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사라진 남자 3

3. 그래도 남자는 정신과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도 남자는 정신과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아내는 종합병원에 전화를 해서 예약을 잡는다. 진료 과목을 무엇으로 해야 할지 몰라 상담원과 통화를 한다. 어디가 아프신대요? 아내는 머뭇댄다. 얼굴이, 아, 그게 얼굴이 안 보인다고 하네요... 네?? 다시 말씀해주시겠어요?

안내원의 질문에 난처한 듯 아내는, 아~ 안과! 안과 예약 잡아주세요. 언제가 가장 빠르죠? 아내가 통화를 하는 중에 남자는 혼란스러웠고, 다급해졌다. 하지만, 낼도 회사에 나가지 않을 수는 없다. 낼 중요한 회의가 잡혀있다. 아니 이번 주는 다 어려울 것 같다. 회의 이후에 다시 프로젝트를 점검해야 하기 때문에 안 될 것 같다. 

아내는 다음 주에 예약을 잡았다고 했다. 다음 주까지 기다려야 하다니 남자는 궁금해서 더 미칠 것 같았다. 아내는 풀이 죽어있는 남자를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럼 동네 병원이라도 일단 낼 점심시간에 같이 가 보자고 했다. 남자는 고개만 끄덕이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루 자고 나면 괜찮아 질지도 몰라... 아내의 말에 남자는 고개만 끄덕인다. 방 안 들어간 남자는 줄곧 핸드폰으로 자신의 병명을 찾아본다. 

안면인식 장애? 이런 것도 있네. 뇌의 문제인가? 정말 머리가 아팠던 것이 문제였을까?

여보! 나 뇌 사진 찍어볼까?... 응. 그래 일단 병원을 가봐야, 예약이 되지... 음 그렇겠지?... 너무 조급해하지 마. 조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지도 몰라... 알겠어. 남자는 태연한 척하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아내가 통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저 낼 회의 시간을 혹시 미룰 수 있을까요? 아, 그게, 신랑이 좀 아파서요... 그 안건은요. 아직 더 상의해봐야 해요...... 아. 네. 그럼. 그렇게 할까요?... 아내의 전화가 길어진다. 네네, 감사합니다. 아내는 한참을 통화를 하다가 이제야 전화를 끊는다.  

맞아. 낼 중요한 회의기 있다고 했는데,  

 

낼 괜찮아?... 응. 나 말고 우선 다른 사람이 가기로 했어. 시간을 미룰 수는 없대... 낼 몇 시인데?... 이제야 남자는 아내의 일이 걱정된다. 하지만, 벌써 아내는 일을 미뤘다. 어쩔 수 없는 일이 됐다. 남자는 한 밤 중에도 계속 뒤척였다. 화장실을 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아내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길고 긴 밤이었다.

여보 나, 면도 좀 해줄래?... 응, 그래 어떻게 하는 거야?... 이렇게 비누 거품 칠해서 밀어줘... 이렇게?... 아~ 아얏!... 미안해. 괜찮아? 이거 잘 못하겠어... 아야야, 하아 잘 좀 해봐!... 나도 처음이잖아? 어떻게 이렇게 계속 짜증 낼 거야?... 내가 언제 계속 짜증 냈다고 그래?... 어제부터 계속 그랬잖아! 그러기에 병원에 좀 가보라고 몇 번 말했어? 머리 처음 아팠을 때 가보라 했잖아...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이야?... 머리가 아픈 거랑 분명 연관이 있을 거야. 남자는 면도기를 아내에게서 다시 받아 그냥 짐작으로 밀어대며 투덜댄다. 아니거든! 상관없거든... 상관있을 것 같은데? 아내도 물러서지 않는다.

출근한 남자는 별일 없는 듯 인사를 건네고 업무에 들어갔다. 바쁜 일정과 계속 오는 업무 지시 전화와 정신없는 상황에서 남자는 얼굴에 대한 고민도 잊은 듯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11시. 아내와 11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다. 30분만 있다가 가겠다고 문자를 보낸다. 아내의 답이 없다. 남자는 가까스로 시간을 맞추어 허겁지겁 약속한 병원으로 간다. 아내는 쌩하니 별말 없이 병원으로 들어선다. 

우선 동네에서 가장 큰 내과부터 가보고자 했는데, 사람이 생각보다 너무 많다. 외출 허용 시간 내에 진찰을 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남편은 기다리자고 한다. 다행히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어 간신히 진료를 보게 되었다. 어디가 아프셔서 오셨어요?... 음, 그게 제가 거울에, 거울에 제 얼굴이 보이지 않아요. 아니 비추는 모든 물건에 제 얼굴만 보이지 않아요... 전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나요? 구체적으로 어떤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