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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 Oct 22. 2023

알브레히트 뒤러의 서명

뉘른베르크 예술가의 정당성


  화가들이 자신의 그림에 서명을 남기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시기부터였다. 이 시기의 화가들이 단순한 장인이 아니라 독창성을 가진 예술가로 지위가 상승한 것과 맞물려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화가들은 자신의 서명을 숨기거나 변형하기도 했지만 자기 이름의 A와 D를 결합하여 만든 알브레히트 뒤러의 모노그램은 항상 그의 그림에서 굉장히 눈에 띄는 부분에 표기되어 있다.


 뒤러는 28세의 나이에 예수의 이콘의 형태로 자신만만한 자화상을 그렸다. 자신이라는 개인을 주제로 세밀하고 완벽하게 권위 있는 화가의 모습을 그렸다. 28세의 젊은 나이이지만 정면을 바라보는 뒤러는 어딘가 나이를 초월한 듯 보이고, 매끄러운 뺨과 수염, 머리카락, 모피 안감, 그리고 모피를 만지고 있는 손의 정맥까지 세밀하게 묘사하였다. 비대칭의 밝은 갈색의 눈은 정면을 응시하고 홍채에는 창문이 반사되어 보인다.  


Albrecht Dürer, Self Portrait, 1500 / Portrait of Maximilian I 1518

 

 그는 자기 자신을 그릴 때에도 눈높이에 황금빛 모노그램을 박아 놓았고, 막시밀리안 황제의 초상화를 그릴 때에도 황제의 얼굴 옆에 황금빛 모노그램을 표기했다. 뒤러는 그림뿐만 아니라 판화에도 자신이 이 예술 작품에 대한 유일한 작가임을 알리는 모노그램을 표기했다. 그는 인쇄문화의 중심지인 뉘른베르크와 독일을 대표하는 화가로 판화작업을 많이 했기 때문에 유럽 전역에 그의 인쇄물이 배포되었고 따라서 그의 서명 역시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토끼>는 뒤러가 1502년에 그린 수채화이다. 뒤러는 토끼의 털 한 올 한 올의 방향까지 고려하여 묘사하였고 조금씩 다른 털의 얼룩덜룩한 색깔 역시 포착하여 그려냈다. 그리고 토끼의 눈에는 창문이 반사되는 모습까지 그려 넣었다.

The Holy Family with Three Hares, 1496 / Adam Eva, Durer, 1504.

 뒤러의 판화에서 토끼를 다시 찾아볼 수 있는데, 두 판화에서 모두 토끼는 아랫부분에 작게 표현되었다. 보통 뒤러는 수채화를 판화를 완성하기 위한 연습화로 사용하였는데, 토끼 수채화에 정확한 년도와 함께 박힌 모노그램을 보면 그가 이 수채화를 하나의 독립적인 작품으로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알아차릴 수 있지만 그의 서명인 모노그램은 너무나 단순 명료해서 모방하기 쉬었다. 그의 작품이 유명해지고 뒤러 자체가 점점 유명해질수록 다른 예술가들은 그의 작품을 모방하고 그의 서명을 위조하기 시작했다. 위의 토끼 작품도 12명의 동시대의 화가가 모방하여 제작했다고 알려졌다. 한스 호프만(Hans Hoffmann, 1530-1591?)이라는 독일의 화가는 뒤러의 작품을 모방하여 작업하였고, 토끼 그림에는 서명 역시 뒤러의 모노그램을 남겼다. (그는 모방범이라기보다는 판화 사본을 만드는 직업화가였다.)  뒤러는 모방범을 잡아서 법정다툼을 하기도 했고, 이는 미술 역사상 처음으로 알려진 미술저작권 소송이기도 하다.

Durer의 1502년도의 작품과 Hans Hoffmann의 뒤러 모방작, 1528

 

 그러나 뒤러의 작품을 보면... 그가 처음에 서명을 왜 저렇게 쉽게 만들었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뒤러는 후손들이 자신의 예술적 개성을 알아차릴 것이라고 자신했던 것 같다. 그는 자화상의 한 편에 "나 뉘른베르크의 알브레히트 뒤러는 28세에 지울 수 없는 색으로 나 자신을 그렸다."라고 썼다. 그리고 이 자화상을 죽기 직전까지 대중들 앞에 선보이지 않았다. 그는 대중의 인정보다는 미래를 위해 이 자화상을 그렸고 자화상에 표현된 천재성은 그 자체로 정당성을 갖는다. 서명은 주로 예술가가 자신을 차별화하고 작품의 주인을 구별하고 확정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뒤러의 작품에서 이 작품이 뒤러의 작품임을 보장하는 것은 그의 서명을 너무나도 뒷받침해 주는 천재적인 실력인 것이다. 그의 서명은 따라 하기 쉬울지라도 그의 천재성을 모방하는 것을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뒤러 스스로 알았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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