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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나무 Oct 22. 2021

나는 가을 나무가   되기로 했다

나는 나무를 사랑한다.

언제부터 내가 나무를 사랑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어쩌면 '나무'라는 제목의 글을 수업시간에 써서 선생님이 나의 글을 학교방송으로 전교생에게 읽어주셨던 열두 살 때부터인지도 모른다.


나는 첫 잎이 올라오는 봄의 나무가 좋아 봄 나무 아래서  청춘을 보냈다.

한없이 푸른 신록의 나무와 무성해서 세상을 지배할 듯한 한 여름의 나무를 사랑하며 젊음과 장년의 고비를 넘겼다.


며칠 전 9월의 칭다오 거리를 그저 헤매다 돌아다니다 지쳐서 집으로 돌아왔다.

칭다오 거리를 가득 채운 나무들에 홀려서였다.

어린 딸의 귀가 시간을 놓칠까 두려워하면서도 창창한 가을 햇살을 받고 늘어선 가로수 거리를 떠날 수 없었다.


그날 가을 나무에서 나를 보았다.

꽉 차고 짙푸른 나뭇잎이 아닌 물기 없이 말라가는 나뭇잎을 보면서 이제는 젊음이 사라진 나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느끼을 받았다. 이제는 젊음은 흔적으로 남고 머지않아 다가올 노년의 초입에 선 젊음의 생기가 사라져 바스락거리는 나의 모습을 가을나무에서 보았다. 연민이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니 메말라 바삭거리는 나뭇잎을 입고 있는 나무가 사랑스러워졌다.


문득 '가을나무'를 생각했다.

생기가 사라지고 메말라가는 나무이지만 아직은 온몸을 불태워 찬란한 단풍과 낙엽을 기다리는 시간을 보내는 나무,  풍성한 열매를 가득 매단 나무,  그리고 일 년을 걸쳐 자신을 지키고 지탱해준 나뭇잎을 보내고 겨울을 맞이하면서도 꿋꿋하게 겨울을 기다리는 나무, 자신의 몸에서 발생하는 소멸에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나무


나는 가을 나무가 되기로 했다.

브런치의 작가명을 가을나무로 변경했다.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가을나무로 살 수 있는 날이 많이 남아있기를 바라며 나는 가을나무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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