전학 오는 것 아닌가? 대단한 텃세를 부릴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학기 초 내게 “야, 송파 촌놈”이라고 부르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래봐야 그 친구도 초등학교 6학년 때 우리 동네로 이사 와서 적응하던 중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친구가 전학오기 전 동네를 말하며 “그럼 넌 OO 촌놈이냐?”라고 받아쳤다. 속으로는 나는 여기서 태어났거든? 이란 말도 나왔지만, 그러면 우리 집에 대해 많은 것을 공개해야 할 까봐 초반엔 잘 말하지 않았다.



중학생 시기 전학생이 많았다는 것은 고등학교에서도 느꼈다. 대치동에서 온 친구와 친해졌고, 그 친구가 전교 1등을 해본 경험이 있다는 소리를 해서 깜짝 놀랐다. 나로서는 바라볼 수도 없는 친구라고 생각하던 어느 날, 그 친구는 내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을 전했다. 자신은 원래 대치동 사람이 아니고, 경기도 안양에서 왔다고 한다. 의사인 아버지는 안양으로 출퇴근을 하고 계시고, 자신은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하고 이곳에 왔지만… 이곳 친구들이 공부를 너무 잘한다고 말해줬다.



요즘 부모님들은 강남 외부에서 온 자신의 아이가 차별받을까 봐 걱정하는 것 같다. 나도 많이 걱정된다. 반면에 나 같은 쫄보 친구를 만나면, 한 학기만 지나도 상대방이 언제 전학 왔 건 원래 강남 사람으로 인식 할테니 걱정을 조금은 덜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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