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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 Sep 27. 2023

퀸텐 마시스의 거울들

플랑드르 르네상스의 공간

Workshop of Quinten Massys, Saint Luke painting the Virgin and Child, c1520

 한 남자가 고급스러운 붉은 두건과 모피로 된 가운을 걸치고 손에는 팔레트와 붓을 쥐고 이젤 앞에 앉아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그리고 있다. 종교화를 그리고 있는 르네상스 시기 화가의 자화상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는 플랑드르의 퀸텐 마시스(혹은 그의 공방)가 의사와 화가를 수호하는 성인, 성 루가를 그린 그림이다. 성 루가의 상징인 황소가 그의 옆에 자리하고 있고 방 안 곳곳에 의료 도구들도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이 방안의 창문은 두 개인데... 한 번 찾아보자. 일단 성 루가의 뒤 쪽에 커다란 창문으로 환한 햇살이 들어오고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창문 하나는 어디에 있을까?


 나머지 창문하나는 성 루가 머리 위 쪽, 제법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는 볼록 거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거울에는 빨간 두건을 쓴 성 루가의 뒷모습과 그림 위 쪽 너머로 빛이 들어오는 창문 하나가 더 비치고 있다.


 이 그림은 제단화의 접히는 부분 중, 오른쪽 날개 부분으로 그려졌다. 따라서 퀸텐 마시스는 이 그림을 정해진 규격에 맞게 세로로 길게 그려야만 했는데, 이때에 관람자가 볼 수 없는 커다란 공간을 최대한 압축시켜 이 볼록 거울에 넣은 것이다.  

    


 커다란 공간을 거울에 압축시켜 작은 북유럽식 패널에 넣는 북구 회화의 특성은 이 그림에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이보다 앞서 제일 잘 알려진 것은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에 그려진 거울일 것이다. 그림 정면 중앙에 위치한 그리스도의 수난 부분으로 장식된 거울에는 관람자는 볼 수 없는 그림 너머의 반대편 부분의 모습이 다시 한번 비친다. 거울 속에는 부부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화가 자신과 화가 옆에 위치하여 관람자는 볼 수 없는 푸른 옷을 입은 또 한 명의 인물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거울 바로 위에 위치한 '얀 반 에이크가 여기에 있었다'라는 화가의 필체가 이 그림을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

 


 퀸텐 마시스 역시 <성모와 아기예수를 그리는 성 루가> 뿐만 아니라 <환전상과 그의 부인>이라는 작품에서 또 한 번 거울을 등장시킨다. 대금업자인 남편은 저울을 들고 동전의 무게를 재고 있으며 그 부인은 성경을 펼친 채 시선은 남편의 행동으로 향하고 있다. 세속과 종교는 저 시기에도, 어쩌면 항상 공존해 왔던 것이니, 그 양면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한편, 거울은, 성경 옆에 관람자가 볼 수 있는 방향으로 놓여 있다. 이 거울 역시 관람자가 볼 수 없는 공간을 비추고 있다. 이 거울 속에서는 동전의 무게를 재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커다란 창문 앞 어딘가 초초해 보이는 어두운 안색을 한 인물을 발견할 수 있다. 어딘가 빚을 갚아야 하는 채무자처럼 보인다.


Quentin Massys, The Money Changer and His Wife, 1514


 이 거울 속 작지만 커다란 세계는 사실 거울이 아니었다면 볼 수 없었던 공간들이다. 북구의 화가들은 사물이나 인물을 비추어 보여주는 거울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더 상상하게 만든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거울로 알게 된 그림 속 세상이 더 현실감 있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신비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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