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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이 뜨기 전에 Feb 02. 2022

얼굴이 사라진 남자 8

8.남자는 가슴이 요동쳤다.

남자는 가슴이 요동첬다. 울컥하는 마음에 어떤 말이 잘못 나오지나 않을까 조심스러워졌다. 남자는 망설이다가 전화벨이 오래 울린 뒤에야 전화를 간신히 받았다.    


입원했다고? 

아, 네... 아무 일도 아니에요. 그냥 좀 무리했나 봐요.

조심해야지. 언제 퇴원하냐?

아직 몰라요. 그냥 좀 쉬고 싶어서...


전화는 한동안 침묵이 흐르더니, 


그래. 그럼 잘 자거라.

네.

아들. 아프지 마라.

네.

  

남자는 마음속에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있는 것 같았는데, 목구멍만 간질간질하고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마음만 묵직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까 들었던 원망의 마음도 어느 새 마음에서 자리를 비운 것 같았다. 그저 이제 모두에게 시간이 너무 흘러버린 것 같았다. 누구를 탓할 수 있는 시간조차 너무 많이 흘러가 버렸다. 누구를 미워하기도 너무 늦어버렸다. 지금 예순이 된 엄마에게 그때 왜 그랬냐고 따질 수도 없지 않은가. 지금 구순이 된 할아버지에게 그때 왜 그러셨냐고... 그때 왜 나는 그리 바보처럼 사랑을 구애할 줄도 몰랐냐고 자신을 몰아세울 수도 없지 않은가... 기억조차 희미해진 기억에 스스로를 묻히게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그래도 순간순간 나를 사랑하셨겠지. 나보다 자신의 어려움이 먼저 너무 버거워서 그랬던 것이겠지...


남자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꽃다발을 하나 사달라고 했다. 아내는 왜 그런지 묻지도 않고 흔쾌히 대답한다. 응, 겨울이라 꽃 종류가 많지 않은데, 무슨 꽃이 좋아?... 응, 나 장미꽃!... 그래 알았어. 어느새, 아내는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온다. 자 여기!... 고마워, 꽃다발 받고 싶었어?... 아니, 주고 싶었어... 누구? 혹시~ 나?... 앗! 미안, 미안. 당신에게도 다음에 줄게, 우선 줄 사람이 있어... 그게 누군데?... 입사했던 나에게 말이야. 입사 축하한다고 축하 꽃다발 주고 싶어. 나를 축하해주었던 사람은 그때, 할아버지 말고 없었거든. 아마도 많이 허전했을 거야.

  

살짝 서운해하려던 아내가 남자의 말을 듣고 조용해진다.  남자는 거울 위로 꽃다발을 놓아두고, 거울을 바라본다. 이번에는 눈을 감았다 뜨지도 않는다. 남자는 거울을 그대로 바라보며, 그리고 억지로라도 웃어본다. 웃는 듯, 우는 듯 알 수 없는 표정이었지만, 남자의 얼굴은 이내 밝아졌다. 남자는 거울을 보며, 진짜 축하한다. 정말 수고 많았어. 정말 자랑스러워! 혼자서 많이 외로웠지. 정말 외로웠어, 그래, 알아! 내 맘 이제야 알겠어. 입사를 통해 그동안 돌아보지 못했던 나를 볼 수 있었는데, 또 일만 한다고 내가 나를 잘 몰랐어. 상처받은 거 있으면 이제 다 녹아내자. 이제 더 이상 외롭게 두지 않을 거야.      

 

남자는 거울에 보며 다짐한다. 그때는 하지 못했던 자신을 바라보는 일을 해야겠다고, 그리고 삶의 어느 순간의 그때, 채우지 못했던 그리고 필요했던 사랑과 관심과 용기를 주겠노라고, 남자는 퇴원하며 입원실에 걸려있던 그 묵직한 거울을 가져가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아내는 할 수 없이 주변 상점을 뒤져서 비슷한 거울을 사 와 입원실 벽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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