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은 메타버스와 닮았다!
공대를 나온 남편은 새로운 전자기기라면 눈이 돌아간다. 컴퓨터든 핸드폰이든 신기능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도시로 나들이 갈 때마다 전자매장에 들러 새로 나온 물건을 체험해 본다. 나는 전혀 차이점을 모르겠다. 어차피 인터넷검색과 유튜브 시청밖에 안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가씨 때는 남들이 좋다니 신형 핸드폰이랑 미니패드를 사 보긴 했는데, 사진기 화질이 좀 잘 나왔던지 전자책 읽을 때 좀 편했던지 가물가물하다.
얼마 전 일이다. 남편은 회사에서 vr360 가상현실 게임기를 동료에게 추천받았다. 애들 아빠가 차마 게임을 즐기려고 산다는 말은 못 하고, 가상현실에서 운동을 하면 그렇게 실감 나게 잘되더라 하며 나름의 설득과정을 거쳐 구매했다. 나갈 시간도 없는 사람이 운동 회원권에 날리는 돈보다 훨씬 경제적이라는 설명이었다. 초반에는 vr기계를 끼고 진짜 운동을 하는지 슉슉 복싱자세로 몇 번 주먹질을 하는가 싶더니, 이제는 명상 기계가 되어 침대에서 실감 나는 세계여행을 하고 싶을 때 평온하게 사용하고 있다.
나도 vr기계를 몇 번 써봤는데 진짜 눈앞에 사물이 있는 것처럼 실감이 나긴 했다. 낚시를 하는 것도 지이잉하면서 손맛을 느낄 수 있고, 누워서 하늘을 보면 진짜 맑은 하늘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그렇게 몇 번 신기하긴 했지만 고글처럼 쓰고 빼는 쉬운 과정마저도 은근히 귀찮아졌다. 그래서 전용 걸이대에 걸어두고 잠시 잊고 지냈다.
그러다 며칠 전 사람이 없는 도서관에 혼자 앉아있다가, 창밖으로 펼쳐지는 넓은 하늘을 봤다. 우리 동네는 시골이라 하늘 밑으로는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다. 아무 생각 없이 경치를 보며 멍을 때리고 있다 보니, 문득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오잉. 이 장면을 대체 어디서 봤더라. 한참 생각해 보니 예전에 vr화면 속에서 봤던 광활한 자연이었다. 아무도 없는 시골에서 바다를 쳐다보니 그곳이 순간 나만의 가상현실이 되어 버렸다!
메타버스는 ‘가상’, ‘초월’ 등을 뜻하는 영어 단어 '메타'(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세계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의 가상세계를 가리킨다. 메타버스는 가상현실(VR, 컴퓨터로 만들어 놓은 가상의 세계에서 사람이 실제와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최첨단 기술)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개념으로, 아바타를 활용해 단지 게임이나 가상현실을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현실과 같은 사회·문화적 활동을 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메타버스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생각해 보면 시골(도시에서 떨어져 있는 지역. 주로 도시보다 인구수가 적고 인공적인 개발이 덜 돼 자연을 접하기가 쉬운 곳을 이른다.)과 메타버스. 둘 사이에는 나름의 공통점이 있다.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 생각이 많이 반영되었다.
일단 첫째, 나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하는 무(無)의 상태에서 시작한다는 점이다. 두 곳 다 새로운 환경과 어우러지기 위해 아이디어나 방법을 생각해 낸다. 도시나 현실과는 다른 세계로 삶의 방식과 생활환경이 다르지만, 새로운 규칙과 환경에서 적응해 나가는 적응력과 창의력이 필요하다.
둘째, 둘 다 개인적인 공간으로 자유로움이 중요시된다. 나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많아 오롯이 스스로 사유하고 이끌어갈 상황이 많다. 시골에는 인프라가 없고 메타버스는 실제 인간이 아닌 가상 캐릭터와의 상호작용이 주를 이룬다. 그러다 보니 혼자서 할 수 있는 활동이 많다. 시골에서는 자연 속에서 산책하거나 책을 읽거나 낚시를 즐길 수 있고, 메타버스에서는 게임을 하거나 소셜미디어에서 친구들과 교류하거나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데 그 본질은 비슷하다.
셋째, 일반적인 현실과는 다른 삶이다. 둘 다 일종의 탈출구가 될 수 있다. 시골은 도시에서의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쉬고 싶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이고, 가상세계는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할 수 있다. 상상력의 끝으로 가느냐, 다시 무의 경지로 와서 평온해지느냐. 어떤 식이든 일상과는 다른 해방감을 준다.
물론 둘은 극과 극이다. 시골에 물리적인 제약이 있다면, 메타버스에 접속하는 순간 가능성은 무한으로 확장된다. 시공간에 비교적 여유가 있다는 점이 비슷할 뿐, 시골은 자연을 통해 실제적인 휴식과 재충전을 하는 곳이고 메타버스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경험을 제공하면서도 현실이 아니라는 제약이 있다. 시골에서 메타버스를 체험해 본다고 가정해 보자.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별천지 속으로 단숨에 진입하는 거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뭐든지 가능한 공간에 있다 보면 일종의 피로감을 느끼고 지루해질 수 있다. 이때 메타버스를 오프 한다면 시골의 한적한 공간으로 돌아와서 두 배의 효과로 어우러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시골과 메타버스는 서로 다른 공간이지만, 각각의 공간에서 독특한 경험과 매력을 제공한다. 우리나라 시골은 일자리가 없어서 점점 소멸해 가고 도시집중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시골이 한적하고 여유로운 걸 알지만, 당장 먹고살아야 하는 문제로 돈을 벌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타버스를 비롯한 온라인 매체들이 빠르게 발전한다면 공간의 제약이 없어진다. 시공간적으로 제약된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새로운 경험을 시골이라는 자연환경 속에서 마음껏 펼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지방도시 살리기가 이슈인데, 넓은 땅이 있는 시골에 광활한 메타버스 체험센터를 지어보는 것은 어떨까.
메타버스가 복잡하고 어지러울 수 있어도, 반대로 나는 무료하다. 뭐라도 좀 경험하고 싶어도 인프라가 거의 없다. 일을 하고 책을 읽다가도 멍하니 바다를 보면서,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그 세계에 빠져들곤 한다. 그럴 땐 거꾸로 메타버스가 구원자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사는 마을에 대형 메타버스 체험센터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상상도 해본다. 그 안에서 우주를 항해하는 내가 즐기는 상상을 하며 한참 동안 빠져있다가, 문득 내가 사는 바다가 오버랩되어 다시 현실로 돌아와 글을 쓰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