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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 윤 Sep 06. 2023

육아 라이프: 시간을 보내는 것과 그냥 때우는 것

육아는 참 힘들다. 육아만 그렇겠는가. 집안일도 회사일도 힘겹게 버티며 살아간다. 

유난히 시간도 잘 가지 않고 몸은 힘들고 일이 잘 풀리지 않던 어느 날, 바닥에 누워 떼를 쓰는 아이를 보며 나는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그래. 애들 클 때까지 3년만 버티자. 타임워치를 맞췄다고 생각하고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자. 군대에 왔다고 생각하고 할 일만 하면서 버티다 보면 어떻게든 시간은 흘러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살면서 가장 젊다는 오늘이라는 시간인데. 나의 꽃다운 20대를 학업 취업 스트레스로 보낸 것으로 모자라, 30대에는 육아 살림 스트레스로 시간이 흐르기만 기다리고 있다니. 

이렇게 허무하게 나의 2030이 흘러가고 있구나. 나 자신을 가꾸고 물을 주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시간이 빨리 흐르기를 기도하는 심정이라니. 그러다 보면 언젠가 화창한 미래가 오기는 하는가?


 

일단, 화창한 미래가 온다고 가정을 하자.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시간을 때울 수는 없다. 모처럼 의미 있게 보낼 순 없을까? 

얼마 전 맘카페에서 검색을 하다가 글을 하나 읽었다.

'주말에 에너지 넘치는 아이 둘을 혼자 봐야 합니다. 집에서 육아하는 게 좋을까요, 밖으로 데리고 나갈까요?'

글에 달린 댓글이 인상적이었다.

'밖에서나 안에서나 힘든 건 마찬가지입니다. 육아 난이도는 똑같지만, 밖으로 나가면 시간이 빨리 간답니다.'

바깥육아와 집안육아의 차이는 무엇일까? 왜 밖에서 구르다 보면 시간이 더 잘 가는 걸까?





바깥육아가 좋은 이유?


아무래도 집에 있으면 하는 일들과 행동반경에 제한이 있고 아이들도 지루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역으로 밖에 있는 시간이 너무 긴장되고 정신없어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는 걸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밖으로 나가면 더 버라이어티 한 상황이 펼쳐지고 그것이 시간을 저절로 밀도 있게 만들어버린다.



나는 계획형 인간은 아니지만 계획의 좋은 점을 알 것 같다. 계획을 해 두면 스케줄대로 억지로나마 움직이게 된다. 강박적으로 기계적으로 움직여서 스트레스받는 정도가 아니라면,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는 편이 낫다. 더 훌륭하다는 뜻이 아니라 덜 무료하다.



그리고 스케줄대로 했든 못했든, 일과를 기록해 두면 나중에 삶을 돌아봤을 때 뿌듯하다. 

나 자신과 가족에게, 내 일과에 소홀하지 않았다는 일종의 안도감이랄까.

비로소 시간을 때우지 않고 잘 보냈다는 기분이 든다.



시간이 절로 흘러갔던 경험


그런데 꼭 나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당장도 뭘 하고 있는 편이 시간이 잘 간다.

딸이 3살 때 말도 안 통하는데 놀아주느라 시간이 진짜 안 갔던 경험이 있다. 스티커 붙이기도 하고 몸으로도 놀아주고 책도 읽어주고 장난감 놀이에 그림 그리기까지 하는데 시간이 한 시간 좀 넘게 지나갔다. 오 마이 갓. 저녁 먹을 때까지 아직 두 시간이 남았는데. 



뭘 해야 하지 싶은데 딸아이가 튜브를 가져왔다. 공모양의 튜브를 불어달라고 애원하는 통에 공기주입기도 없이 직접 입으로 불어야만 했다.

후욱 후욱. 아무리 불어도 바람이 안 채워진다. 후욱 후욱. 이제 3프로 정도 채워졌나? 후욱 후욱. 엄마가 열심히 하는 모습에 딸아이도 즐겁게 그냥 지켜본다. 

겨우겨우 바람을 얼추 불어넣고 시간을 봤는데 그렇게 안 가던 두 시간이 그냥 지나가 있었다.





무더위 바닷가에서 육아하기


얼마 전에는 가족들과 바다에 놀러 갔다. 폭염으로 35도를 육박하는 날씨였다. 파라솔 아래 의자를 펴고 앉았지만 찜통에 앉은 듯 덥다. 내리쬐는 뙤약볕에 가만히 있어도 힘든데, 아이들은 모래가 뜨겁다고 징징대며 서로 내 무릎에 앉으려고 했다. 첫째와 남편은 어느새 바다에 풍덩 빠져 미역을 두르고 있다. 

그냥 애들 데리고 먼저 차로 갈까? 20분 만에 고민이 극에 달했다. 

모래놀이도 싫다. 바다는 무섭다. 우는 아이들 덕에 시간이 참 안 갔는데.



에라 모르겠다. 이왕 바다에 나온 거 그냥 드러누워 버리자. 여벌 옷도 없고 여전히 더웠지만 나는 모래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철썩대는 파도를 손으로 만지며 가볍게 물장구를 쳤다. 조금씩 바지가 젖어들었지만 그냥 내버려 뒀다. 

그제야 조금도 안 떨어지겠다며 들러붙어 있던 아이들이 물놀이에 흥미를 보이며 놀기 시작했다. 모래에서 주운 미역을 바닷물에 헹구고, 파도가 잠시 밀려나간 모래 위에 글씨를 썼다가 지워지는 걸 보며 까르르 웃는다.

드디어 웃는구나. 기세를 몰아 모래성 쌓기에 돌입한다. 후다닥 쌓아 올린 모래성이 밀물에 흩어진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시 쌓아 올리면서, 모래놀이를 하고 물장구를 첨벙 대다 보니 어느새 알차게 보낸 시간이었다.





시간이 가기만 기다리면 오히려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1분을 가장 느리게 보내는 법이 플랭크 자세로 시계 보기가 아니었던가. 

그냥 늘어져서 멍하니 시간이 흐르기만 기다리는 방법도 있지만, 시간을 적극적으로 보내다 보면 오히려 잘 때워지기도 한다.



그러니 힘든 오늘도 적극적으로 보내 보자. 주말이 다가오면 또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나 부담이 되는 요즘이지만, 밀린 살림을 보며 어떻게 또 해치울까 때울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한 번씩은 오늘의 바다에 풍덩 빠져 이것저것 새롭게 몸을 움직여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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