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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이 뜨기 전에 Feb 02. 2022

얼굴이 사라진 남자 6

6. 남자는 거울 앞에 섰다.

남자는 거울 앞에 섰다. 한동안 바라보지 않았던 거울 앞에 서서 눈을 감았다. 눈을 천천히 떠보며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남자가 막 회사에 입사했을 때의 젊었던 모습이 보였다. 너무나 뚜렷하게 보였다. 회사에 첫 입사해서 할아버지께서 처음 사 주셨던 그 양복도 보였다. 그 양복은 입사한 지 한 달 정도밖에 입지 못했다. 첫 회식 때, 넘어져서 양복이 찢어졌기 때문에 남자는 그 양복을 입은 자신이 입사 당시의 모습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볼 수 있었다. 남자의 거울 속 얼굴 모습이 환하게 비치어지더니 빛으로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앞이 다시 깜깜 해지는 것 같았고, 몸의 중심을 잃어버렸다. 남자는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남자가 눈을 다시 떠보니, 회사 휴게실이었다. 남자는 슬로모션처럼 화장실에서 앞이 깜깜해져서 쓰러진 것 같았고,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함께 나를 깨우는 후배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 그리고 어딘가로 왔는데, 

정신 드세요? 119 불렀어요. 곧 병원으로 이송할 거예요... 아니, 나 괜찮아, 잠시 그런 건데, 나 일어날 수 있어... 아~구, 괜히 고집부리지 마시고요. 넘어지면서 머리도 부딪쳤어요. 암튼 빨리 병원에 갑시다. 후배의 말에 머리를 만지니, 부딪쳐서 부은 부분이 만져졌다. 

많이 다친 것 같아? 피가 났어?... 많이 다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일단 병원으로 가 봐요.

  

후배는 따뜻하게 남자를 바라보았다. 구급차 안에서도 후배는 동행해주었다. 남자가 많이 혼내는 후배였는데, 남자는 자신에게 베푸는 후배의 정성에 고마웠다. 고마워... 뭘요. 제가 선배를 처음 발견했으니, 이렇게 책임을 지는 겁니다! 아, 근데, 왜 거울에 대고 뭐라고, 그렇게 뭐라고 하셨어요?... 내가? 내가 뭐라고 했다고?... 네, 뭐라고 한참 하셨어요. 마치 누구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 같았어요. 머리는 아파하시면서, 거울에 대고,, 뭐, 뭐라더라, 이제 너를 좀 알아가라고? 이런 말을 하시던데요? 처음에는 저에게 하시는 말인 줄 알고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거울을 보고 하시더라고요... 내가?


나에 대해 알아가라고?

 

남자는 자신이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남자는 또다시 잠이 몰려왔다. 병원으로 들어서는 침대에서 남자는 정처 없이 눈이 감겼다. 후배의 말이 남자의 잠결에 겹친다. 일단 푹 쉬세요. 제가 집에 연락드릴게요.   


아내는 입원실 침대에 누운 남자가 깨어나길 기다린다. 아내는 남자가 듣는지 못 듣는지 상관없이 말을 이어간다. 여보, 다행히 머리에 큰 이상은 없대. 그래도 머리를 부딪친 거니까 며칠 입원해 보자 하네. 그리고 할아버지가 오셨었어. 푹 자라고 하고 가셨어. 어떻게 알고 오셨냐고? 아까 말이야. 당신에게 전화하는데 안 받는다고, 나에게 전화하셨어, 근데 그때 내가 병원에 막 오는 길이었거든, 달리 둘러댈 말도 생각나지 않았고, 사실 나 혼자 병원에 오는 것이 너무 무서웠어. 마침 같이 가자고 하셔서 모시고 왔어. 당신 모습 한참 보시다가 의사가 괜찮을 거라고 하는 말 듣고 방금 가셨어. 너무 걱정하지 마. 별일 없을 거야. 당신 그럴 수 있지? 금방 일어나지? 정말, 정말이지? 요즘 왜 그렇게...  

  아내는 혼잣말처럼 남자에게 이런저런 말을 했다. 평소에 말이 없는 줄 알았는데, 조용한 병실 안에서 아내는 그간 못했던 말을 다 하려는 듯 몰아치듯 말했다. 잠이 점차 깬 남자는 아내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이대로 있다가는 아내의 울음보가 터질 것 같아서,

아, 좀 조용히~조용히 좀 해... 어! 어! 깨어났어? 정신 들어?... 무슨 이렇게 말이 많아~환자 앞에 두고... 아, 미안, 미안 내가 너무 시끄러웠지?

남자는 괜히 투정을 부려본다. 그래도 많이 놀랐을 아내를 보며, 여보, 많이 놀랐지? 미안해... 어! 아주 많이! 많이! 놀랐어!

남자는 아내를 안아본다. 아내는 얼굴이 붉어지며, 눈시울을 적신다. 아내는 이내 곧 아무렇지 않은 듯,

아니, 근데 화장실에서는 왜 쓰러진 거야?... 어 그게, 거울 보다가 그냥 앞이 캄캄해지더라고. 그냥 그대로 쓰러졌나 봐, 머리도 세면대에 부딪쳤다는데, 부딪친 것도 나중에 알았어... 거울을 봤다고?... 응

 

거울을 봤다는 남자의 말에 아내는 놀랐다. 자신을 보지 못하는 이후로 남자가 거울을 보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거울 보니깐 어때? 또 그때 그 모습이 나왔던 거야?... 응... 그때가 언제인데? 뭐, 여보에게 큰일이 있었던 때야?... 아니, 큰일이라기보다, 나에게 오히려 좋았던 때지! 막 회사에 입사했던 때니까 나에게 얼마나 행복한 때야. 그렇지 않아?... 그러게. 근데 대개 뭐 그런 건 안 좋았던 때가 생각나는 건 아닌가? 영화 같은 거 보면 말이야. 내가 영화를 만들어도 좋은 모습을 왜 넣겠냐고. 뭐가 의미가, 뭐 있을 거 아니겠어? 뭐인 것 같아?... 음, 의미라, 나 대학교 때, 동생은 유학 가면서 부모님도 L. A로 가고, 나는 할아버지랑 지내면서 회사에 입사한 건데, 뭐~ 별것 없는데, 그리고 당신 만나 결혼하고, 내 인생에 뭐 그렇게 특별하고 큰 게 없어. 평범해. 의미? 글쎄 무슨 의미일까?... 병원에서 쉬는 동안 좀 생각해봐. 그냥 넘기지 말고, 알겠지?... 어. 그래... 알겠지? 꼭이야, 저번에 의사 선생님이 하라는 것도 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된 거 아니야! 정말 이렇게 말 안들을 거야?... 어, 아 진정해. 알겠어!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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