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가 국가애도기간으로 취소되면서 잠시 무력감에 빠졌다.
취소된 마라톤 대회는 처음으로 신청한 오프라인 마라톤 대회였기 때문에 나름 진지한 자세로 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 달에 80km씩 마일리지*를 적립하고 근육을 푸는 마사지와 발목 강화 운동을 병행했다. 열심히 준비한 만큼 대회 취소 소식을 들었을 때 아쉬움이 있었다.
* 러너들은 자신이 달린 거리를 ‘마일리지’라고 부른다. 마일리지의 어원이 ‘마일 단위 주행거리’를 의미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항공사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단어지만 지금은 카드사에서 주로 사용한다. 러너는 달릴 때마다 자신의 몸에 마일리지를 적립하고 있는 것이다.
아쉬움이 내 안의 무력감을 키운 걸까. 대회 일정이 지나고 달려야 하는 날이 올 때면 여러 이유를 갖다 대면서 자꾸만 달리기를 미뤘다. 몇 주째 미루다가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국가애도기간이 끝나자마자 여의도에서 열리는 하프마라톤 대회를 신청했다.
행동은 감정을 이끌어낸다. 하프마라톤 대회를 신청하고 나는 다시 몸을 장거리 달리기에 익숙하도록 길들이는 연습을 이어갔다. 대회와 같은 시간에 달리는 데 적응하기 위해 주로 아침에 나와서 달리기를 했다.
몇 번 달리면 익숙해지겠지 싶었는데 아침 달리기는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낮게 뜬 해가 긴 그림자를 뿌릴 때 달리기를 하고 있으면 마치 하지 말아야 할 시간에 무언가를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몸이 적응을 못해서 자꾸만 삐걱댔다. 공복에 달려서 몸이 힘들어하는 걸까. 달리다가 똥 마려울까봐 안 먹은 건데. 몸의 활력을 위해 간단하게라도 아침을 먹고 달려야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의도 하프마라톤 대회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하프마라톤 대회 당일에 필요한 전략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말해보겠다.
** 정보를 찾는 과정에서 국내 최대의 마라톤 사이트인 ‘마라톤 온라인’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전국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 일정을 알고 싶거나, 러닝 훈련을 전략적으로 하고 싶다면 이 사이트를 추천한다.
대회 당일에는 고기보다는 빵이나 국수 등 탄수화물 위주로 섭취한다. 장거리 달리기에 가장 필요한 영양소가 바로 탄수화물이기 때문이다. 늦어도 대회 시작 2시간 전에는 이러한 음식을 먹어두는 게 좋다.
대회 시작 1~2시간 전에 이온음료를 500ml 섭취한다. 수분은 장거리 달리기를 할 때 몸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회 중에도 수분은 기회가 되는 한 지속적으로 섭취한다.
워밍업은 반드시 해야 한다. 특히 연습 때보다 좋은 기록으로 마라톤 대회를 주파하고 싶다면 대회 시작 전에 몸에 열을 충분히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대회 시작 15분 전에 가벼운 조깅을 하는 것이 좋고, 조깅 전후로 동적 스트레칭을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대회 시작 15분 전에는 소변을 보는 것이 좋다. 이때 소변이 옅은 색이면 수분섭취가 잘 되었다는 걸 의미하지만, 만약 짙은 색이거나 양이 적으면 체내수분이 부족하다는 신호이기 때문에 수분을 더 보충해야 한다.
복장은 최대한 가벼운 것이 좋다. 장거리 달리기를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몇 킬로미터만 달려도 몸에 열이 충분히 오르는데, 21킬로미터를 달려야 하는 하프마라톤 대회라면 말할 것도 없다. 만약 대회날이 유독 추운 날씨라면 지퍼가 있는 외투를 입고 몸에 열이 오르면 지퍼를 내려서 열을 식히거나 일회용 비닐 옷을 입고 달리다가 열이 오르면 벗는 것도 방법이다.
대회가 시작되면 잡념은 내려놓고 자세와 호흡에 집중한다. 지금까지 몸에 축적한 마일리지의 힘을 믿고 달리기를 이어간다. 레이스 초반에는 목표 페이스보다 약간 느리게 달리면서 몸에 열을 올리다가 중후반에 속도를 내면서 점진적으로 목표 페이스에 다가가는 게 기본이다.
마라톤 대회에 필요한 준비물은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15km 이상의 장거리 달리기를 하면서 유용하게 사용한 물건 몇 가지를 말해보겠다. 러닝화나 러닝복 등 필수적인 건 제외하고 대회 당일 깜빡할 만한 물건만 모아봤다.
스마트워치, 선크림, 헤어밴드, 에너지바
마라톤 페이스를 원활하게 조절하기 위해서는 기록을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장비가 필요한데, 그런 장비는 스마트 워치가 제격이다. 선크림 역시 우리의 소중한 피부를 위해 꼭 챙기는 것이 좋다.
헤어밴드는 달리기를 하면서 머릿결을 안정적으로 고정해주기 때문에 유용하다. 무엇보다 헤어밴드를 착용해야 마라톤 대회 중에 찍은 사진이 괜찮게 나온다.
마라톤 대회 중에는 보통 물과 이온음료만 제공하기 때문에 달리면서 먹을 에너지바 정도는 직접 챙겨야 한다. 달리기를 하면서 배까지 채워야 하나 싶지만 의외로 중요한 문제다. 마라톤을 하면서 실시간으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우리 몸은 칼로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회 중에 일정 시간마다 에너지바를 입에 넣으면서 칼로리를 보충하도록 하자.
머리로 전략을 습득하고 몸으로 감각을 충실히 익힌다면 코앞으로 다가온 여의도 하프마라톤 대회에서 후회 없는 달리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 달리기 토막 상식 - 카보로딩(Carbo-Loading)
카보로딩(Carbo-Loading)은 체내에 글로코겐을 다량으로 축적하기 위한 탄수화물 비축 방법을 의미한다(출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프로 마라토너들은 대회를 앞두고 의도적으로 탄수화물을 대량으로 섭취한다. 근육이 움직이는데 필요한 가장 핵심적인 에너지가 바로 탄수화물이기 때문이다.
다만 카보로딩은 단순히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하는 것을 넘어서, 근육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축적할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즉 탄수화물 섭취와 근력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마라톤 대회를 앞두고 좋은 기록을 내고 싶은 러너라면 의도적으로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식이요법과 근력 운동을 적절하게 조합한 카보로딩으로 장거리 달리기에서 유의미한 기록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Runner's 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