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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자유리 Jan 19. 2020

청춘은 지나가야 한다.

진짜 자기 계발서


"우와 정말요? 말도 안된다. 38살이요? 전 26살로 보입니다."
"학생. 나 이것좀 도와줘. 딱 우리 아들뻘이네."
(사실 앞에 계신 분이 누나뻘입니다만..)
"완전 사기캐다. 거짓말."

나는 평소 동안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뭔 자신감인가?)

동안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치 나 혼자 늙지 않고 서 있는 것처럼 기분이 묘해진다.

사실 이런 반응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젊어지기를 원한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새 옷을 사고, 머리를 자르고, 

한결 더 나은 나를 위해 피부관리도 받기도 한다. 







화장하는 남자는 더 이상 어색한 단어가 아니며, 

나의 아름다움을 꾸미는 것은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게는 

즐거운 취향의 단계로 변한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나는 20대의 얼굴(?)을 가진만큼, 20대의 불안전한 욕망 또한  

한 움큼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현대인들은 정말 동안이 됐죠. 사실 성형을 할 필요가 없죠...깜짝 놀랄지경이에요.

왜 그럴까요? 청춘을 계속 연장하겠다는 욕망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성숙하지 않는 겁니다. 그렇다보니 한편으로는 청춘을 연장하려는 욕망을 불태우지만 한편으로는 100세 인생이 너무 두렵죠. 내가 50대 인데 30대로 보인다, 그러면 내 욕망은 뭐에요? 30대의 욕망을 갖고 있는 것이죠.  


<고미숙. 청춘으로부터의 해방. 몸으로부터의 자유.>







청춘은 즐거움이고, 상징이며, 봄이다. 

말 그대로 좋은 것이다.  

우리도 한때는 그런 시간을 보냈고, 뜨거웠던 그런 날들을 보냈다.

하지만 청춘은 불안하고, 초조하며, 흔들리는 무엇이다.

그래서 청춘은 반드시 끝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우리는 끝없는 청춘만을 원하고 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불과 몇십년전만해도 끊임없는 노동을 강요 받았.

믿기지 않겠지만 우리의 부모님은 90년대에 주 6일의 노동의 삶을 자연스레 해 나가셨다.

시간이 흘러 노동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주6일에서 주5일이 그리고 이제는 퇴근후의 삶을 고민하는 

주4일의 움직임도 심심치 않게 보이고 있다.



그런데 노동이 사라지는 그 자리에 우리는 얼마나 더 성숙해졌을까?

우리의 숙고 담긴 성숙 대신 끊임없는 소비를 채우기에 바빳다.

비워진 그 시간을 우리는 인터넷을 뒤지고, 넷플릭스를 보고, 포르노를 보고, 

이 모든 디지털 프로덕트에 시간을 허비하느라 더 바쁘게 되었다.

자본주의는 노동의 빈자리를 소비라는 생산으로 이끌어냈다.

그렇게 우리는 제대로 쉬지 못하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그렇게 청년의 삶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성숙해야 할 어른의 시기를 유예하고, 자꾸 몸의 나이가 들어가지만, 우리는 애써 청년의 그 시기를 독립하지 않기를 바란다. 

한번은 커피숍에서 할머니가 되어버린 엄마와 아저씨가 되어버린 아들의 대화를 본의아니게 엿들은 적이 있다. (사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안들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끊임없이 걱정하였고,늙은 아들은 어머니의 그 말을 애써 외면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40은 넘어보이는 아들은 그녀 앞에서는 20살 청년 그 자체가 되었다.







속성은 그런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말하는 탐욕적인 본성은 이런곳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20,30대의 고달픔, 그 독립할 수 없는 아픔은 부모에게 유예를 낳았다.

자식은 진작 넘어서야 했을 그 울타리를 애써 넘어서지 못했고, 나이만 들어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자본주의가 원하는 그림처럼, 그렇게 늙어버린 청춘이 되었다. 







청춘은 지나가고 싶었다.

봄처럼 발현하고, 여름처럼 뜨거웠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그런 청춘의 일면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강조했다.

시간을 통과하여, 멋지게 늙어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오면

우리는 그 앞에서 우리가 나이가 들어감을 서글퍼하고, 때론 외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정말 슬픈일일까?

아니면 우리가 진짜 슬퍼해야 할 일은 나이가 먹는 사실이 아니라,

지나가야 할 나이에 깨어나가지 못한채, 머무르고 있는 그 자체이진 않을까?

결국 두려워야 할 것은 주체적인 삶 그 자체 이지 않을까?






가끔 젊은 나이를 권력으로 착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렇지만 숙고하지 않은 젊음은 내겐 하등 부럽지 않은 대상이다.

모두가 늙어가도 비슷하게 늙어가는 것이 아니다.

가을을 맞이하며 열매를 맺어내는 결실을 이끄는 삶은 

항상 주어진 과정을 숙고하고, 

수없이 실패를 경험했던 이들에게만 주어짐을 잘 알기 때문이다.




당신이 청춘을 보냈다면, 청춘이 있는 젊음 자체에 부러운 시선을 거둘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현재 내가 생성하는 스토리에 어떤 계절이 담겨져 있는지를 바라보기를..

봄이가고, 여름이 지나도 이 스토리가 있는 한,

당신이 맺어야 할 그 열매가 그 속에 있음을 깨닫기를.

오직 내가 가진 스토리에서 우리는 나이 들어감에 대한 불안을 떨쳐내는

단초를 찾을 수 있음을 기억하라.

가을이 와야 열매가 맺는다.

우리에게는 그런 가을이 와야 한다.

그리고 그 가을은 오직 내가 만난 세상과 경험, 수 많은 나만의 실패에서만 밀려온다.






나는 이제 곧 40이 된다.

80까지의 삶을 마친다면, 40은 내 인생의 가을의 시작을 의미하며,

공자가 말한 불혹의 삶이 시작된다.

모든 유혹을 떨쳐버릴 수 있고, 내 몸의 욕망을 이길 수 있는 

그런 계절이 내게 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을이 기다려진다.

나는 나의 열매를 그렇게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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