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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Sep 13. 2023

죽음의 무게

아주 어렸을 적 친할아버지의 입관을 지켜본 적 있어요. 죽음이라는 것조차도 제대로 모를 나이었죠. 할아버지는 평소 아주 건강한 분이셨어요. 그러던 할아버지가 어느날 부엌으로 나가던 중 갑자기 넘어져서 뇌출혈로 돌아가셨어요. 지금도 그날이 생생히 기억나요. 12월의 끝자락 눈보라가 세차게 휘날리던 추운 겨울이었어요. 땅은 꽝꽝 얼어붙어 곡괭이가 튕겨 나올 정도였고, 아빠와 친척분들은 눈바람과 맞서며 땅을 열심히 팠어요.


 그리고 새해 첫날, 신정에 쓰려고 빻아온 쌀가루는 제사 떡이 되어버렸죠. 어른들은 저희 부모님께 그러더라고요, “그래도 아버님 참 복 받게 돌아가셨어”라고요. 당시 어린 저는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사람이 죽었는데 복 받았다니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았죠. 하지만 성인이 된 지금에서야 그 말의 뜻을 알겠더라고요. 보통 연세가 있으면 지병으로 앓다가 고통스럽게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은 것에 비해 갑작스럽지만 그래도 고통 없이 건강하게 잘 살다 가셨다는 뜻이더라고요. 어쨌든 당시 할아버지의 죽음은 저에게 큰 충격이었어요. 피가 흥건한 모습, 눈을 뜨고 돌아가신 모습, 무엇보다 입관 전에 치러지는 과정을 보고 난 후 저는 며칠 밤을 꼬박 샜어요. 언젠가 저도 그 관속에 들어가게 된다고 상상하니 온 세상이 저를 향해 조여오듯 숨 막히고 너무 공포스러웠 거든요.  

  

할아버지의 시신을 관속에 안치하고 못을 박을 때 저의 공포는 극에 달해 달했어요. 얼마나 무서웠는지 저는 소리도 못 내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나요. 너무 어린 나이여서 죽음에 대한 이해도 없고, 그저 공포와 두려움만 가득한 순간이었어요.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후 저는 죽고 싶지 않다며 어머니에게 떼를 썼던 기억이 나요.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든 죽음을 피할 수 없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어머니의 대답에 죽음에 대한 저의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졌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그때부터 저를 강하게 키우셨던 것 같아요.      

세상에 태어났으면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어요. 하지만 지금은 잘 알고 있어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처럼 이제는 더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피하려고도 하지 않아요. 다만 가끔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조금 더 일상에 감사하게 되고 결코,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는 걸 알게 되니까요.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슨 일을 당할지 아무도 몰라요. 그렇기에 평범하지만 평온한 하루에 감사하고 또 잘 살아야 해요. 어쩌면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할지 몰라도 말이죠. 누구나 죽음은 피할 수 없어요. 하지만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잘 준비하느냐는 사람마다 달라요. 사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렵긴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세상에 태어난 이상 죽음을 외면할 수는 없어요.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이기 때문이죠. 행복한 삶이었던 불행한 삶이었던 세상에 태어나 몇십 년을 살았으면 신이 주신대로 명이 다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쩌면 인간의 도리이고 죽음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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