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존재를 생각하며
모두에게는 자신의 삶에 대한 기준이 있습니다. 살면서 빈번하게 만나는 선택과 결정의 순간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에 따라 행하게 됩니다. 혹자에게는 그것이 ‘좌우명’이라는 형태로 존재할 수도 있고, 부딪힌 상황의 한가운데에서 떠오르는 누군가의 얼굴로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기독교인이자 사역자인 저에게 이는 말씀의 한 구절입니다. 한창 젊은 때를 살아가고 있는 제가, 어떤 기로에 섰을 때 묵상하며 되새기는 말씀은 전도서 11장 9-10절 말씀입니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그런즉 근심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으로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청년의 때가 다 헛되니라”(개역개정)
평소 그저 읽고 넘겼던 전도서 말씀이 대학생이었던 제 삶에 깊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일반고에 진학해 공부를 하고, 수학능력시험을 치르고, 대학에 입학했던 저는 스스로 정도(正道)를 걸어온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이들과 똑같은 교육과정을 밟았고 눈에 튀는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수동적인’ 모습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드라마를 좋아해서 고등학교 3년 내내 드라마를 제작하는 PD가 되고 싶다고 말했지만 결국 진학하게 된 학교와 학과는 부모님이 선택했던 신학교의 사회복지학과였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학교였기 때문에 합격자 발표 날조차 늦잠을 자고 있던 저 대신 부모님이 직접 합격자 확인을 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러나 별 말없이 학교에 입학했고 또다시 ‘대학생’으로서 주어진 것들을 해내던 차에 전도서 11장 9-10절의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신학과도 아니었고 성경공부도 제대로 해본 적 없던 저에게 전도서의 말씀은 글자 그대로 묵상되었습니다. 이제 막 ‘청년’이 된 저에게 청년의 때, 어린 때를 기뻐하라는 것과 내 마음에 원하는 길과 내 눈에 보이는 것을 행하라는 것, 그러나 이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심판을 하시리라는 말씀은 평소처럼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까만 글씨가 아니었습니다. 고등학교와 달리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내야 하는 환경에 놓였고 나의 일상을 직접 채워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고작 몇 달 전까지 하고 있던 진로에 관한 고민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어찌할 바를 몰라하던 저에게 전도서의 말씀은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대학 생활 동안 저는 충분히 청년의 때를 기뻐하고 즐겼습니다. 사회복지학 도로서 주어진 학업을 잘 감당했고 낙도선교회라는 동아리를 통해 방학 때마다 일주일 씩 섬과 오지로 선교를 갔습니다. 또한 대학교 신입생 때부터 3년간 총여학생회에서 활동했고 3학년 때는 총여학생회장이 되어 직접 학생회를 이끌었습니다. 여가시간에 좋아하는 책과 드라마도 손에서 놓지 않았으며 새로이 알게 된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쌓았습니다. 동시에 ‘내 마음에 원하는 길과 눈에 보이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하여 기도하고 고민했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심판만이 두려워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에 관하여 하나님께, 그리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었습니다.
대학생이었던 저의 눈에 보인 이들은 ‘청소년’이었습니다. 고작 한 해가 지났기 때문에 더 이상 청소년이 아니었던 저에게는 청소년기 당시의 ‘나’와 ‘친구들’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을 닮은 현재의 청소년들이 보였습니다. 정해진 대로 살아가느라 주체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청소년, 하고자 하는 꿈이 명확하지만 현실이 허락하지 않아 실망하는 청소년, 어른들에게 상처 받고 그들과 멀어지는 청소년, 가정 안에서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청소년,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살아가는 청소년. 그들의 모습은 나의 모습이었고 동시에 가까운 친구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알지 못하고 헤맬 때, 앞서 걸어본 후 이끌어줄 수 있는 ‘안내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 후로 캠핑, 멘토링 등 청소년들을 만날 수 있는 다양한 봉사활동을 했고, 학교 내 개설된 청소년 관련 과목을 모두 들었습니다. 교회에서도 중고등부 교사로 지원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대학교에 입학한 지난 2011년 이후, 청소년 친구들과 함께 상호 교제하지 않은 시간이 없습니다. 이 또한 현재에는 감사함으로 다가옵니다.
많은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그들에게 제대로 된 안내자가 되기 위해서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복지를 공부하며 습득한 지식을 통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파악하고 가능한 자원을 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지만 그것만으로는 건강한 삶을 향유하기에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전하고 알려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를 위해 스스로 먼저 준비되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이를 놓고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네 상황이 여의치 않고 너에게 아무것도 없어도, 내가 너의 반석이다.’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와 함께 또다시 전도서 11장 9-10절을 떠올리게 하셨습니다. 결국 저는 구체적으로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대학교 4학년 때에 마음의 결단을 내렸고 신학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신학대학원에 진학하여 학업에 힘을 쏟는 한 편, 청소년부 전도사로서 아이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교육하는 동시에 그들의 삶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전도서 11장 9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면서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는 것은 결국 네 눈에 보이는 어떤 것이 ‘애통’하느냐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한국기독교교육연구소에서 발행한 청소년 진로탐색 교재인 <스윗스팟>에서는 진로를 찾고자 하는 청소년들에게 ‘내가 가진 애통함은 무엇인가?’에 관하여 고민하게 합니다. 죄로 인해 깨진 이 세상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슬퍼하고 계실 하나님을 생각할 때 '나는 과연 어디에,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상황에, 어떤 분야에 애통함을 느끼고 있는가'를 묻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애통함을 느끼고 있는 곳이 바로 내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회복시켜야 할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전도서의 말씀을 통해서 저는 끊임없이 ‘나는 무엇을 애통해하는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청소년’에게 애통함을 느꼈고 그들이 회복되는 것을 목표로 삼아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는 사이 제 삶에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했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뤘습니다. 현재 사역하고 있는 교회와 교제하고 있는 아이들과 계속 함께 할 수 없는 이유와 상황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이전과 같은 진로 고민에 빠졌습니다. 내가 가야 할 곳이 지금과 같이 청소년들을 만나는 자리인지, 혹은 또 다른 사역의 자리인지, 사회복지의 자리인지, 글 쓰는 일을 하는 자리인지 고민했습니다. 내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갈 자리가 어느 곳인지 다시 전도서 11장의 말씀을 상기하며 기도했고 내 눈에 보이는 애통함이 무엇인지 눈에 불을 켜고 찾았습니다. 솔직하게는 절박했습니다. 마음이 정돈되지 않은 상태에서 막연하게 다른 교회에 이력서를 넣어야 하는 것인가 생각했습니다.
그 가운데 제 눈에 애통했던 것은 ‘사역자로서 나 자신’이었습니다. 앞으로의 나의 모습을 ‘사역자’로 그려나갈 때 제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지난 3년간 청소년부를 담당하며 사역을 하는 중에 떠나간 아이들을 생각하면 죄책감이 들었고 다양한 상황에서 발견한 나의 연약함을 직면할 때면 어느 교회에서 사역을 하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두렵기도 했습니다. 스스로를 믿지 못해 두려웠고 그 두려움이 나를 사역자로 세우신 분도, 나를 통해 일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잊게 했습니다. 두려움은 이내 구체적인 걱정거리들로 나타났습니다. 재주가 많지 않은 내가 사역의 자리에서 잘 버틸 수 있을까, 내가 말씀을 전하는 자리를 이용하지는 않을까, 수련 목회자 과정을 준비한다고 해도 혹시 그 과정 중에 임신을 하면 어떡하나, 현재의 교회는 임신을 하면 무조건 사역을 그만둬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앞으로의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에너지도 넘치는 이때에 집에서 아이를 키우다 시간을 다 보내는 것은 아닐까. 이와 같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근심으로 가득한 저에게 ‘근심을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해라, 청년의 때가 헛되다’는 전도서의 말씀이 또다시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었습니다. 현재 내 눈에 가장 애통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역자로서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일어나지 않은 일에 근심하는 일을 그만두고 계속해서 사역의 현장에 남기로 결심했습니다.
앞으로의 사역에 있어 저에게는 개인의 영역에서 풀어가야 할 숙제가 많습니다. 아직 많은 배움이 필요한 젊은 사역자로서, 다음 세대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역자로서, 스스로를 애통하게 여기는 사역자로서, 앞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을 이루어야 할 크리스천으로서, 그리고 여자 사역자로서 삶에서 끌어안고 있는 질문들을 해결해가야 합니다. 바라기는 개인의 영역에서 고군분투하는 질문과 그로 인해 얻은 해답들이 교회가 품은 여러 비전과 고민들에 맞닿아 상호작용하기를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하여 제 눈에 새로운 것들이 보이고 그 가운데 애통한 마음을 찾아 그 마음이 원하는 길로 가기를 원합니다.
때때마다 제 삶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때면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나 자신을 소개하는 글을 적어 내려가다 보니 결국 적절한 때에 눈을 열어 보게 하시고, 애통한 마음을 갖게 하시고, 그 마음이 원하는 길로 가게 하신 하나님의 존재가 내 삶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나를 자녀 삼아주셨고 말씀을 전하고 더욱이는 사랑을 전하는 사역자로 사용하신다는 것이 문득 감격으로 다가옵니다. 이제까지 나의 삶에서 성실하게 일하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나의 연약함과 현실의 문제들조차 선으로 바꾸셔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가장 적합한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