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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이 뜨기 전에 Feb 02. 2022

얼굴이 사라진 남자 4

4. 남자는 머뭇거렸다.

남자는 잠깐 머뭇거렸다. 


얼굴이 안보이기는 했었는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냥 흐렸었나? 하얗게 보였었나?

 

구체적인 대답을 하지 못하자, 의사는 증상이 얼마나 되셨는데요? 계속 질문을 하며 청진기로 남자를 진찰하고, 남자의 혈압을 재고, 남자의 눈을 자세히 보고, 작은 손전등으로 빛을 비추면서 남자의 눈동자 움직임도 관찰한다. 시력 검사도 하는데, 남자는 긴장을 하였는지 온 몸이 뻣뻣해졌다.

그런 남자에게 의사는 말한다. 외적인 이상은 없는 것 아닌 것 같아요. 뇌를 찍어 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어요. 오늘 바로 검사는 어려울 것 같은데, 일시적으로 그런 현상이 나타날 수 도 있을 거니, 좀 상황을 지켜볼까요? 그런데,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 전에 뭘 하셨죠?... 아! 등산을 했어요. 산에서 의자에 앉아 잠깐 잠이 들었어요. 

남자는 지난 일이 생각난 듯 말했지만, 그 말에 아내의 눈이 잠시 동그랗게 커진다. 남자는 힐끗 아내를 보다가 다시 말을 이어간다. 

그리고 집에 와서 자고 일어나서 화장실에 갔는데, 그때 그렇게 안보였어요... 이런 일이 있기 전에 두통이 있었잖아요. 아내는 남자의 말에 말을 잇는다. 아. 맞아. 그래요. 며칠 전부터 두통이 있었어요. 좀 머리가 좀 무거운 느낌이었는데, 은근히 아프기도 했고... 한 달이거든요, 머리 아프다고 말한 지 한 달이요... 여자는 남자의 얼굴을 마주하며 강조한다. 

 근데 지금은 오히려 그렇지 않아요... 지금 제가 판단하기에는 심리적인 영향으로 보여요. 그것은 여기보다 정신과가 더 좋을 것 같아요. 원하신다면 정신과를 추천해 드릴까요? 별일 아닌 것이라 생각하는 의사의 말투에 아내는 남자의 눈치를 살핀다. 남자는 괜찮다고 말하고 자리를 일어서려 한다. 뇌 사진을 찍어보시고 싶으시다면, 앞의 데스크에서 예약 잡으시면 됩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남편은 병원을 나서면서, 이런 병원에 사람만 넘쳐난다고 왜 오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기다린 시간에 비해 진료는 너무 빨리 끝나 오히려 시간이 남았다. 아내는 나온 김에 00 내과에 가보자고 한다. 남자는 미심쩍은 듯 미간을 좁힌다. 그런 남편의 얼굴을 지긋히 보며, 아내는 어조가 높아진다. 갈 거야? 안 갈 거야?... 아~니, 갈게! 

자기 때문에 회의도 못 가고 온 아내의 기분도 생각은 해야 했다. 남자는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아내를 따라나선다. 00 내과는 동네에서 오래된 내과이다. 아내는 몸살이 날 때면 그 병원에 종종 간다. 시설이 오래되고 작은 병원이지만, 과잉 진료하지 않고 친절한 의사가 있는 병원이었다. 의사는 진료실에 들어온 아내를 보고 먼저 인사를 한다. 아이들은 잘 크지요? 오늘은 남편분이 오셨네요. 어떻게 오셨지요?... 거울에 제 모습이 보이지 않아요. 아니 비추는 것에 제 얼굴만 안 보여요. 근데 안 보이는 게 그냥 뭐랄까? 안개가 끼어 있는 것 같다고 할까? 뭐 그래요. 

남자는 아까 간 병원에서와는 다르게 덤덤하게 말을 이어간다. 의사는 아까 병원의 의사처럼, 청진기로 남자를 진찰해보고, 남자의 혈압도 재고, 남자의 눈도 관찰한다. 그리고는 거울을 가져왔다. 얼굴만 잘 안 보인다고 하셨죠? 지금 여기서 거울을 바라볼 수 있으실까요? 해보실 수 있으시죠? 

남자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거울을 바라본다. 거울을 바라본 남자에게 의사는 눈을 감으라고 말한다. 네? 남자는 되묻다가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눈을 감는다. 그 정도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남자는 겁이 난 아이처럼 아주 힘껏 눈을 감았다. 얼굴에 잔뜩 주름이 졌다. 


이제 눈을 천천히 떠보세요! 남자는 의사의 말에 아주 천천히 눈을 뜬다. 이렇게 또 눈을 천천히 뜰 수 도 있을까 싶을 정도로 천천히 떠진다. 실눈이 점점 커진다. 남자는 마치 생애 처음 눈을 뜨는 사람처럼 그렇게 천천히 조심스럽게 눈을 뜬다. 아아. 아! 남자는 알 수 없는 감탄사를 자아낸다. 아내는 왜? 왜 그러는데?... 그러다가 남자는 큰 목소리로, 잠깐! 내, 내 얼굴이 보였어. 아~아주 잠깐, 그리고 뿌연 안개가 아니라, 너무 밝은 빛이 비치어져서 안 보이는 것처럼 보이네. 그래도 내 얼굴이 잠시 보였어. 진짜 이거 일시적인 현상 같아. 별거 아니네! 아 이런 거 가지고 괜히 걱정했네! 


흥분된 남자와는 다르게 의사는 재차 묻는다. 그게 진짜 지금의 모습이 맞나요? 오늘 입고 오신 옷은 청 난방에 벨벳 재킷을 걸치셨는데, 보신 모습이 그 모습이 맞았나요? 의사의 질문에 남자는 잠시 머뭇거린다. 생각해보니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잠시 스친 남자의 모습은 남자가 생각하기에도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어제의 모습도 아닌, 아주 젊고 어린 자신의 모습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에 빠진 남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보았어도 보이지 않고, 정말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없다는 것이 혼란스러워졌다. 


왜 그때의 내 모습이 지금 보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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