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에서 결혼한 여성 사역자가 된다는 것
나는 결혼을 준비하다가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결혼을 한 후도 아니고, 아이를 낳은 후도 아니고, 단지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나에게 생각의 전환을 가져다준,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말이다.
결혼을 준비하며 무엇이 가장 어려웠느냐고 물으면 단연 청첩장을 돌리는 일이었다. 만나서 줘야 하는 사람, 모바일로 보내도 되는 사람, 그리고 청첩장을 전달하지 않아도 될 사람을 가르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고 어려운 일이었다. 가뜩이나 해야 할 것들에 치여 정신을 못 차리는데 사람들과 만날 약속을 잡고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가끔은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그래도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지, 라는 생각에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정말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일일이 찾아봬야 하는 어른들, 대부분은 목사님들이었다. 오빠도 나도 어렸을 때부터 자라난 교회가 있고, 사역을 하고 있는 교회가 있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계기로 연을 맺게 된 목사님들이 꽤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사역자 부부가 될 우리는 찾아봬야 할 목사님들의 명단을 추렸고 없는 시간을 쪼개 교회로 찾아갔다. 안부 인사를 나누고, 청첩장을 전해드리고, 함께 다과를 하며 보낸 시간이 전부 다 힘들었던 것은 아니다. 어쨌든 우리의 은사님이라고 생각하고 찾아뵈니, 조금 긴장은 돼도 가는 발걸음이 무겁지는 않았다.
한 목사님을 찾아뵀다. 당시에 오빠와 내가 꼭 찾아봬야 했던, 굉장히 중요한 분이었다. 청첩장을 전해드리러 갔던, 당시의 상황을 세밀하게 쓰면 참 좋겠지만 괜히 부정적인 언어로 표현하게 될게 뻔하므로 정확하게 내가 들은 말과 나의 마음만을 이야기하고 싶다. 대화가 이어지며 순간순간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라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지만 예의 그 웃는 얼굴로 리액션을 했다. 나는 어른들 앞에서 예의를 지키도록 지겹게 훈련된 사람이었기 때문에 어떠한 말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대화를 했다. 그러다 대화의 말미에, 그 목사님은 웃으면서 오빠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목사 되겠다는 여자랑 결혼하면 피곤하다, 너~?"
그 순간 내가 어떤 표정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빠르게 그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머릿속이 복잡했고 내가 이 말을 듣고 기분이 나쁘고 억울하고 눈물이 터질 것 같은 것이 이상한 건가, 그렇게 생각했다. 교회에서 나와 다른 목사님을 또 찾아가면서도 계속 그 말이 맴돌았다. 목사가 되겠다는 여자랑 결혼하면 피곤하다, 목사가 되겠다는 여자, 피곤하다.
그날 밤, 나는 전화기를 붙들고 오빠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결혼을 다 결정한 마당에 청첩장을 들고 찾아간 사람한테, 앞으로 열심히 사역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무슨 경우냐고 애꿎은 오빠에게 따졌다. 나에게는 그 말이 마치 내가 오빠의 사역과 인생에 방해가 된다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았고, 내가 한순간에 초면인 사람에게 '목사가 되겠다는 피곤한 여자'로 정의된 것이 억울했다. 자기들이 받은 소명만 소명이고, 내가 받은 소명은 소명이 아닌가? 사역자로서의 나를 가장 잘 아는 우리 교회 목사님은 내가 사역을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꼭 목사 안수를 받으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사람은 대체 뭘 안다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지? 이 말을 한 의도가 뭐지? 오빠한테 결혼을 하지 말라고 하는 건가, 아니면 내가 사역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라고 하는 건가? 내가 과연 다른 직업을 가졌어도 이런 말을 들었을까? 내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런데 아마도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목사님은 아무 생각 없이, 별생각 없이, 그냥 툭, 그 말을 던졌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를 정말 폭발하게 했던 것은 오빠의 모습이었다. 그 자리에서 그 말을 함께 들은 오빠는, 그날 밤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반나절이 지나도록 한 문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완전히 멈춰버린 나와는 다르게, 오빠는 그 날의 해야 할 일을 무사히 끝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에서 나는 울분이 터져 나왔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 오빠는 사과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본인은 '이건 뭔 개소리야.'라는 생각으로 그냥 넘겼다고 했다. 이건 그냥 '내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될 소리'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 말 한마디가 나에게 이렇게 큰 상처를 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내가 그냥 그 '개소리'를 '개소리'로 듣고 넘겼을 거라고 오빠는 생각했다. 그때 생각했다. 오빠와 나는 정말 사랑하지만, 대화도 잘 통하지만, 어딘가 다르다. 이건 단순히 '개소리를 대처하는 자세'의 차이가 아니다. 무언가 설명하기 어려운 간극이 있었다. 특히 교회 안에서, 사역자라는 정체성의 사이에서 우리는 뭔가 달랐다.
사실 그 날 뿐만이 아니었다. 결혼을 준비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스스로 조절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따로 사역한다고? 왜? 남편 교회에 가서 도와주면 좋은데."
"네가 굳이 안수받을 이유 뭐 있어. 남편만 받으면 되지."
"이제껏 봤는데, 사모가 잘났다 하는 목사님들은 대개 목회가 잘 안 풀리더라."
"전도사님 결혼하면 남편 전도사님 교회로 가는 거예요?"
"나중에 사모님이 되려면 이런 건 알아야지."
"사모님이 같이 안 오면 받아줄 교회가 어디 있어?"
"남편이 따로 사역하는 게 괜찮데? 정말로?"
가장 이상했던 것은 오빠와 내가 똑같이 '전도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음에도 교회 안에서 오빠는 여전히 전도사로 불리고 나는 '사모'로 불린다는 사실이었다. 오빠가 사역하고 있는 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내가 전도사로 있는 우리 교회에서조차 나를 '사모'로 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교회 안에서 '사모'라는 직분은 쉽게 정의하기가 힘들다. '사모'가 무엇이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나조차 말문이 막힌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나를 '사모'로 칭하며 했던 저 말들에는 나를 남편의 사역을 돕는 '조력자'로 여기는 시각이 강하게 들어있었다.
교회 안에서 목사의 아내가 사모로 불린다. 목사의 아내는 목사와 똑같은 교역자이기는 하지만 목사는 아니다. 성도, 집사, 권사와 같은 직분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사모라는 호칭으로 불린다. 나에게는 이들이 교회 안에서 주변인으로 느껴진다. 교단에 정식으로 등록된 사역자도 아니고, 교회 공동체에 속한 채 케어를 받는 성도도 아니다. 물론 부부가 뜻이 맞고 함께 서로의 역할을 규정하여 목회를 잘해나가는(때로는 그런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사모의 역할은 목사의 '조력자'이다. 그리고 이것이 교회 안에서 보편적인 인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한다. 목사의 아내는 자연히 목사의 사역을 돕는 조력자가 된 것이다. 이제까지 대부분의 목사가 남자였기 때문에 이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이들은 자연스럽게 '목사'가 되겠다는 여자 전도사에게도 '사모'라는 호칭을 붙인다.
내가 제기하는 문제는 도대체 왜 멀쩡히 사역을 하고 있는, '목사'가 되겠다고 하는 나를 남편의 조력자 인양 이야기하냐는 것이다. 나와 남편은 서로의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지금도 서로의 조력자이다. 나는 남편의 사역에 도움이 되고자 하고, 남편은 나의 사역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각자가 쓴 설교를 서로에게 들려주며 피드백을 하기도 하고, 좋은 자료와 책들을 공유하기도 한다. 사역을 하는 데 있어 고민이 되는 부분을 서로 나누고 함께 기도한다. 우리는 서로의 사역에 좋은 조력자이고, 함께 사역을 해나가는 동역자다. 결혼을 결심하기 전과 후에 그런 우리의 관계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결혼을 한 후에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결혼을 결심한 후에,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나를 주체적인 사역자가 아닌 남편의 조력자로 보는 통에 이유 모를 답답함이 마음속에 가득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무언가 속이 꽉 막힌 듯 답답했던 나는 페미니즘과 관련된 책을 빌려 읽고 사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 생각의 경로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생존 본능이었다.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이 무엇인가. 페미니즘이라는 게 대체 무엇인가. 내가 듣는 이 말들에 나만 화가 나는 것인가. 내가 이런 말을 듣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내가 페미니스트가 맞는가. 아니라면 도대체 페미니스트가 무엇인가. 나는 뼛속까지 기독교인인데, 이런 내가 페미니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질문의 질문이 꼬리를 물며 책장을 넘기게 만들었고, 결국 나는 내가 페미니스트인 것을 스스로 인정했다. 나의 성향상 활동적인 페미니스트가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주변 사람들에게는 영향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과격하게 모든 것을 뒤엎어야 한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바꿔야 할 것은 바꾸고 고쳐야 할 것은 고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문제는 생각보다 내가 너무 다쳤다는 것이다. 혹자는 바꿔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망설이지 말고 지금 가던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서 망설이고 있다. 앞서 내가 적어 놓은 말들은 결혼을 준비하여 들었던 말들 중 기억나는 것을 적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실제로 관심을 기울이니 '나는 고작 파트타임 사역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들을 듣고, 이런 취급을 당하는구나'라는 마음이 불쑥불쑥 솟아올랐다. 내가 과연 풀타임이 되면 이보다 덜할까? 더 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남편과 내가 평화로울 수 있을까? 내가 목사가 되는 일이 과연 맞는 일일까? 그보다 먼저 '여자라서' 이런 상처 받은 내가 아직도 목사가 되고 싶은가?
한 발자국 더 나아가려면, 어쨌든 품은 상처를 털고 일어나야 하는데 어쩐지 이 상처를 터는 것이 쉽지 않다. 그리고 내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어쩐지 속상하고 억울하다. 내가 남자였더라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점점 더 많이 들려오는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또 한 번 상처 받고, 고민한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