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봐, 이게 내가 좋아하는 거야.
내 글쓰기는 기록에서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기록을 시작했을까?
잊어버릴까 봐.
중학교 2학년 때인가? 점심시간에 친구들이 칠판에 해놓은 낙서를 보았다. 생전 처음 보는 감각적인 말이라 굉장히 큰 인상을 받았는데, 다음날이 되니까 그 말이 정확히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나더라. 그때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좋은 말이어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는구나."
너무 큰 충격이라서 그 날, 문구점에 가서 작은 수첩을 하나 샀다. 그리고 눈에 띄거나 귀에 꽂히는 말들을 모조리 메모했다. 덕분에 좋은 말들을 오래도록 음미할 수 있었다. 그때 그 친구의 말도 더 잊어버릴까 봐 얼른 적어두었다. 아마 이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동화 속 공주처럼 사랑을 하다니.' 표현력이 정말 대단하고 느꼈다. 어떻게 이런 비유를 하지?
사진도 마찬가지였다. 그 순간 너무 예쁜 풍경이 내 눈 앞에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나도 그 순간을 잊어버릴 것이고, 보여주고 싶은 상대에게 보여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내가 오늘 학교 가다가 본 예쁜 꽃을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꽃은 그래서 찍기 시작했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피사체는 "구름"이다. 구름은 그 순간만 그 모습이다. 그 순간이 지나면 아주 사소하게라도 변해버린다. 그래서 구름 사진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좋은 말들을 기록해서 음미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내 감정들을 글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투정이었다. '오늘 친구랑 싸웠다', '오늘 부모님이랑 이런저런 이유로 싸웠는데 너무 속상하다' 이런 투정 같은 내용을 썼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치는 신하의 심정처럼 어딘가에 공개하고 싶더라. 누군가는 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렸다. 내가 누구인지 상대방은 몰라야 하고, 나도 상대방을 몰라야 한다. 정말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는 사실을 누군가가 그저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반응도 필요 없었다. 오히려 반응이 없는 편이 좋았다. 내 생각이나 감정을 아무런 생각 없이 퍼부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누군가의 간섭이 없는 글쓰기를 오랫동안 지속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공유하고 반응을 보고 싶더라. 특히 요즘 들어 그 생각이 더 강해졌다. 아마 요즘 대화에 빠져있어서 그런 것 같다. 대화는 정말 재밌다. 그 사람의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단 2분 만에도 알 수 있다. 책을 한 권 읽는 것에도 시간이 제법 든다. 그 시간을 들여서 아이디어를 얻어가는 것에 반해, 대화는 단숨에 아이디어를 뽑아낸다. 그 사람이 나와 같은 나이라는 전제하에, 대략 20년 치의 경험을 듣게 되는 것이다. 이건 내가 살아보지 않은 인생이기도 하고, 경험해보지 않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면, 사람에 따라서 다른 느낀 점을 들을 것이다. 그게 또 새로운 깨달음이 된다. 이토록 완벽한 대화는 나를 신나게 한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느낀다. 배움이 초 단위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화에는 한계가 있다. 첫째는, 그 사람을 집에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더 얘기하고 싶은데, 아쉬움을 안고 보내줘야 한다. 두 번째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직도 한참 남았다. 만약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그 순간, 듣는 사람이 지치는 일이 있다면 정말 듣기 싫을 것이다. 이건 나도 그렇다. 그래서 더 이상 얘기하기가 어려운 순간들이 있었다. 그런데 정말 이야기하고 싶다. 오늘 아침에 뭘 먹었는지부터 시작해서 내일 먹을 것들, 내일모레 먹을 것들, 요즘 사고 싶은 것이나 샀는데 후회했던 것이나 이런 자잘하고 사소한 일상의 대화들부터 앞으로 뭘 먹고살지, 뭘 하고 싶은지, 나의 가치관은 무엇인지 같은 깊고 웅장한 대화들까지 하고 싶더라. 상대가 지쳐할 것을 나도 아니까 얘기하기가 뻘쭘해서 생각해낸 방법이 '에세이'를 쓰는 것이었다. 자잘한 이야기들은 sns에도 쓰지만, 깊고 웅장한 이야기들은 내가 너무 깊게 간 것인지 고민하게 되더라.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글을 쓰고 있다. 글 쓰는 건 정말 재밌다. 결론적으로, 내 글을 읽어주는 모든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다.
나는 내가 쓰고 싶을 때, 쓰고 싶은 내용을 담아서 글을 쓸게.
너도 네가 읽고 싶다고 느껴질 때 읽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