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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이 뜨기 전에 Mar 21. 2022

당신의 기억을 살 수 있나요?

1. 첫사랑이라...

H대 앞 사거리에 좌회전 신호를 기다린다. 문득 창밖의 풍경을 눈에 담는다. 저녁노을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어 보인다. 하루 종일 밖을 서성이던 사람들이 바삐 자신들의 안식처로 숨어드는 풍경은 변함없는데, 하지만, 이곳의 풍경은 많이 바뀌었다. 더할 나위 없이 높게 뻗은 건물들 사이로 자율 주행 차량들이 자신들의 노선을 따라가고 있다. 학생 시절을 지나, 이제 강의를 하러 이곳에 발걸음을 옮기지만, 이곳을 떠났던 시간만큼 이곳의 변화가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6시면 들리는 이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 덕분에, 그가 보는 것은 그 시절의 그곳 풍경이 된다. 익숙한 시그널이 흘러든 시간이 몇십 년이라고 한다. 비록 지금은 작고한 디스크자키의 AI가 진행하지만, 살아생전의 똑같은 음색이다. 털털한 웃음소리와 뼈 때리는 한 마디도 여전하다. 신청자들의 사연 소개도 여전하다.     


아저씨! 오늘은 제가 졸업한 대학교에 20년 만에 와봤습니다.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교정을 함께 거닐었던 첫사랑 생각도 나고 하네요. 참 신기하게도 첫사랑과 헤어진 이후, 다 잊었다 생각했는데, 오늘 이곳에서 이렇게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네요. 첫사랑 그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이렇게 사연 주셨네요! 아 뭐 첫사랑 좋죠. 누구나 마음속에 간직해보는 간질간질 한 또는 뭐 아픈 그런 기억이 되겠죠? 그렇지만, 지금 아내에게 충실하셔야죠~ 이 분 참!. 아내에게 그러다 혼납니다.! 하하    


첫사랑이라...    


신호가 바뀌고 그는 H대로 들어선다. 이곳에 오면, 떠오르는 기억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벌써 몇십 년 전의 한 순간의 장면인데도, 기억이 날 때는 고통을 각오해야 할 만큼 명확하다. 이런 기억이 나면, 그는 발걸음을 총총거린다. 발을 움직이면, 그 움직임에 집중하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넘어설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마음까지 무거워진다. 그 생각을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그 생각의 시작으로 몸에서의 반응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나오면서, 그는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그는 일과를 간신히 마치고, 그의 친구이자 담당 의사에게로 왔다.      


오늘 그 기억이 나서 좀 힘들었어.


민서야. 그 기억이 네 인생에 그리도 중요한 일이야?      


아니...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는데,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내 머릿속 그 생각을 자극하는 뉴런을 찾아 확 없애버리고 싶어.  


설령 그 뉴런을 건드려서 그 생각을 없어지게 하더라도 그 뉴런이 하던 다른 수많은 일조차 다 없애 버릴 수 있을 거야. 넌 어떤 위험도 전혀 감지 못하는 사람이 될 수 도 있어!    


그렇겠지?     

왜 그 기억이 나를 자꾸 괴롭힐까... 아니 나는 왜 그 기억으로 스스로를 힘들 게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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