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바로크의 진주 귀걸이
북유럽 회화에서, 아니 아마 모든 그림 중에 '진주'로 가장 유명한 그림은 네덜란드 바로크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가 그린 헤이그 마우리츠 하이스 미술관의 보물,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일 것이다.
이 그림은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 실제로도 매우 아름다워서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에 방문한다. 그런데, 마우리츠 하이스 미술관에 가보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옆에 이 그림보다 조금 작은 그림 하나가 더 걸려 있다. 바로 또 다른 네덜란드 바로크 화가 헤라르트 테르 보르흐의 <편지 쓰는 여인>이다. 특이한 것은 두 그림 모두 진주 귀걸이를 한 여성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테르 보르흐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러 네덜란드에 갔기 때문에 테르 보르흐의 그림이 더 중요했지만, 이 미술관에 방문한 사람들 대부분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보러 왔다가 <편지 쓰는 여인>을 만나게 된다.
베르메르 소녀의 진주 귀걸이는 뚜렷한 윤곽선이 아닌 화가가 하얀색 물감으로 찍어놓은 반사된 빛으로 아름다운 진주 귀걸이의 표면과 무게가 완성된다. 가장 밝게 반사되는 중간 한쪽 지점과 소녀 옷의 하얀색 깃이 비치는 귀걸이의 아랫부분의 표현이 그림을 더 밝고 깊이 있게 느껴지게 한다.
그런데 사실, 진주 귀걸이의 명성을 조금 덜어내면 이 그림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가장 머물게 하는 것은 귀걸이보다는 소녀의 눈동자라는 생각이 든다. 화면 밖을 향한 묘하지만 분명한 시선, 그리고 마찬가지로 하얀 점으로 그 맑음의 정점을 찍은 동글동글한 눈동자가 이 소녀에게서 눈을 뗄 수 없게 관람자들을 사로잡는 것이다. 실제로 진주 귀걸이보다 소녀의 눈동자가 더 밝게 빛난다.
반면에 테르 보르흐의 여인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편지 쓰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편지를 식탁보까지 밀쳐내고 열심히 쓰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베르메르 소녀의 파란색 두건만큼이나 눈에 띄는 파란색 리본을 단 진주 귀걸이가 보인다. 전체적으로 붉은 톤의 어두운 배경이지만, 살구색 드레스가 화면을 밝게 만들어 주면서 이 파란 리본을 한 진주귀걸이가 사람들의 시선을 그림에 머물게 한다.
두 그림의 진주 귀걸이는 모두 아름답지만 유명한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만큼 테르 보르흐의 진주 귀걸이도 마우리츠 하이스 미술관의 보물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정확한 연대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테르 보르흐(1617-1681)의 그림(c1650)이 베르메르(1632-1675)의 그림(c1665)보다 먼저 그려졌다. 테르 보르흐가 화가로 먼저 활발하게 활동을 했고 비교적 일찍 명성을 얻었기 때문에 베르메르가 이 그림을 보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17세기 네덜란드의 두 화가가 그린 파란색 두건을 쓴 여인의 진주 귀걸이와 파란색 리본을 한 진주 귀걸이가 여러 가지 상상을 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