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 보 걷기

- 새로운 여행을 위하여

by 바람

하루 만 보는 걷자고 계획을 세웠다.


무엇을 하든 욕심을 부린다. 걷는 것도 남보다 더 빨리, 더 많이 걸으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무리하게 된다. 중간중간 무릎의 삐걱거림은 덤이다. 몸의 앞 쏠림 현상이 있다. 일단 무시한다. 그런 몸짓은 옆에 걷는 사람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 앞의 손잡이를 잡고 한껏 몸을 뒤로 젖히며 걷거나 시속 3킬로미터의 속도로 느릿느릿 휴대폰에 눈을 고정한 채 걷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들과 함께 걷는다. 그들로부터 위로를 받기도 하고, 혼자만의 기준으로 그들을 이기는 성취감을 맛보기도 한다.


나의 몸짓을 옆의 거울을 통해 확인한다. 나의 옆모습은 아름답지 않다. 구부정한 등과 허둥지둥 지쳐 나가떨어질 듯한 걸음걸이. 노력하지만, 반듯하고 활기찬 모습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매번 거울을 보는 것은 아니다. 걷다가 어딘가 불편할 때면 내 자세를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나의 전체적인 걸음걸이는 아직은 꽝이다.

젊은 사람들의 팽팽한 다리, 매끈한 허리 근육, 등의 완만한 곡선과 흔들림 없는 두 다리와 양팔의 일정한 변주, 일정한 보폭에 여유 있는 걸음까지, 감탄이 나온다. 옆 눈짓으로 속도계를 보니 시속 6.6킬로미터다. 이렇게 충분히 비교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운동을 한다. 멋지게 걷는 것이 목표는 아니다. 멋진 몸매를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오래 걸을 수 있기 위해서 걷는다.


첫 여행에서 하루 8시간을 걸으며 다녔다. 길 자체가 아름다웠다. 보이는 건물들과 우뚝 솟은 탑이, 그 탑에서 시간마다 울리던 종이, 그 종소리가 마음에서도 같이 울렸다. 바닥에 깔린 돌과 조화롭게 세워진 조각들이 발을 멈추게 했다. 옆을 스치는 이국의 관광객들과 그들의 탄성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가 걸음을 이끌었다. 강과 잘 어우러졌던 회색 머리 중년과 그 옆의 우람한 개, 잘 다듬어진 나무들과 그곳의 향기가 8시간씩 걸어도 지루하지 않게 했다. 30도가 넘는 더위와 높은 습도에 흠뻑 젖은 셔츠를 무시하며 걸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걷기의 두려움이 사라졌다. 어떻게든 걸을 수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약속 장소를 검색했더니 꽤 거리가 되는 곳이 지도에 뜬다. 인터넷 ‘길찾기’를 통해 거리와 시간을 확인하니 2.3킬로미터, 40분 거리다. 걸어서 다녀왔다. 다음 약속에서도 그 정도 거리가 검색되었다. 처음엔 의식하지 않았는데 만 보를 생각하고부터는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집에서 나와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장소는 대부분 그만큼의 거리로 나타났다. 다음엔 어째서 비슷한 거리일까 의문이 생겼다. 어느 통계에서 집과 약속 장소까지의 거리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것을 어렴풋이 보았던 것도 같다. 한 사람의 이동 경로, 행동반경을 추적했더니 1.5킬로미터에서 2킬로미터 이내에서 주로 활동하고, 약속을 잡고 생활하고 있다고 하더라는.


집에서 즐겨가는 도서관까지의 거리는 1.3킬로미터, 천팔백 보. 집에서 가까운 지하철역까지의 거리는 8백 미터, 천이백 보다. 이렇게 일상적으로 오가는 거리를 다 따져보면 6천 보. 하루의 묵은 먼지를 벗겨낼 겸 헬스클럽에 가서 러닝머신에 발을 올린다. 저절로 걸어진다. 안 걸으면 밑으로 모양 사납게 떨어지거나 다치거나 하니 발을 내딛는 수밖에 없다. 시속 6킬로미터로 40분을 걷는다. 오천 보. 이렇게 만 보가 끝났다. 집에서 오고 가는 걸음은 계산하지 않았어도. 만 보 걷기, 생각보다 쉽다.


옆에서 에어로빅이 한창이다. 터질 듯 울리는 음악 소리, 규칙적인 드럼의 리듬. 그것에 발맞추는 사람들의 현란한 스텝과 각을 잰 듯 좌우로 뻗는 팔 동작과 고갯짓. 유려한 몸짓이다. 쿵쿵 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박자를 맞추듯 오늘도 힘차게 걷는다. 만 보를 위해 그리고 새로운 여행을 위해. 고백하건대 여행 전까지 나는 의식하고서는 십 분도 안 걷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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