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위 말하는 편순이였다. 대학 4년 내내 편의점과 나는 뗄래야 뗄 수가 없는 운명 공동체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1학년 시절, 번화가의 가장 큰 편의점에서 가장 바쁜 시간대인 주말 저녁 타임을 시작으로 졸업할 때까지 같은 브랜드 편의점을 지점만 옮겨가며 일을 해댔다. 알바를 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번화가의 큰 편의점을 쉴 새 없이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호되게 당한 나는 3개월 만에 관두게 되었는데, 얼마 안 가 두 번째로 찾아 간 편의점 면접에선 '번화가의 가장 큰 편의점 가장 바쁜 시간대'가 나름의 스펙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름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다시 알바생이 된 나는 그곳에서 1년이 넘도록 일을 했었고, 그 스펙을 가지고 또 다른 편의점에서 일을 했다. 이직을 세 번쯤 하고 나니 눈 감고도 기계를 다루겠더라. 아무튼 나는 세 번째 가게에서도 제법 오래 일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편의점 알바는 3개월 넘게만 일해도 오래 일한 거다. 1년 넘게 일하면서 나를 스쳐 간 알바생만 해도 여러 명이었다.
4년 내내 편의점 알바를 고집한 이유는 순전히 학비 때문이었다. 국가장학금이란 게 내 학비에 보탬은 되었지만 완전하지는 못했으며, 전액을 받으려면 좋은 성적을 받아 성적 장학금이란 것을 받아야 했다. 장학금이 아니고서는 학교를 다닐 수 없는 형편이었던 나는 일하면서 틈틈이 책을 볼 수 있는 아르바이트가 필요했다. 그래서 없는 머리를 겨우 쥐어짜 생각해 낸 직종이 편의점이었다. 인정사정이 눈곱만치도 없는 곳 아니고서야 웬만하면 공부해도 되는 곳이 편의점이었으니까. 거기에 손님까지 없으면 이른바 꿀알바가 따로 없다. 하지만 늘 그렇듯,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애석하게도 공부는 될 턱이 없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어딜 가든 사람이 넘치는 주말이라 일이 많다. 2. 집중이 된다 싶으면 금방 흐트러진다.(1의 맥락과 유사하다) 3. 온갖 진상들을 상대하다 보니 쌓인 스트레스. 1과 2는 말할 필요도 없다. 단언컨대 편의점은 세상 모든 진상들의 집합소이며 군집이라 자부할 수 있다. 돈을 던진다. 먹고 남은 컵라면 용기 따위를 테이블 위에 그대로 두고 간다. 매대를 어지른다. 담배를 찾는 데 조금이라도 버퍼링이 걸리면 버럭 화를 낸다. 초면인데 반말은 기본이다. 남의 사생활엔 어찌나 관심이 많으신지. 가끔은 종교를 강요하기도 한다. 위 사항들에 정신을 온전히 쏟아 붓기 때문에 집에만 도착하면 다 써버려 지친 정신에 못 이겨 결국 뻗게 된다. 핑계라면 핑계고 변명이라면 변명이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랬다. 공부에 집중하려면 애초에 아르바이트를 해선 안된다는 것을 깨닫고 만 것이다.
그 후로 누군가가 편의점 알바는 힘들 것 없는 꿀알바가 아니냐고 물으면 간혹 깊은 곳에서부터 울화가 치민다. 몇 년 동안 겪어 본 뒤 내린 결론은 편의점은 절대, 편한 알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절대로. 정신적인 소모가 자잘하게 많은 직종임에 틀림없다.
물론 4년 내리 진상만을 겪은 건 아니다. 위층 노래방 주인아저씨에게 나름 이쁨도 받았고, 친절하다는 말도 꾸준히 듣기도 했다. 마음씨 좋은 손님이 원 플러스 원 상품 중 하나를 나에게 주기도 했고. 하지만 그때로 돌아갈 수 있도록 선택지를 준다면 나는 극구 사양하겠다. 진상 손님들을 겪어가며 눈에 밟히지도 않는 전공책을 들여다보던 막연한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나에게 있어서 되짚어보고 싶지 않은 기억이나 마찬가지다. 대학 내내 아르바이트로 연명해야 했던 내 사정부터 제법 힘들었던 업무와 그로 인한 스트레스까지. 어느 것 하나 내 맘대로 흘러가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일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넉넉한 사정이었다면 각종 장애물을 마주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혹은 편하게 시험을 준비를 했을 텐데. 일을 할 때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여러모로 오랫동안 몸을 담았었지만 그런 협소한 자격지심과 비관에 전 그 시절로 돌아갈 마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정은 그 시절과 별반 다를 것이 없지만 마음만은 홀가분하다. 아르바이트는 내게 짐짝과 다름없었으므로.
가끔씩. 아주 가끔씩. 편의점에서 포스기를 찍고 있는 내가 꿈에 나타나곤 한다.
악몽이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