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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이 뜨기 전에 Mar 21. 2022

당신의 기억을 살 수 있나요?

2. 누가 잠시 

<이수진을 찾습니다>    

 

과사무실 게시판에 붙여진 전단지에서 그는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전단지 속 얼굴 사진에 잠깐잠깐 스치던 그녀의 얼굴이 겹쳐졌다. 겨울 방학 때에도 지하 벙커 같은 도예실에서 꽁 꽁 얼은 손으로 흙을 주무르던 그녀 모습도 스쳤다. 그녀가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닌 것도 그제야 알았다. 그녀는 친구 따라 실기실에 온 다른 학교 학생이었다는 것도 그제야 알았다. 그녀를 애타게 찾는다는 가족의 전화번호가 눈에 들어왔지만, 마지막 본 그녀의 모습은 벌써 두 달 전이다. 핸드폰을 잡고 망설이는 그를 친구가 부른다.    

 

민서야! 수업 시작하겠어. 안 들어오고 뭐해? 

어.. 으 응 갈게. 지금 가...  


그가 입대 후 첫 휴가를 나오고 오랜만에 학교에 왔을 때에도 그는 그녀를 잠깐 보았다. 그녀는 그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 잠시 눈이 마주쳤을까? 그녀가 그를 보고 잠깐 웃었는지도 모른다. 그녀에 대한 기억도 설렘도 가물가물해질 무렵. 


제대를 앞두고 마지막 휴가를 받은 여름날 밤. 선배들이 휴가 나온 그를 불러내었다. 학교 근처 하숙을 했던 그는 자전거를 타고 정문 앞 언덕을 올라가고 있었는데, 누군가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언뜻 가로등 불빛에 신발도 신지 않고 맨발로 내려오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잠깐 옆을 스치는 모습에 그녀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지만, 확실하지는 않았다. 또다시 어두움이 그녀를 감쌌기 때문이다. 그는 언덕에 올라 자전거를 세워놓고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고개도 숙인 채 터벅터벅 걷는 모습이 술에 취한 듯 흔들렸지만, 느릿하지는 않았다. 


그가 멈춰 선 자전거를 다시 타려 페달을 밟으려는 순간, 바닥에 떨어진 방울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진한 핏방울이었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 똑 똑 방울 흔적이 남아있었다. 불길한 생각이 들어 그녀를 찾으려 내려갔지만, 들뜬 거리 속으로 그녀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그는 이리저리 사람들 속을 뒤적였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선배의 전화를 받는 것이었다.   

    

야.. 류민서, 류민서! 지금 뭐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는 거야? 지금 우리 조 발표할 차례잖아. 빨리 나가야지.    


옆의 친구가 다급히 그를 툭툭 친다.     


아! 오늘 발표!    


조별 발표를 맡은 그는 허겁지겁 앞으로 나가다가, 그만 책상 밑에 있던 가방 끈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괜찮아? 괜 차 나아...?    


친구들의 말소리가 들리는 듯하지만, 점점 멀어진다. 그리고 그의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런데 어둠 속 누가 잠시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녀인가?    


이수진? 이수진!    


지금껏 한 번도 불러 본 적 없었던, 그녀의 이름이 그의 입 속에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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