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나를 설명하는 단어들, 나의 정체성
브런치 작가 프로필을 수정하려고 들어갔다가도 별다른 수확 없이 페이지를 나갈 때가 많다. '나'에 관한 짧을 소개글을 작성하는 공간이기에 말 그대로 '나'를 설명하는 단어들로 채워 넣으니 바꿀 새도 없이 늘 같은 단어로 끝나는 것이다. 아무리 수정하고 싶어도, 나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은 단어들을 지울 수 없으니 별다른 소득 없이 그대로 저장을 누른다.
내가 (구)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결혼을 한 이후다. 결혼을 하면서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고, 공감받을 수 없고, 무언가 억울하고 불합리한 것 같으나 항의할 수도 없는 일들이 배출되지 못하고 마음 한편에 감정과 함께 고스란히 쌓여갔다. 늘 해우소로 글을 택했던 나이기에 자연스럽게 이전에 만들어둔 브런치에 들어왔고 결혼에 관해 미뤄뒀던 생각과 마음을 꺼내 글로 써 내려갔다. 그렇게 작가 승인이 되었고 전투적으로 결혼에 대해 글을 썼다.
결혼한 지 햇수로 6년 차다. 그 말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부르기 시작한 지 6년 차가 되었다는 뜻이다. 신대원 입학은 8년, 사역자로서는 7년이 되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햇수로 5년 차다. 이와 같은 정체성을 가지고 부지런히 달려온 나는 작년 하나의 정체성을 더 얻었다. 바로 1년 차 엄마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 위해서는 이전에 했던 것을 잘 마무리 지어야 한다. 새로운 주제로 글을 써나가기에 앞서, 앞서 쓴 글들을 하나로 모아 정리하기로 했다. 지난 5년 간 띄엄띄엄 썼던 글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나는 나 자신의 정체성을 끝없이 되새기며 잊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기반을 둔 사람들, 내가 기반을 둔 종교와 이념, 나 스스로 선택한 정체성까지. 지난 5년 간의 챕터 하나를 마무리하면서 나의 여러 정체성에 대해 정리해본다.
1. 결혼한 사람
작년 여름, 시부모님과 여행을 하는 중에 어머님이 "결혼을 일찍 했는데 어떠냐"라고 물으셨다. 나의 대답은 중립적이었다.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안정적일 수 있어서 좋긴 했지만 그만큼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은 많이 못한 것 같아요." 사실이다. 나는 결혼을 한 이후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다 경험하고 있다. 누구보다 재미있고 안정적이게 결혼생활을 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이제는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과 놀고 여행을 가는 것이 피로하게 느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혼을 통해 나는 가장 편안하고 안정적인 사람과 일상을 얻었다.
결혼 1년 차에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결혼한 사람'으로서의 책임감과 제한 요소들이 벅차고 힘들고 답답하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벌써 6년 차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서 가족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책임에 익숙해졌고, 현실을 받아들여서 나를 제한하는 요소들을 어떻게 처리하며 나의 삶을 지속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어느 정도 생겼다.
사실 이제 '결혼' 자체는 나의 주된 관심사에서 벗어났다. 그보다 고민할 것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름 앞에 당연히 붙는 성처럼, 다른 정체성 앞에 당연히 붙는 수식어쯤으로 여기면 되려나?
2. 페미니스트
지난 5년 간 가장 에너지를 쓰지 못한 정체성의 영역이다. 이쯤 되면 입으로만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건 아닐까 싶어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한 실정이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와 환경에 그대로 따라가지 않으려면, 하나라도 딴지를 걸어 부지런히 생각하려면 필시 공부가 기초가 되어야 하는데, 이에 시간을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자꾸만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정체성 중 하나다. 다른 모든 정체성에 영향을 줄 만큼 중요한 정체성임에도 왜 자꾸 갈고닦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후순위로 밀어버릴까. 그 이유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찾아 삶의 태도를 개선해야 할 때다. 키를 잡고 분명한 방향을 설정해 항해하는 것과 키를 놓아버린 채 이리저리 물살에 떠밀려 가는 것은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책장에 수북이 쌓인 페미니즘 관련 서적들에 다시 손을 대고 때를 묻힐 시간이 도래했다.
3. 사역자
반대로 지난 5년 간 가장 에너지를 많이 쓴 정체성의 영역이다. 확실히 직업으로 연결되고 수입으로 연결되고 소명으로 연결되어 그런 걸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내뱉는 '나 정말 열심히 살았어!'라는 말의 대다수엔 사역이 포함되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열심히 고수했던 정체성은 외부의 것들로 인해 가장 많이 흔들리는 정체성이다. 이 정체성은 사실 사람에게서 기인한 것이 아님에도 여전히 사람의 한 마디에 좌지우지되는 나를 볼 때마다 마음을 다잡는다. 사람은 사람일 뿐이고, 사람의 것은 사람의 것일 뿐이다. 전투력을 상승시키는 것보다 여유를 가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사역자라는 정체성의 뿌리가 되는 정체성은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로 한다.
4. 글 쓰는 사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의 정체성이자 가장 어려워하는 나의 정체성이고, 가장 자신 있는 정체성이자 가장 자신 없는 정체성이다. 글을 쓰는 시간은 나를 충전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바닥까지 끌어내리며 처참히 드러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것은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뿐 아니라 능력과 재능도 마찬가지다. 늘 두렵지만 그렇다고 그만둘 수는 없다. 부담스럽지만 그럼에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을 때가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다만, 이제는 '나'에 관한 글의 비중을 줄이고 그 외의 글을 늘려야 할 때다. 이 또한 공부가 필요하고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야만 하는 시간이 필요하기에 쉽지 않다. 그러나 해내야 스스로 만족할 만큼의 레벨-업이 가능하다. 글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나이가 들수록 무르익기 때문이다. 20대인 나의 글과 30대인 나의 글이 다른 것처럼 40대인 나의 글, 50대인 나의 글도 더 무르익어 지금과는 다른, 더 좋은 글이 되었으면 한다.
5. 엄마
지금 가장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 정체성이다. 이제 막 생겨난 정체성이기 때문에 아직 서툴고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하나하나 어떻게든 해나가고는 있지만 앞으로 갈 길이 멀다. 정신을 쏙 빼놓을 만큼 쉽지 않지만 그만큼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는 정체성이다.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것, 이제까지 알지 못한 것, 이제까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작고 귀여운 사람과 함께 한꺼번에 밀려들어 행복감과 기쁨 또한 만만치 않다.
눈에서 물이 또륵 떨어지던 신생아 시기를 지나고 나서 남편과 간혹 이야기한다. "안 낳았으면 어쩔 뻔했어?"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이자 최대 부담이자 최대 행복과 기쁨인 정체성은 '엄마'다.
나의 삶을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유지하게 만드는 정체성은 결국 위와 같은 다섯 가지 나의 모습이다. 이 모습이 잔잔하게 균형을 이룰 때 나의 일상이 평온하게 흘러간다. 이 중에서 어떤 것이라도 하나가 무너지면 생각보다 타격이 크다. 그리고 타격을 입었을 때 회복을 위해 조용히 나를 매만지는 것은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다. 아이러니하게도 5가지 중 무엇 하나가 기울고 무너지고 힘에 부칠 때 슬그머니 책상에 앉아 글을 쓴다.
그러니 어느 하나 타격을 입어도 크게 동요하지는 않기로 한다. 어느 한 가지가 중심을 잃고 무너진다고 해도 나에게는 또 다른 네 개의 정체성이 있고, 그것으로 관계를 맺는 가까운 사람들이 있고, 이제까지 해온 루틴이 있기 때문이다. 툴툴 털어 회복하고 다시 다채로운 나의 삶을 위해 앞으로 나가기로 한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하루하루를 후회 없이 채워 넣어 레벨-업에 레벨-업을 거듭하여 결국 모든 영역의 고수가 될 그날을 꿈꾸면서.
치열하게 정체성에 관하여 고민하며 쓴 20대 글의 에필로그는 앞자리가 바뀌어 새롭게 시작하는 다짐으로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