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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규 Jul 07. 2021

주마등

제 2화 현실에서

  지하 단칸방 작은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햇살, 선풍기의 오래된 모터가 탈탈 소리를 내며 힘겹게 돌아가고 있다. 침침한 눈 비비며 시간을 확인한다.

‘AM:07:40’

다행이 회사에 지각하지 않을 시간에 일어났다. 어머니께서 잠도 주무시지 않고 간호하셨는지, 옆에 약통과 수건이 고스란히 놓여있다. 기이한 꿈을 꾸고 일어났더니, 온몸이 찌뿌둥했다. 기지개를 켜고 나서야 몸의 긴장이 다소 풀렸다. 일어나려고 벽을 집었다. 미열 때문인지 아직 긴장이 덜 풀렸는지 다리가 휘청거렸다. 서둘러 찬물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반찬을 꺼내려 냉장고를 열었다. 케이크 상자 앞에 종이가 붙여있다.

「오랜만에 아들이랑 생일잔치 하고 싶어서 사 왔어. 몸이 계속 좋지 않으면 오늘 하루 물류 쉴 수 있도록 사장님께 말씀드리렴. 안된다면 조금이라도 일찍 왔으면 좋겠구나. 돈보다는 아들 건강이 우선이야. 그리고 오늘 비 온다고 하네. 잊지 말고 우산 챙기고 가스레인지 위에 미역국 해놨으니 데워먹어. 생일 축하해~ -엄마-」

  어머니는 잊지도 않고 기억하신다. 나는 매번 어머니 생신도 까먹고 사는데...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가스레인지 위에 놓인 냄비를 여니 미역국의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풍긴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섰다. 하늘이 어머니 말마따나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하다. 다시 내려가 우산을 가져와서 출근길을 나섰다.

  아직 남은 미열에 잠이 계속 쏟아져 인근에 있는 편의점에서 껌을 사려고 들어갔다. 창가에서 라면을 옆에 두고 핸드폰을 하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이자 직장 동료인 선우가 보인다. 어깨를 두드리며 인기척을 냈다. 선우는 반갑게 웃으며 옆에 있던 빈 의자를 빼줬다. 나는 자리에 앉으며 선우가 라면을 다 먹을 동안 유리창 밖 사람들의 바라봤다. 편의점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작은 공원에 노부부가 벤치에 앉아있다. 주름이 자글자글 하지만 어느 젊은 연인들처럼 다정히 손을 잡고 할아버지는 느긋이 책을 읽고 있다.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 어깨에 기대어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는 듯했다. 공원 앞, 횡단보도에서는 초등학교 저학년쯤으로 보이는 아이와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신호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아이를 바라보며 웃는 사람의 눈가에 얇은 주름에는 행복이 가득해보였다.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나에게도 있었던 과거의 저 행복이 부러워졌다. 문뜩 아버지 생각이 나서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졌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했지만,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에 누가 볼세라 서둘러 편의점 휴지로 눈물을 닦아냈다. 한 장으로 벅차서 몰래 두세 장 뽑아서 눈과 코를 닦았다. 까슬까슬한 저가 휴지에 눈이 따끔거렸다. 선우는 모르는 척하며 괜히 국물 넘기는 소리를 크게 냈다.

  선우가 라면을 다 먹고 편의점을 나서려하자 갑작스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공원에 있던 노부부는 인근에 주차해둔 차를 몰아 서둘러 떠났다. 바퀴를 따라 빗물이 다시 위로 솟았다가 떨어진다. 선우가 뒷정리를 하는 동안 편의점에서 나왔다. 습한 공기가 가득했다. 다시금 열이 올라오는 것처럼 찐득하게 살결이 축축해졌다. 선우가 나오기 전에 시간을 확인했다.

‘AM:08:55’

  5분 정도 남은 출근시간. 걸어서 약 10분 거리에 있는 회사가 멀게만 느껴졌다. 선우는 서둘러 우산을 피며 내게 시간을 물었다. 시간을 알려주자 마음이 급해졌는지 우산을 방패처럼 잡고는 뛰기 시작했다. 뛰어가는 선우를 따라 얼떨결에 같이 뛰었다. 지각하다가는 반장님한테 죽는다며 소리치는 그의 표정에서 창백함이 느껴져 웃음이 나왔다. 앞선 우산이 비와 강풍을 이기지 못하고 펄렁거리다가 결국 온 몸이 젖고 말았다. 머리카락이 비에 젖어 눈을 찌르는 것이 불편했지만 그마저도 즐겁게 느껴졌다. 앞서가던 선우에게 승부욕이 생겨 그를 앞질러갔다. 선우를 놀리며 횡단보도를 건너가는데 뒤에서 오던 선우가 갑자기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멈춰 뒤돌아보자 선우는 손을 뻗으며 나의 옷깃을 잡으려는 했지만, 옆에서 새하얀 빛이 들어와 눈이 찡그러졌다. 무엇인가 강하게 몸을 강타했다.

하늘이 보였다. 꿈과 닮은 검은 하늘이었다. 이윽고 정신없이 바닥에 힘껏 나뒹굴며 이명이 들린다. 눈앞에 있는 것이 바닥인지 하늘이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쉼 없이 흔들거린다. 속이 매스꺼웠다. 무의식적으로 주변에 있는 것들을 더듬거렸다. 물컹거리는 것이 손이 잡혔다. 앞이 보이지 않아 알 수 없었지만, 누군가 옆으로 웅크리고 있었다. 그가 움찔거릴 때마다 붉은 것이 비에 희석되어 어디론가 흘러간다. 딸꾹질하듯이 계속된 움찔거리던 그의 움직임 멈췄다. 무서워서 아무 말이나 지껄여야 했다. 점점 나도 힘이 빠져간다. 떨어지는 빗물이 눈에 자꾸만 떨어져 빗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온몸이 서늘해 몸을 웅크렸다. 멀리서 검정의 무언가가 뛰어오는 것이 보인다.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그것은 왜 천장에 매달린 것처럼 바닥이 아닌 곳에서 뛰어오는 걸까. 잠이 자꾸 쏟아진다. 졸린 눈앞을 끔뻑일 때마다 검은 형체가 하나, 둘 모여 시야를 가린다. 나는 고개만 겨우 돌려 그들을 바라봤다. 이목구비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희미하게 웃고 있는 표정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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