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오케의 추억
9,043km의 물리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독일과 일본은 역사적으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길 가는 동양인을 붙잡고 일본 사람이냐고 묻고는 아니라고 하면 휙 가버리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듯하다. 일본인이 아니므로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어느덧 한 달간의 독일어 집중 과정이 끝나고 학교는 정식으로 개강했고, 개강 첫 주에는 다름슈타트 성 지하(Schlosskeller)에서 열리는 개강파티가 있다. 호기심이 어찌나 무서운지 지난 학기 개강파티 기억을 떠올리며 몸서리치는 여정의 만류에도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대신 미리 만나 심신의 준비를 하고 파티 시작 3시간 후쯤에 도착하도록 계획을 짠다.
입장료 3유로를 내고 입장하니 여정이의 말이 이해되고, 미리 마시고 온 술이 깬다. 조그마한 바, DJ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출 수 있는 굴, 가라오케 기계가 설치된 굴, 이렇게 두 개의 굴로 구성되어 있는 곳이었다.
좁은 굴 안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 속에서 내 마음은 끝을 모르고 불편해져 갔고, 얼마 안 가 밖으로 나와야 했다. 다음으로는 일명 가라오케 굴. 실제 가라오케 기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빔프로젝터로 벽에 원하는 음원의 가라오케 버전을 유튜브에서 찾아 틀어주면, 마이크로 부르면 된다. 수십 명이 쳐다보는 무대에서.
저 앞에 나가서 박효신의 야생화를 불러 강호를 평정할 사람을 찾으며 뒤에서 낄낄대고 있었다. 리한나의 엄브렐라, 바비걸 등 만국 공통으로 즐기는 클래식한 노래의 연속으로 이 방의 열기는 후끈 달아올라있었다. 이때 자신의 노래가 나온다며 서둘러 무대로 나가는 모리츠.
큰 화면에 뮤직비디오 재생되기 시작하고, 스크린 밖으로 달려 나오는 남자를 보며 잠시 볼을 꼬집어본다. 속사포처럼 랩을 뱉어내는 모리츠, 후렴구를 부를 때는 눈과 목에 핏발이 설만큼 열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Alles klar, Herr Kommissar?' (Falco - Der Kommissar, 1982)
끊임없이 괜찮냐고 묻는 그의 질문에 선뜻 아무도 답을 줄 수 없다. 세대적으로도 언어적으로도 너무 멀어 이를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데다가, 노래가 시작한 후 하나둘씩 나가기 시작한 사람들 때문에 그 절대적인 수도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끝까지 노래를 마치고 돌아오는 그를 손뼉 치며 칭찬하는 나를 보며 내 사회성도 이만하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얼마 안돼 마이카의 차례가 돌아왔다. 영리한 그녀의 선곡은 Let it go. 그녀 목에 또렷하게 선 핏발에서 따라 부르는 소리에 절대 묻히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어쩐지 익숙하다.
파티를 떠나고 싶은 기분이 드는 건 파티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일 것이다. 소파에 앉아서 모르는 사람의 의미 없는 얘기를 듣는 척 하다 바텐더에게로 가 샷 두 잔을 들이켠다. 비로소 내 감정에 솔직해진 나는 떠난다.
집으로 돌아가는 우리를 끈질기게 놓아주지 않는 건 모리츠가 부른 노래의 후렴구밖에 없다.