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의 일기 중에서
우리 집은 요즈음 도심에서는 흔하게 볼 수 없는, 마당이 있고 소나무 2그루를 경계로 두 집이 살고 있는 빌라이다. 내가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1년 6개월 만에 한 마당 안에 사는 조그맣고 예쁘게 생긴 바로 엽 집 아줌마랑 인사를 하고 몇 번의 왕래가 오가면서 나보다 2살 위인 터라 언니라 부르겠노라 했다.
옆집 언니는 시 낭송이다, 대체의학 공부다, 강의다, 교회다, 하서 들어갔다 나갔다 무지 바쁘게 살았다.
바쁜 만큼 집 안은 돌보지 못해 구석구석 자유스럽게 어질러져 있었다.
그러던 지난겨울, 옆집은 집 전체를 값이 꽤 비싸다는 백토(흰 황토 흙)를 온 집에 바르고 세 식구는 왔다 갔다 가구도 버리고 새로 사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걸 보면서 이제 옆집 언니네 집이 예쁘게 바뀌겠노라며 기대를 잔뜩 하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옆집 언니가 무거운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남연 씨! 내가 있던 소파를 남 주고 새로 저렴한 소파를 샀는데 소파도 안 편하고 위치도 마음에 안 들어. 너무 불편한데 어쩌면 좋겠어? 또 의료기 침대가 있는데 매트커버를 하고 싶어. 어떻게 하면 돼?" 물어왔다.
나의 장점은 정리 정돈을 잘하며 인테리어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어서 조금 자신 있게 말했다.
버린 소파와 새로 산 소파를 바꾸어 오고, 매트커버는 동대문시장에 가서 천 끊어다 주면 원하는 디자인대로 박음질해 주는 데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언니가 대뜸 "남연 씨! 내가 좀 바쁘으니까 지연 씨가 가서 좀 맞춰다 줄 수 있어?" 한다. 순간 난 어이가 없는 언니의 뻔뻔한 발상에 기분이 딱 상했지만, 앞에선 꾹 참을 수밖에.
같이 가 줄 수는 있지만 남의 것을 혼자 가서 살 수는 없다 했다.
내심 내가 제 언니야? 자기 딸이야? 불쾌한 마음이 한동안 내 머릿속에서 출렁거렸다.
며칠 후 가까스로 시간을 낸 옆집 언니와 동대문 시장으로 가기 위해 만났는데 언니는 해맑은 웃음을 띠며 "나이는 어리지만 언니같이 든든하다!" 하며 팔짱을 쑥 끼어왔다.
지금 내가 뭐 하나! 싶었던 내 마음이 조금 녹을 수 있었던 언니의 애교와 함께 동대문 시장으로 갔다.
그야말로 없는 것 없이 다 있는 시장 안의 좁은 골목을 뚫고 이곳, 저곳 구경을 하는 언니의 눈은 휘둥그레지고 동대문시장은 복잡하고 자기 같은 사람은 볼일 없는 곳이라 생각해 와보지 못했다며 "우와~ 이런 곳이었구나. " 감탄사를 연실 해대는 언니를 보며 나는 " 우와~ 저런 사람도 있구나." 감탄을 해댔다.
천을 끊어 매트커버를 박음질하는 곳에 맡기고는 동대문시장에 오는 진짜 묘미는 길거리 음식을 먹는 거라며 팥죽집으로 데리고 들어가 앉으니 앞에 배달 때문에 쭉 늘어서 있는 오토바이들을 보면서 언니는 또 "여기는 동남아 베트남에 온 것 같아~"라며 얼마나 신기해하던지!
예전에 나는 무심히 보아왔던 풍경들이 나에게도 새삼스레 다가왔고 소녀같이 즐거워하는 언니의 모습을 보면서 팥죽을 먹는데 그 팥죽 맛이 또 기가 막혔다. 마치 우리의 행복한 마음을 업그레이드하는 듯.
그래서 팥죽집에서 언니랑 나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버렸고, 나는 살면서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이웃사랑의 실천은 별것이 아니었다.
있는 내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고 함께하는 것이었다. 내 이웃을 기쁘게 하면 내가 기뻐지는 것이었다.
이 시간 이후 언니는 언니의 집 인테리어에 대해 서슴없이 물어왔고, 나는 내 집처럼 진심으로 고민해 주었고 기꺼이 시간을 내서 발품도 팔아서 오래오래 후회하지 않을 가구와 소품들을 골라 샀다. 집안 구석구석 적절히 배치하고 정리했더니 이제 옆집 언니네 집은 누가 봐도 단정하고 예쁜 집이 되었다.
엄마와 가치, 기준이 달라 싸우다가 입을 닫은 언니의 딸도 서서히 입을 열고, 우리가 마음 맞춰 집 꾸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봐 준 아저씨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같이 밥을 먹으러 다니는 편한 사이가 되었다.
함께 하면 기쁨이 2배라고 한 말을 실감하는 요즈음이다.
옆집 언니랑 친해지면서 언니의 삶에 대해 듣게 되었고, 동네 마실 다니며 커피 마시고 수다 떨 여유가 없어 외골수라는 동네 사람들의 외면에 대해 알게 되었다. 건강염려증이 있어 집 안에 유난히 의료기기가 많은 점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일 년 반 정도를 언니네랑 이웃하며 살면서 언니에 대한 선입견과 왜곡된 나의 감정만을 고집했더라면 내 인식 세계에 새로운 행복한 감정을 느낄 수가 없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