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를 낳고
병원에 간 후로 난방은 꺼져 있었다. 온기 없는 집이었으나 도착과 동시에 묵은 숨이 새어나왔다. 3월, 발끝을 통과한 바닥의 냉기가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찬물로 걸레를 빨아 구석구석 지난 일주일의 먼지를 닦았다. 해질무렵 찾아온 시어머니는 미역국 한 솥을 끓여 놓고는 잘 챙겨 먹으라고 말씀하시고 돌아 가셨다.
5일 전, 둘째아이를 낳았다. 병원에서 4일을 보내고 시댁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작은 상에 미역국 한사발이 밥과 나란히 놓였다. 뜨거운 국물이 산모의 더운 입을 더 화끈거리게 만들었다. 미끄덩거리는 미역 줄거리가 헐어 있는 혓바닥을 훑고 지나갔다. 오래 달아 걸쭉하고 들큼한 것이 맛을 느끼기도 전에 식도를 타고 흘러내렸다. 먹어야 한다고 준비한 것이라니 마음만은 시원하게 들이키고 싶었다.
바닥에 닿는 모든 곳이 뜨거웠다. 발바닥도, 엉덩이도, 기울지 않게 한쪽으로 괸 손도. 지지는 것이 아니라 태우고야 말 것처럼. 방바닥에서 이글거리는 기운이 올라왔다. 연탄이나 장작을 태우는 아궁이었다면 바닥은 벌써 숯검정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저 위쪽은 서늘하겠지. 시원한 냉수 한 사발이 간절했다.
황송한 몸짓으로 누웠거나 앉아 있었다. 간간이 몸을 일으켜 기저귀를 갈고 젖을 먹였다. 그러는 사이 빨아야 하는 기저귀가 벌써 한 대야였다. 욕실로 주섬주섬 가지고 들어갔지만 다시 돌아섰다. 찬물에 손 담그면 안 된다고 했다. 비벼서 빠는 것도, 아귀차게 힘을 줘도 산모에게 안 좋다고. 나중에 세탁기에 돌리면 된다고.
시어머니와 시누이, 남편과 아이 둘. 남편을 제외하고 여자만 있던 집에 남자가 하나 더 늘었다. 3살 딸아이의 작고 부지런한 움직임과 갓난아기의 사이사이 우는 소리가 방안에 꽉 찼다. 4대 독자의 아들이 태어났는데, 모두 약속한 것처럼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 병원에서 나온 조심스런 그 하루가 저물었다.
선잠에 들고, 새벽에 눈을 떴다. 잠자리에 든 적이 없는지 시어머니는 부엌에 나와 계셨다. 기척을 보이자 곧 미역국 한상이 차려졌다. 얼른 먹으라는 재촉에 마지못해 수저를 들고 먹는 시늉만 하고 있었다. 새벽부터 차려지는 밥상이 송구했다.
“이따 같이 먹어도 되는데요.”
수술 후 밥에서도 병원의 약냄새가 났다. 신기하게도 딱 식욕을 잃었다. 5일째 최소한의 움직임. 산모에게 통하는 정답처럼 병원에서부터 항상 똑같은 미역국에 밥이다.
잠시 후 시누이가 일어나 나왔다. 다정한 인사말이 따라왔다.
“괜찮아요? 몸은 어때요?”
얼른 씻고 나오라는 시어머니 말에 시누이는 학교 갈 준비를 서둘렀다.
“뜸만 들이면 되니 밥 먹고 가.”
피곤에 절은 갈라지는 소리에 모성이 끓었다. 수저 놓을 기회만 엿보는 밥상 위로 갓 지은 윤기 나는 밥과 막 무친 나물이 올라왔다. 입맛은 없는데 침이 돌았다. 한 마디 덧붙었다.
“넌 젖을 먹이니 바로 먹어야 해서. 밥 새로 떠줄까?”
시원한 것을 원했지만 찬밥은 아팠다. 억지로 넘긴 밥알이 날이 섰다. 하마터면 뜨끈한 방에 마음을 풀어 놓을 뻔했다.
큰시누이는 한 달 전 멀리 낯선 땅, 이름도 향기로울 것 같은 파리에서 몸을 풀었다. 미역국은 먹었냐는 소리에 그곳 병원에서는 치즈와 견과류를 주었다고 했다. 시아버님 돌아가신 후로 대학을 막 졸업한 시누이는 집안의 가장 역할을 했다. 그리고 8개월 전 파리로 갔다. 그녀가 떠난 날 어머니는 모든 것을 잃은 모습이었다. 다섯 살 어린 남자의 가족은 결혼을 반대했다. 설득도 못하고 헤어지지도 못했다. 말로만 듣던 사랑의 도피였다. 그렇게 떠난 시누이는 출산을 하고나서야 임신과 출산 소식을 한꺼번에 전해왔다.
“퇴원하면 니들 집으로 알아서 가라. 걔는 미역국 끓여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 있었는데. 내 새끼도 못 챙기는데 누굴 챙기고 싶지 않다.”
아침을 먹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은 퇴원하기 전날 어머니의 말씀을 변명처럼 전했다. 속상했다고 했다. 가차없는 말에 손톱만큼의 마음도 없다는 것을 알았고,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고 했다. 그런데 독하고 모진 마음을 이기는 것이 남의 눈이었다. 결국, 마음에도 없는 뜨거운 방과 냉랭한 침묵의 하룻밤을 보내게 된 것이었다. 남편의 원망이 공중에 날렸다.
짙은 모성은 시누이의 이야기에 목소리를 한껏 키웠다. 병원을 찾은 친척들 모두는 그 이야기에 크게 공감했다. 절절한 이야기 끝에 나오는 그 단호한 말도 나는 이미 들었다. 며느리의 산후조리가 기껍지 않은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몸 푼 여자의 서운함은 며느리의 한으로 한 겹 또 쌓였다.
집에 돌아온 날부터 4일 동안 남편은 어머니가 만든 미역국만 먹었다.
“내가 애기 낳은 것도 아닌데…….”
그 미역국을 나는 한 숟가락도 먹지 않았다. 먹기 싫었다. 데운 밥도 먹지 않았다. 밥을 지을 생각이 없으면 다른 것을 사다 먹었다. 남편이 4일간 먹고도 남은 미역국은 수챗구멍에 흘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