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달콤쌉싸름한 맛을 좋아했다. 어린이면 으레 좋아하는 신맛과 단맛을 풍기는 사탕이나 젤리는 좋아하지 않았다(비틀즈나 아이셔 같은 사탕을 왜 먹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이였다).
대신 다크 초콜릿이나 말차 맛을 좋아했다. 덕분에 애늙은이 소리를 깨나 들으면서 자랐다. 다크 초콜릿과 말차 맛을 좋아하던 애늙은이는 지금까지 다크 초콜릿과 말차 맛을 즐기면서 순조롭게 늙은이가 되어가고 있다.
달콤쌉싸름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 달리기를 좋아하게 되는 게 아닐까. 달리기를 취미로 삼으면서 이런 생각을 자주 해왔다. 다크 초콜릿과 말차와 마찬가지로 달리기 역시 신맛이나 단맛에 편향되지 않은 복합적인 맛이 났기 때문이다.
사실 달리기는 대부분 쌉쌀한 맛밖에 나지 않는다. 달리기를 마치면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 눅눅하고, 입은 바짝 말라서 갈증이 난다.
달리기가 주는 달콤함이라면 몇 가지 있다. 달리기를 끝내고 마시는 음료수 한 잔의 시원함, 기록 향상에서 오는 만족감, 땀에 젖은 몸을 씻어내는 샤워의 개운함 같은 것들이 달리기가 주는 달콤함이다. 막상 적어놓고 보니 전부 달리기를 마치고 나서야 얻을 수 있는 달콤함이다. ‘달리는 도중’에 만날 수 있는 달콤함은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내가 달리기를 이어가고 있는 이유는 뭘까.
아직 달리는 사람이 아니었던 과거의 어느 날, 장거리 달리기가 취미라는 지인을 만나고 마치 외계인을 보는 눈으로 지인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쏟아낸 기억이 있다. 달리기가 취미가 될 수 있다고? 아니, 달리기는 취미가 될 수 있다고 쳐도, 몇 십 킬로미터를 취미로 달리는 사람이 있다고⋯?
장거리 달리기를 취미로 삼은 러너와의 첫 만남 이후, 줄곧 사람들은 달리기를 왜 하는지 궁금했다. 그러던 중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났다.
갑자기 책 홍보가 되는 것 같지만(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재밌는 책입니다) 내 경험을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나는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매년 풀코스 마라톤 대회를 나간다는 하루키, 매일 꾸준히 품을 들여 달리기에 익숙한 몸을 만들어간다는 그의 이야기를 보고는 문득 달려보고 싶어진 것이다.
그렇게 4년 동안 2,000km를 달렸다. 2,000km는 일주일에 10km씩 꼬박 4년 동안 달려야 하는 거리다. 내가 2,000km를 달리면서 변한 점은 무엇일까. 더 건강해졌을까, 마음가짐이 달라졌을까, 내가 계속 달리는 이유는 뭘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달리기는 카카오 함량 90% 다크 초콜릿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카카오 함량 90% 다크 초콜릿을 첫맛에 좋아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다크 초콜릿의 맛은 호불호가 심하지만 한 번 빠지면 질리지 않고 오래 즐길 수 있는 매력이 있다. 한두 번 입에 대보고는 알 수 없는 묘한 중독성이 있는 맛이다.
달리기도 이와 같다. 쌉싸름한 맛이 90%를 차지하지만 10%의 달콤한 맛을 위해 러너들은 오늘도 자기만의 공간에서 부지런히 발을 굴린다. 달리기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음료수 한 잔의 시원함을 위해. 땀에 젖은 몸을 씻어내는 샤워의 개운함을 위해.
다크 초콜릿과 말차 맛을 좋아하던 애늙은이도 이제는 달리기를 좋아하는 늙은이가 되는 것을 꿈꾸면서 러너들의 행렬에 발자국을 보탠다.
이미지 출처: Roberto American B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