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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May 11. 2021

사랑, 그 아름다운 연대

[책 리뷰] 박서련, <더셜리 클럽>, 2020

호주라는 나라의 이야기는 왠지 친근하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가까운 가족이 이민 가서 살고 있는 곳이 호주라는 것. 딸의 친한 친구가 책의 설희처럼 워킹 홀리데이로 호주에 가서 정착했다는 것. 가끔 사연이 있어 이민을 떠난다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곳이 대부분 호주라고 들었고 그 이유가 있을까 궁금해했던 기억뿐이지만.


가까운 가족이 호주로 이민을 떠난 지 10년, 그 가족을 보러 우리 말고는 모두 그곳을 두세 번씩은 다녀왔다. 돌아오며 그들은 휴대폰으로 곳곳의 영상을 담았고 용감하게 살아가고 뿌리내리려는 가족의 일상을 담아 왔다. 물론 관광지나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는 유명 건축물의 사진도 있었고. 그들은 하나같이 여러 번 되풀이해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래서인지, 단지 그런 이유만으로, 멜버른도 시드니도 다 알 것 같고 친숙하게 느껴진다.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은 설렘에 앞선다. 때문에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마음의 방어기제 같은 것이 설렘이라는 마음으로 포장되는 것은 아닐까. 낯선 곳으로의 여행의 경험에서도 그랬던 것 같다. 설렘이라는 감정으로 두려움을 몰아내려는 마음의 시도. 여행도 아닌 삶의 터전 전부가 옮겨간다는 것은 두려움의 크기나 양이 더 클 것이고 따라서 설렘도 더 크게 부풀어 오를 것 같다.



<더 셜리 클럽>은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간 설희의 사랑과, 같은 이름을 가진 셜리 할머니들과의 만남을 통해 인간적 연대와 인간에 대한 관심을 이야기한다.


Side A에서는 설희의 운명적 만남의 이야기가, Side B에서는 단절된 S와 운명의 끈을 이어 가고자 하는 설희의 여정이 이어진다. 각 사이드의 트랙들은 S가 그녀에게 선물했던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된 그녀의 목소리다. 그녀가 S에게 전하는 사랑의 고백이며 그녀가 셜리 할머니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주인공 설희는 멜버른에 도착한다. 워킹홀리데이로 왔지만 호주를 바로 떠날 생각은 없다. 처음 도착한 곳에서 마주한 멜버른 커뮤니티 페스티벌은 설렘의 기대감이 만든 행운은 아니었을까. 두려움을 막고자 하는 용기는 설희로 하여금 축제에 뛰어들도록 만든다.


페스티벌의 행렬을 지켜보다 행렬이 끝났나 싶은 지점에서 천천히 뒤따라 오는 더 셜리 클럽 빅토리아 지부 회원들. 옷차림, 피부, 표정과 걸음걸이까지. 하나도 그녀와는 같지 않은 그들과 이름 하나로 일체가 되고자 설희의 마음이 일렁인다. 지금은 쓰지 않는 셜리라는 나이 든 세대의 사랑스러운 이름. 영어 이름이 셜리인 설희는 무작정 반갑다. 이름 하나로 뭉친 할머니들의 모임인 셜리 클럽과 증명할 방법은 없지만 같은 이름을 가진 설희. 비로소 낯선 곳, 기댈 곳 하나 없다는 실감이 그녀로 하여금 사람 좋아 보이는 할머니들을 이름 하나에 기대어 따라갈 수밖에 없도록 이끈 것은 아닐까.


'더 셜리 클럽', 전통 의상을 입은 것도 아니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사람 좋아 보이는 할머니들이 느린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맨 앞 할머니 세 명이 테두리를 보라색으로 물들인 작은 현수막을 들고 있는 게 유일한 구경거리라 할 수 있었다.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눈길이 갔다.


사람 좋아 보이는 그 그룹에 내친김에 회원가입까지 하겠다고 3리터의 땀을 흘리며 뒤를 따라서 도착한 스포츠 펍. 그곳에서 그녀에게 다가온 운명, 설희는 깊이 빠져든다. '앞에서 뒤로 부드럽게 미는 듯한 보라색 억양'의 S와의 만남과 가입 여부를 고민해보겠다는 셜리 클럽의 할머니들이다.


'첫눈에 반한 사랑'이었을까, S에 대한 감정의 정체를 탐색할 새도 없이 설희는 그에게 빠져든다. S와 셜리 클럽, 모두와 관계를 잘 이어가던 어느 날, 함께 하룻밤을 지낸 그날 이후 S와 연락이 끊기게 되고, 설희는 사라진 S를 찾아 셜리 클럽과 연대한다.


잦은 우연은 운명이다. 거리에서 만난 셜리 클럽 할머니들 모두의 생애와 삶의 궤적은 동양인 셜리에게 잔잔히 스며든다. 셜리 클럽의 할머니들은 설희가 가야 할 방향을 안내한다. 때론 직접적으로 때론 간접적으로. 인생 후반기의 셜리 할머니들 모두는 어떤 젊음보다 빛이 난다.


할머니들의 지혜는 설희에게 늘 기대 이상을 선물한다. 시크하면서도 따뜻하고 정확하다. 세심한 배려는 설희가 가는 곳, 묵을 곳, 먹을 것, 만나야 하는 것을 위한 준비까지 완벽하다. 영어 사용이 충분하지 않은 설희에게 딱 필요한 말만으로 풍부한 내면의 소통이 가능하다. 역시 인간관계는 말보다 마음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 안에서 우리가 된다. 사랑을 완성하고 싶다면 내가 주는 사랑이 그 사람을 완성해 줄 거다.' 셜리 넬슨 할머니의 편지는 설희에게만이 아닌 사랑을 갈구하는 세대를 향한 응원 같다. 절실하지 않으면 소중한지 모르는 채로 잃어버리는 것들이 많다. 사람이건 운명이건, 어느 틈엔가 사라지고 마는 것들을 지켜 내는 방법을 <더 셜리 클럽>을 통해 배울 수 있다.


인터넷 책 소개에 '<더 셜리 클럽>은 우리를 강한 사람이게 하는 사랑을 말한다. 또한 우리를 좋은 사람이게 하는 연대를 이야기한다'라고 적혀 있다. 우리는 살아 있는 모든 순간에 사랑이 마음속에 있음을 느낀다. 뤼디거 달케는 <운명의 법칙>에서 '우리 모두는 자신의 행복을 만드는 대장장이다'라고 말했다. 사랑이 인간의 운명이라면, 운명은 만들어가는 것임을 설희와 셜리 클럽의 만남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우연히 축제를 만난 적이 있다. 스위스 건국기념일 축제. 낯선 이방인의 시선은 어색했고 축제와 하나가 되지 못했다. 전통 의상을 입고 정성스러운 분장을 한 그들의 퍼포먼스는 화려했지만, 의미를 알 수 없는 이국적 그림의 한 장면이었던 것 같다. 낯선 그림이 내 운명과 하나가 되는 경험은 어쩌면 소설이기에 가능한 것일지도.


나의 셜리 클럽은 어디에 있을까? 이미 만났다면? 어쩌면 지금 만나는 모든 인연들이 셜리 클럽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셜리 클럽을 만들어가는 비밀 하나, 상대의 표정을 읽을 것.


표정은 본능일까요? 아니면 교육된 걸까요? 모든 문화권이 다 똑같은 걸까요? 표정의 책임은 절반 정도 그 표정을 짓는 사람에게 있고 나머지 절반은 표정을 해석하는 사람에게 있다는 생각을 해요.


웃으면 같이 웃어 주고 진지하면 같이 진지해지고. 상대의 표정과 목소리가 짙은 초록이었다가 뜨거운 빨강이 되거나 샤방한 핑크빛으로 다가온다면 마음이 통한 것이다. 그럴 때 과감하게 다가가기를, 주저하지 않기를, 사랑을 표현하기를. 누군가에게 셜리 클럽이 되어주거나 나를 위한 셜리 클럽을 만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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