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주 차
당근으로 자전거를 구매했다. 장을 보러 가거나 걷기엔 좀 먼 거리를 타고 다니려고 샀다. 내가 사는 동네는 시골 쪽이라 매물이 없어서 제주 시내 쪽에서 올라온 자전거를 샀다. 거래를 해주신 분이 나보고 00읍까지 가려면 꽤 걸릴 거라며 엄청 걱정하셨다. 나는 내 앞날도 모르고 카카오맵으로 보니 한 시간 반밖에 안 걸린다며 걱정 말라고 자신감 넘치게 출발했다. 뭐, 더 걸려봤자 2시간이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해안도로까지 진입하려면 시내의 큰 도로를 거쳐야 하는데 그 도로에는 엄청 큰 화물트럭들이 생생 달린다. 물론 옆에 자전거 도로가 따로 있긴 하지만 칸막이가 있는 것도 아니니, 그 화물트럭들 옆을 지나가며 흙먼지를 뒤집어썼다. 심지어 그런 도로 옆의 자전거 도로들은 관리가 잘 되는 편이 아니라서 유채꽃 덤불이 자전거 도로를 잔뜩 침범해 있었다. 그 수풀 속을 헤치고 나아가며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드디어 해안도로 입성!
해안도로에 입성하면 좀 수월할 줄 알았는데 맞바람이 너무 심해서 자전거를 아무리 굴려도 앞으로 나아가지를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날 강풍경보였던 것이다. 전문 사이클들 사이로 달리는 나의 포카리 광고 스타일의 바구니 자전거... 어쩌면 이 자전거를 끌고 가는 내가 진정한 고수가 아닐까 위로하며 달리고 달렸다. 너무 덥고 힘들고 목말라서 중간에 카페에서 잠시 쉬어주고 다시 달리고 달리기. 도로에는 어차피 나밖에 없어서 입 밖으로 너무 힘들다고 징징대면서 달렸다. 누가 대신 끌어줄 사람도 없다. 내가 해내야지, 어떡하겠어. 이렇게 힘든 와중에도 다양한 들꽃들과 탁 트인 바다는 역시나 좋았다.
결론적으로 4시간을 끌고 와서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낭만 30%, 피땀눈물 70%의 자전거 당근 거래. 그냥 자전거 버리고 튀어버릴까 생각하다가도 갑자기 멋있는 풍경을 보면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도 도착해서 보니 나름 뿌듯했다. 물론 이 날 너무 힘들었는지 잠을 13시간 넘게 자버렸다. 살짝 아려오는 엉덩이 통증은 덤.
결과론적으로 보면 정말 무모한 짓이었다. 사이클용 자전거도 아닌 생활용 자전거를 타고 화물트럭과 버스가 달리는 8차선 도로 옆을 지나 유채꽃 덤불을 헤치고 제주의 바닷바람과 강풍경보의 맞바람을 뚫고 그렇게 장장 4시간을 걸려 자전거를 끌고 왔다.
예전에 동생이 일 끝나고 집에 오는데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정류장에서 막차를 눈앞에서 놓쳤었다. 그때는 밤 12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그냥 택시를 잡아 타고 오면 됐는데 동생은 무슨 생각이었는지 따릉이를 타고 집에 왔다. 정류장에서 우리 집까지는 자전거로 약 20분 거리. 우리 동네가 신도시긴 하지만 아직 완전히 자리를 잡은 상태는 아니라서 논밭과 공사현장들을 지나서 와야 했다. 다음 날 이 얘기를 들은 엄마는 동생에게 겁이 없다고, 택시를 타면 되지 무슨 생각으로 자전거를 타고 왔냐고 했다. 거기에 대고 동생은, 시원하고 재밌었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때 『2023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이미상 작가의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을 막 읽은 터였다. 그 작품은 한 마디로 여성 모험 서사였다. 엄마가 걱정 어린 마음에 동생을 나무랄 때, 나는 솔직히 속으로 '내 동생은 모험 서사를 썼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은 한밤중에 논밭과 공사판을 자전거로 가로질렀고 나는 장장 4시간을 바닷바람과 흙먼지를 맞으며 자전거로 달려왔다. 이로써 우리 자매는 여성 모험 서사를 하나 썼다고 생각한다. 왠지 뿌듯하다. 우리가 그렇게 살가운 애정표현을 하는 자매 사이는 아니지만 둘 다 조금은 무모해 보이는 모험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게. 뿌듯하면서 재미있다. 앞으로 각자의 모험에 좋은 동지가 되기를 바라며...!
물론, 엄마 속은 뒤집어지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