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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아이에게 미안했을까?

감정 루틴이 무너졌던 그날, 회복탄력성이 태어났습니다

by 김성곤 교수

“엄마, 나 화내면 안 돼?”


8살 아이가 조심스레 물어봅니다.

순간, 머리가 아니라 심장이 먼저 반응했습니다.


‘아, 내가 이 아이에게 화내는 걸 허락하지 않았구나…’


그동안 저는 이렇게 말해왔습니다.


“또 왜 화를 내?”

“화내면 더 안 들어줘.”

“그렇게 말하면, 나도 말하기 싫어.”


말은 점잖았지만, 사실상 저는 아이의 감정을 ‘통제 대상’으로 여겨왔습니다.


그날 밤, 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이 아이는 지금, 자기감정보다 내 눈치를 먼저 배웠구나…”


감정 루틴이란,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이 어지러워도, 그 안에서 ‘나는 괜찮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붙잡아 주는 구조’를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 구조는 감정의 길잡이와도 같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회복탄력성이 있습니다.


아이가 바닥에 주저앉아 울면서 말합니다.

“엄마, 나 진짜 진짜 속상해!”


저는 순간, 그 말을 고쳐주고 싶은 유혹을 느꼈습니다.

“괜찮아”, “왜 그래?”, “울지 마” 대신

딱 한마디를 꺼냈습니다.


“그래, 너는 지금 진짜야.”


그 말에 아이는 저를 한번 바라보더니, 조용히 눈물을 멈추었습니다.

감정을 해결해 준 것은 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감정을 ‘버림받지 않았다’는 경험이, 아이를 진정시켰습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해답이 아니라 해석입니다.

감정은 정리되지 않아도 괜찮지만,

존중받지 못한 감정은 고스란히 상처가 됩니다.


회복탄력성이란, 감정을 겪고도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는 힘입니다.

그리고 그 힘은, ‘누가 내 감정 옆에 있어주었는가’에서 비롯됩니다.


저는 그날 이후, 감정을 없애려 하지 않고, 함께 견디기로 하였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함께 만든 첫 번째 회복 루틴이었습니다.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컨트롤하려는 순간,

아이는 자기감정을 숨겨야 할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 말은 때로 ‘훈육’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부모 자신의 감정 루틴이 무너져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현실적인 말들


“그걸 지금 울 일이야?”

“또 시작이네, 진짜 지겹다.”

“나도 힘들어. 너만 힘든 거 아니야.”

“예민하게 굴지 마. 누가 그랬다고 해?”


이 말들은 아이에게 던지는 말이면서,

동시에 '부모 자신의 감정에게 던지는 말' 이기도 합니다.


많은 부모가 말합니다.

“나도 내 감정을 들어주는 부모를 만나본 적이 없어요.”

“울면 혼났고, 속상하면 무시당했어요.”


감정을 표현하면 ‘버릇없다’, 울면 ‘나약하다’고 배운 사람이,

자신의 아이 앞에서 감정을 허락하는 법을 아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모의 말투를 바꾼다는 건,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 간 감정 유산을 끊어내는 일입니다.


바꿔볼 말들


“지금 네 마음이 나한테 들리긴 해.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들려.”

“내가 너 감정 옆에 서 있을게. 지금은 그게 먼저야.”

“우리 감정이 헝클어졌을 때, 어떻게 다시 푸는지를 함께 배우자.”


감정은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통과하도록 옆에 있어주는 것입니다.


그건 마치 아이가 스스로 걸을 수 있도록 옆에서 손을 잡아주는 일과 같습니다.

감정의 레일을 함께 걸어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회복탄력성은 감정을 ‘지운 아이’가 아니라, ‘지나온 아이’에게서 자랍니다.


그리고 부모의 말 한 줄이, 그 아이가 세상을 건너는 다리가 됩니다.


아이의 성장은 키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부모의 감정 옆에서, 아이는 자기 마음을 배우며 자랍니다.




다음 이야기 예고


4편에서는 이렇게 질문해보려 합니다.

“왜 우리 아이는 작은 실패에도 무너질까?”


‘회복탄력성’ 다음으로 중요한 키워드,

바로 ‘자기 개념(self-concept)’입니다.


부모의 한마디가 아이의 정체감에 어떤 색을 입히는지,

그리고 그 색이 어떻게 자존감의 빛깔이 되는지,

그 깊은 심리의 흐름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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