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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Aug 04. 2020

정우성, 그 배우의 '얼굴값'

인터넷의 바다를 휘적이다 보면 시선을 자극하는 영상을 만난다. 궁금해서 보고 싶게 만든다. 망설임 없이 클릭한다. 드라마의 한 장면, 보다 보니 눈물이 흐른다. <한번 다녀왔습니다>에서 어린 시절 헤어졌던 오빠(천호진)와 동생(이정은)이 만나는 장면이었다. 이전까지 한 번도 시청한 적이 없는 드라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그 드라마가 나오면 빠르게 채널을 돌렸다. 처음 본 한 장면으로 눈물까지 흘린 것이었다. 이 정도면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했거나 눈물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눈물이 많아서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실제 상황에서는 싸늘해지는 경우가 제법 많다. 이유는 공감에 있다. 책을 읽어도 비슷하다. 상황에 몰입하고 크게 공감하는 편이다. 눈물까지는 아니라도 울컥하는 장면이 나오면 책에서 손을 뗄 수 없다. 나와는 세대도 성별도 다른 어떤 이의 이야기가 나와도 몰입하고 그들의 행동의 당위를 긍정하게 된다.


영화는 말할 것도 없다. 판타지든 로맨스든, 작품성이 형편 없다고 평가받는 작품에서도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뿜어져 나오는 그들의 인생에는 긍정하고 빠져든다. 쉽게 감동하고 눈물도 잘 쏟는다.


정우성의 그 말이 인상 깊었던 이유


tvN 퀴즈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정우성이 나왔다. 평소 좋아하는 배우이기도 해서 주목하고 시청했다. 직업을 주제로 만나는 시간이었고, 정우성과의 인터뷰를 통해 내가 드라마나 영화에 몰입하는 이유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직업인 배우를 인간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연기를 통해 표출되니 관객 또는 시청자인 나는 그들이 만들어 내는 삶에 대해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는 배우라는 직업을 한 마디로 꿈이라고 정의했다. 사람들의 꿈이 담겨있기 때문이라는 의미로 이해했다. 영화의 스토리는 일상의 단편을 모아 영상으로 집약시킨 것이고, 그것을 구현한 영화나 드라마가 꿈이라면, 그 바탕이 되는 사람들의 일상은 더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라고, 그는 부연했다.


좋아하는 배우의 말이어서 지나친 의미부여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분야에 30년 가까이 종사한 사람의 진지한 말은 그냥 흘려 지나가지 않았다. 배우로서 사람들에게 미칠 자신의 연기에 대해서도 고민하며 역할을 맡는다는 그의 목소리에 진심이 묻어났다.


그는 영화배우라는 역할이 주는 사회적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때문에, 인간의 삶과 그것을 구성하는 사회, 사회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인간성에 대해 고민하고 어떻게 진실되게 구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고도 했다. 그러한 고민을 바탕으로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기 때문에, 그가 사회에서의 많은 일들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2018년 예멘 내전을 피해 제주특별자치도로 무비자 입국했던 예멘인 500여 명이 난민 지위를 한꺼번에 신청한 적이 있었다. 이른바 제주 난민 사태로 알려진 논란에서도 그는 한결같은 목소리를 냈다. 공인인, 그것도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이 사회문제에 대해 자신의 소신을 밝히고, 그 뜻을 일관되게 말하고 설득하는 모습은 연예인이 아닌 사회활동가의 모습이었고, 입장은 달랐지만 그의 행보는 감탄스러웠다.


그 일로 인해 무수히 많은 악플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차분하게 설득하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그 사태를 가지고 홍세화는 말했다. "우리는 우리 각자의 눈으로 사물과 현상을 본다. 예멘 출신 난민들을 향한 혐오 감정은 그들에게 투사된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진단하지만, 그것 역시 그들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정우성도 말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난민은 난민 문제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인 것 같아요. 우리 사회는 늘 불평등했어요. 불합리했구요. 그리고 상처가 치유받지 못했던 사회였습니다. 이런 사회적 문제들이 있었기 때문에 외부에서 갑자기 난민이라는 이유로 문제가 커진 것 같은데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이런 갈등을 잘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만들면 좀 더 성숙한 대한민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난민을 보살필 수 있는 국가도 될 수 있을 거고."


정우성이 만난 난민에 관한 이야기인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에서도 말한다. 그는 인간의 삶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


나는 난민만 돕거나 난민을 우선하여 돕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안에서 힘들게 살고 계신 분들을 외면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분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매우 중요하다. 다만 여유가 된다면 눈을 들어 더 먼 곳을 바라보자고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나 


나이가 마흔을 넘어서면서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혹시라도 사람들에게 각박하고 삭막한 기운이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염려했다. 그래서 마음을 부드럽게 하려고, 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내게 다가오는 세상을 불평하지 않고 좀 더 이해해보려고도 했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나중에 나의 얼굴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바라 볼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독한 인상의 사람에게는 독한 기운이 나온다. 부드러운 인상의 사람에게는 부드러움이 나온다. 그래서 얼굴이 살아온 인생을 보여준다는 것에 나는 동의한다. 삶이 모진 순간도 있었지만, 적당히 힘들었고 적당히 행복했고 적당히 순탄하게 살아온 것 같다. 얼굴값으로 세상을 살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간의 노력 덕분에 얼굴값으로 푸대접 받지는 않았던 것 같다. 


흔히 '꼴값'이라는 말을 한다. '얼굴값'의 속된 표현으로 '-떤다, -한다'와 붙여 혐오의 의미로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배우 정우성에게 얼굴값은 마음의 표현이나 보여주는 행동으로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단지 얼굴만 잘생긴 배우가 아닌 인간과 인간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보편적 인권의 가치를 깊이 새기고 실천하는 모습들이 그의 얼굴값을 더 높이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그는 마음이 드러나는 진실된 얼굴값으로 그에게 반대하는 사람조차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가, 영화가, 책이 오늘도 마음을 두드린다. 배역을 맡은 이들의 얼굴값이, 캐릭터를 구현하는 힘이 나를 공감의 세계로 이끈다. 세상 모든 이들의 반짝반짝 빛나는 일상이 그것을 마주하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빛나게 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고 나는 오늘도 바란다. 보통 사람들의 반짝이는 삶을 구현한 책을 읽으며, 드라마와 영화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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