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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기 이전에 우리들도 '어린이'였으니까

영화 '우리들'

by Ellie

어릴 적 난 소심하고 낯을 가려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일이 늘 고역이었다. 그래서 새 학기가 시작되는 봄이 싫었다. 새로운 학교나 선생님에 적응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일이 어린 내게 큰 시련이었으니까. 운동을 잘하지도 않았고, 말을 재밌게 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키가 컸던 나는 함께 앉는 짝이 없어 쉬는 시간에 혼자 책상에 앉아 있기도 했다. 10분 쉬는 시간 동안의 어색함이 싫어 엎드려 자는 척을 하기도 했다.


새 학기 초면 늘 친구가 고팠다. 함께 밥 먹을 친구, 쉬는 시간에 같이 화장실 다닐 친구, 학교 끝나고 함께 학원에 갈 친구, 주말에 같이 놀러 갈 친구, 용건 없이도 문득 전화를 걸 수 있는 친구, 소풍이며 수학여행 때 같이 다닐 친구 등 늘 친구가 필요했다. 사실 이 모든 걸 함께 할 단 한 명의 친구면 족하기도 했다. 일상을 함께하고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도 털어놓을 수 있는 1명의 친구만 있다면 세상 무엇도 부럽지 않았다. 그 시절 친구는 세상의 전부였다.


문득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른 건 오늘 '어린이날' 특유의 왁자함 때문이었다. 우리 집 어린이들인 조카 1,2호와 함께 1박 2일 동안 영화관이며 쇼핑몰을 들러 왁자지껄한 시간을 보냈다. 시끄럽게 웃고 떠드는 아이들 속에서 머뭇거리는 아이들, 무리에 섞이고 싶어서 눈치 보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보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늘 대장 노릇을 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누구와도 아무렇지 않게 잘 섞이는 아이들도 있고, 그 무리에 섞이고 싶어 언저리에서 눈치 보는 친구도 있기 마련이다.



영화 '우리들'은 초등학생 '선'이 주인공이다. 선이는 조용하지만 다정하고 눈치를 많이 보는 아이다. 언제나 학교에서 외톨이로 지내던 '선'이 홀로 교실에 남아있던 방학실 날 전학생 '지아'를 만나게 되고 서로의 비밀을 나누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순식간에 세상 누구보다 친한 친구 사이가 된다. 늘 외톨이었던 선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장 반짝거리는 여름을 보내게 된다.



어느덧 개학을 하게 되고 학교에서 만난 지아는 어쩐지 선에게 예전 같지 않은 태도로 대한다. 냉랭하고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는 지아는 심지어 선을 따돌리던 다른 무리의 친구의 편에 서서 선을 외면하기 시작한다. 처음으로 느껴 본 친구와의 따뜻한 관계를 잃고 싶지 않은 선은 관계를 회복해보려고 하다 지아의 비밀을 폭로해버리고 말고, 선과 지아는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힌다.



영화는 흔히들 드라마나 영화에서 접하듯이 대단한 '악역'을 등장시키거나 왕따나 갈등을 자극적으로 그리지 않아 더 아프게 다가온다. 그 시절 우리는 조금씩 서툴고, 그래서 상처를 주고받는다. 말보다는 작은 표정 변화, 어색한 침묵, 돌아보지 않는 뒷모습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조카와 함께 따뜻한 시간을 보냈던 오늘, 따뜻함 속에 숨어 있는 작고 조용한 외로움을 다시 만났다. 아마도 선이처럼 무조건적인 내 편이 되어줄 단 한 명의 친구를 애타게 찾던 어린 날의 내가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다. 영화 '우리들'은 어린 시절의 나와 다시 마주하는 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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