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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이 뜨기 전에 Feb 02. 2022

얼굴이 사라진 남자 7

7. 남자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는 말


 남자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는 그 말. 나를 알아가라고?


내가 나를 모르나? 자신을 모르는 사람도 있나?

 

남자는 병실 창문 너머 보이는 운동장에서 한창 연을 날리는 아이들을 내려다본다. 동네 뒷산에 갔던 날처럼 몹시도 바람이 불어 댄다. 겨울을 앞당기는 듯 회오리바람에 낙엽이 우수수 날아다닌다. 그런 날씨에도 아이들은 연을 날린다. 힘찬 바람에 연은 하늘 높이 치솟는다. 아이들은 신나는 소리를 지르며 연줄을 더 길게 길게 풀어낸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연이 곤두 박칠 친다. 힘을 잃은 연을 살리려, 연줄을 잡아당겨 깨워보지만 이미 힘을 잃어버린 연은 자꾸자꾸 아래로 내려온다. 다시 오를 듯 말 듯 연은 출렁인다. 남자는 출렁이는 연을 보며, 오를 듯 오르지 않은 길 잃은 연의 모습이 꼭 자신의 모습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남자는 아내에게 작은 손거울을 가져와달라고 했다. 아내는 작은 거울이 되겠냐며 벽에 걸린 큰 거울을 가져왔다. 남자는 이게 뭐냐고 투덜댔지만, 거울을 받아 든다. 그리고 아내를 쳐다본다. 같이 있어줘... 알겠어.


남자는 한 숨을 내쉬고, 또다시 눈을 질끈 감는다. 그리고는 천천히, 천천히 눈을 뜬다. 이제는 그리 놀랄 일도 아닌 것 같은데도, 남자는 매번 놀란다. 그리고 항상 보이던 그 모습을 바라본다. 남자는 거울 속 남자의 얼굴을 살핀다. 주름살 없는 생기 있는 피부에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자신이 이렇게 총명한 젊은이였나 싶을 만큼 멋진 젊은 남자의 모습을 바라본다. 어때? 보여?... 응. 근데 당신은 어떻게 보여?... 난 그냥 지금 당신 모습 보이지. 잔뜩 찌푸리고 있는 지금 자기 모습 말이야... 당신은?... 난 내 젊은 모습 보이지. 야. 잘생겼네. 잘생겼어!


남자는 너스레를 떨었지만,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경직되어 보이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때 나는 어떤 마음이었지? 좋았던 거 아닌가? 아주 행복했던 거 아닌가? 

  

가장 행복했을 것 같던 시기의 자신이 모습이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은 이유에 대해 남자는 의아해졌다.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지? 어릴 적부터 남자는 할아버지가 돌봐주셨는데, 어쩔 수 없는 맞벌이에 어머니는 양육을 버거워했다.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아들을 맡기면서도, 어머니와 할아버지는 그리 살가운 사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남자에게서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이 보이면 그것이 할아버지를 닮아서 그런 거라는 말씀을 하셨다. 남자는 그 말이 혼란스러웠다.


어머니는 당신의 아버지와 왜 그리 서먹하셨지? 


그래도 남자에게 따뜻했던 할아버지의 손길 덕분에, 남자는 큰 흔들림 없이 공부를 열심히 했고, 해야 할 일을 성실히 하는 바른 아이로 성장했다. 제대 후에는 이제는 남자가 할아버지를 돌봐야 했다. 큰 병은 없으셨지만, 기력이 약해진 할아버지를 위해 남자는 할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보냈고, 틈틈이 아르바이트하며, 대학을 졸업하였다. 그리고 취직을 준비했고, 결국 바라던 회사에 취직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갑자기 남자에게 무슨 일이지?

  

생각에 잠긴 남자에게 아내는 잠깐 나갔다 온다고 한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마칠 시간을 깜박했다며, 다급히 나간다. 남자는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건다. 


할아버지. 저예요.

응. 우리 손자 괜찮아졌어? 머리는 괜찮고?

네, 네. 그냥 좀 쉬면 될 것 같아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엄마랑 왜 사이가 안 좋았어요? 

왜? 갑자기 엄마 이야기야?

  

남자는 한 번도 할아버지에게 엄마에 대해 물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침마다 먼저 출근하는 엄마가 남자를 할아버지에게 데려다주었던 어린 시절에도, 이민을 떠나는 그 자리에서도 할아버지의 엄마에 대한 생각을 묻지 않았던 것 같다. 묻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겠다.


그냥...알고 싶어요 


엄마는 나를 아마 미워할 거야. 나는 엄마를 사랑할 여유가 없었어. 그냥 바쁘게 살아갈 뿐이었고, 또 그게 맞는 줄 알았지. 하루하루 쳇바퀴 돌 듯, 살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렀잖아. 뭐 다들 그러고 사는 거지. 지금도 너도 그렇잖아. 일하기 바쁘지, 하긴 열심히 일만 했는데, 근데 또 사회에서 인정받는 것도 잠깐이야! 이렇게 은퇴하고 나면 다 소용없어.


남자는 엄마가 외롭게 지냈을 거라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사회적 성공을 이룬 할아버지와 사랑이 그리웠던 엄마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고, 또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 엄마는 또 그렇게 남자를 돌보지 못했다. 엄마에게는 사랑으로 돌보는 경험이 없었던 것이었다. 엄마 자신은 잘해왔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자신을 돌보며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그렇게 시간이 흘러간 것이다. 그것은 시간이 흐른다고 아는 것이 아니었다. 구순이 된 할아버지도, 예순이 된 엄마도, 마흔이 된 남자도 모두 자신을 이해하는 법을 모르고 다 그렇게 사는 거라고 둘러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남자는 할아버지와 전화를 끊으며, 입사 당시 왜 그리 기운이 없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건 어머니가 그리 기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가 줄곧 보살핀 남자가 바라던 회사에 입사했던 날, 어린 동생이 그 날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한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었다. 엄마는 10살 터울의 동생을 낳고 일을 그만두었다. 할아버지 손에 자란 남자와는 다르게 동생은 엄마의 손에서 자랐다. 그런 동생을 엄마는 자기 자신처럼 아꼈다. 남자는 처음으로 엄마를 이해하려 해 보았다. 그저 엄마 자신도 사랑을 느끼지 못했고, 자신이 원하는 사랑에 대한 갈망과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스러운 감정을 자신에게 투영했던 것뿐이라고.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들어온다. 아빠! 아이가 한 아름에 남자의 품에 안긴다. 아빠 많이 아파? 어디가 아파? 얼른 나아서 나랑 놀자, 나 아빠랑 놀고 싶어... 그래, 아빠가 얼른 낫고 놀아줄게. 아빠는 괜찮아.

  

남자는 아이를 꼭 안는다. 아이의 따뜻함과 포근함이 느껴진다. 아이를 다독이니, 아이는 활짝 웃으며 남자를 바라본다. 


이 맘 때, 내 모습은 어떠했을까? 

  

남자는 다시금 아이를 꼭 안아본다. 그리고는 지금의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 자신의 어릴 적 자신을 상상하며 말을 건넨다. 오늘 잘 놀았지?... 응... 뭐하고 놀았어?... 블록놀이!... 누가 괴롭히지는 않았지?... 응... 밥은 맛있게 먹었어? 뭐 먹었는데?... 아빠, 근데 왜 그래?, 왜 이렇게 많이 질문해? 

동글게 뜬 눈의 아이를 보며, 남자는 아이가 참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남자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렇게 사랑받았어야 할 자신이었는데,  따뜻한 그런 사랑을 주지 않았던 엄마가 너무 원망스러워졌다. 아이에게 들었던 이 감정을 남자는 엄마에게서 느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남자는 갑자기 설움이 북받쳐 오른다. 아이 앞에서 난데없이 울 수가 없어서 남자는 헛기침을 한다. 눈치 빠른 아내는 남편의 변화를 감지하고, 아이에게 과자를 사러 가자고 한다. 아이는 아내를 따라나선다. 과자 사 가지고 올게,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전화해! 

  

남자는 사랑받지 못하고 있었던 자신을 잘 알지 못했다. 아마도 알아차리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차마 바라볼 수 없었던,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힘들 것 같아서, 남자는 차마 정말 차마 현실을 알아내려고도 현실을 알 수도 없었던 것이었다. 마음을 보기 힘들어서, 마음을 보지 않다 보니, 그냥 하루하루 해야 할 일들을 바라보기만 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에게서 전화가 온다. 미국은 지금은 한밤 중인데, 어찌 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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