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프트 화가의 공간
보기만 해도 마음이 평안해지는 그림들이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에서는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da Urbino, 1483-1520)가 그린 안정적인 구성과 조화로운 색상의 아름다운 성모자상을 바라볼 때 평화로운 느낌을 느낀다. 북구 르네상스나 바로크의 성모자상은 아름답지만 뭔가 평화롭게 다가오기보다는 마음에 조금의 파장을 일으키는 느낌이 있다. 그러나 북구 바로크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소박한 행동을 한 일상적인 모습으로 따뜻하고 잔잔한 느낌을 주는 피터 드 호흐(Pieter de Hooch, 1629-1684)의 작품들이 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처음으로 종교나 신화, 역사적 영웅의 찬란한 모습이 아닌 서민들의 일상생활이 회화의 중심으로 자리했다. 이는 네덜란드의 역사적, 정치적, 종교적 상황에서 비롯되었다. 호흐는 이러한 장르화의 대가였고, 특히 그의 작품에서 그려지는 '어머니'의 모습은 성모마리아의 모습이 아닌 아기에게 젖을 주고, 청소하고 정돈하며, 아이들을 양육하는 실제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호흐는 이러한 모습을 단순히 그려낸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예찬하며 미덕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의 회화들은 차분한 오후의 햇빛 속에서 평화로운 가정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 그림에는 방 한구석에 앉아 아이의 머리를 정돈해 주는 모녀의 모습과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을 맞고 앉아 있는 강아지가 있다. 다른 한 그림에는 엄마가 하녀와 함께 방안을 정돈하는 동안 집안을 돌아다니는 아이의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다른 그림에는 침대를 정돈하는 엄마와 눈을 맞추고 웃고 있는 아이, 빵을 들고 들어와 엄마에게 자랑스럽게 건네주는 아이도 보인다.
이러한 그림이 주는 평온함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어머니와 자녀의 모습에서 번져 나오는 자연스러움과 아이들의 행복한 표정일 것이다. 그런데 특히, 호흐의 작품에서는 눈에 띄는 또 다른 요소가 있다. 그것은 바로 호흐가 이러한 자연스러운 모습을 건축적인 틀 안에서 표현했다는 점이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일반적인 가정집의 모습을 구성하면서도 각각의 열린 문들에서 들어오는 햇빛과 그 햇빛이 비추고 있는 실내의 바닥은 작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해 보인다. 그리고 그 바닥은 규칙적인 사각형의 타일모양으로 안정감을 구현해 낸다. 호흐가 그리는 어머니와 아이의 모습은 작고 소박한 일상의 행위이지만, 그 정갈하고 갖춰진 사각형 타일 위에서 하나의 높은 도덕적 가치를 가진 미덕적 모습으로 다가온다.
호흐는 실외의 모습을 그릴 때도 세부적으로 건축적인 모습을 묘사하면서도 실내의 모습처럼 정갈한 모습으로 그렸다. 마치 집 밖이 아니라 집 안에서의 행동인 것처럼 모든 이들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빛 속에 자리하고 있다.
마지막 그림에서는 어머니가 요람 속 아이와 놀고 있고 그 옆에는 개가 동작을 멈추고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또 한 명의 아이가 서 있는 바닥의 모양이 바뀌었다. 평화로운 집 안과 세상에서 쏟아지는 햇빛을 바라보며 한 소녀가 서있다. 소녀가 서 있는 곳은 집 안이지만 집 밖과 더 가까운 공간이다. 열린 문 앞에서 한쪽 발을 살짝 띄고 소녀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